셋째 주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도 며칠간 쉬지 못하고 퇴근 후에 합평 모임을 나가고, 회사 회식에 참여했더니 감기몸살이 났다.
오랜만에 아픈 기분이다. 어릴 때부터 이십대 후반까지만 해도 툭하면 골골대고 환절기면 어김없이 감기몸살을 앓았었다. 하지만 삼십 대 들어 운동을 시작하기도 했고, 지금 다니는 회사는 워라밸이 좋아 컨디션 관리가 수월하고, 나도 내 몸에 대해 좀 더 알게 되기도 해서 자주 아프지 않았었다. 코로나도 한 번도 걸리지 않았고 유행성 독감이 번질 때도 멀쩡했다. 이제 몸살로 앓아눕는 건 일 년에 한 번 정도인 것 같다.
금요일 오후부터 몸 상태가 급격히 떨어져서 컴퓨터 화면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번역회사 업무는 당일 납품건이 많아서 조퇴를 하기가 여의치 않다. 게다가 업무 특성상 한 사람이 시작한 작업은 한 사람이 맡아서 끝내는 게 좋다. 어쨌든 다른 사람의 글은 톤이 많이 달라지니까. 그렇다 해도 정 힘들면 조퇴하고 PM이 다른 인력에게 남은 업무를 배정해 줘서 납품했겠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했던 번역을 다시 검토하다가 flight를 fight로 잘못 보고 틀리게 번역했다는 걸 깨닫고 고쳤다. 이 정도면 거의 눈이 안 보였던 거 아닌가? 이런 와중에도 어찌저찌 마무리를 짓긴 지었다는 게 신기하다. 번역도 관성으로 되긴 하나 보다.
아파도 웬만하면 참는 편이다. 사실 아주 심각한 병이 아닌 이상 거의 모든 아픔은 견딜 수 있다고 생각한다(화상은 빼고). 병가를 내는 일은 일 년에 한 번 정도 있으려나? 그렇지만 병가를 내면서도 실은 일할 수 있는데 조금 쉬고 싶어서 낸다는 기분이다. 앉아서 하는 일이니까 어떻게든 할 수 있지 않나, 그런 느낌이랄까. 자기보고식으로 1부터 10까지 점수를 매겨서 아픈 정도를 측정하는 방식은 나한테는 별로 안 맞을 것 같다. 웬만해선 3점을 못 넘을 것 같다.
보통 사람들은 아플 때 혼자면 서럽다고 하던데 나는 사실 자취를 하면서 그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몸이 안 좋을 때는 요리할 힘이 없으니 밥을 챙겨 먹기가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저 불편함의 문제일 뿐 서럽다거나 누가 곁에 있기를 바란 적은 없었다. 혼자 불 끄고 침대에 틀어박혀 있는 게 편하다. 누군가 있었으면 더 불편했을 것 같다. 다른 사람이 있으면 어쨌든 어떤 방식으로든 신경을 쓰게끔 된다. 가족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몸이 아프면 정신의 힘도 같이 떨어진다. 인내력이 줄고 마음 속 컴플렉스나 트라우마가 더 쉽게 건드려진다. 그게 싫다. 건강할 때면 별 일 없이 넘어갈 일들도 큰 일처럼 증폭되어 느껴지는 느낌이 불쾌하다. 그러잖아도 예민한데 이것보다 더 예민해지면 병적인 수준일 거다.
그럴 때면 머릿속에 온갖 잡념이 떠올라서 그런지 악몽도 꾼다. 성인이 되어서는 악몽은 잘 꾸지 않는데 그나마 악몽을 꾸게 될 때는 신체 상태가 안 좋을 때가 많은 것 같다. 특히 열이 많이 날 때 그렇다.
아참, 사촌언니에게 소개받은 상대에게서 연락이 왔다. 연락처를 전달해 줬다고 들은지 이 주가 넘었는데 이제야 연락이 오다니, 이상하다고까지 말하지는 않겠지만 일반적이지는 않다. 태도는 아주 정중한데 나보다 훨씬 강한 내향인인 것 같아 보인다. 책을 좋아한다니 만나서 나눌 이야깃거리는 하나 확보한 셈이다. 그래도 왠지 대화는 내가 이끌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허허.
토요일에는 아빠 생신이라 본가에 다녀왔다. 금요일에 평소보다 일찍 잤는데도 비교적 먼 거리에 외출을 하고 와서 그런지 몸 상태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공모전 날짜가 임박해 오는데 소설은 고칠 부분이 잔뜩 남았다. 오늘도 오전에 일어나 단골 카페에서 퇴고 작업을 하다가 세 시간이 넘어가자 컨디션이 영 안 좋아져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커피랑 케이크는 맛있었다. 감기몸살이라도 커피는 포기할 수 없지.
열이 나기 시작하는 것 같아서 서둘러 집에 왔는데 사장님께 인사를 못 드리고 가게를 나와서 약간 마음에 걸린다.
수요일에 합평 모임에서 받은 피드백을 반영하려면 제법 여러 군데를 뜯어 고쳐야 한다. 수요일이나 늦어도 목요일 즈음에는 등기를 부쳐야 할 텐데(난 문단의 이 아날로그 시스템이 싫다) 그 전까지 제대로 손을 볼 수 있을까?
소설 쓰기는 정말 너무 어렵다. 난 공부 머리는 없었지만 일 머리는 괜찮은 편이고, 취미로도 뭐든 곧잘 배워서 하는 편인데 소설은 정말 무지무지하게 어렵다. 내가 인생을 살며 해본 것 중에 제일 어렵다(수학은 빼고, 학창 시절 내내 수포자도 아니었는데 수포자 못지않은 성적을 자랑했다).
영어도 어렵지만 영어는 뭘 어떻게 해야 실력이 늘지 윤곽이 보이는 반면 소설은 윤곽이라는 게 있기나 한지 모르겠다. 어느 날엔 갑자기 다 알 것 같았다가 또 어느 날엔 아무것도 모르겠다. 작법서를 읽으면 다 할 수 있을 것 같고 자신감이 충만해지는데 빈 파일에 텍스트를 적는 순간 머릿속에서는 굉장하던 문장과 구조가 아주 볼품없어진다.
소설을 잘 쓰고 싶다. 소설을 잘 쓰는 사람이면 좋겠다.
예전에 혼자 망상을 하다가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이번 생에서 가장 갖고 싶은 것이 딱 두 가지 있는데, 첫째는 아낌없이 사랑을 나누며 인생을 함께 할 수 있는 파트너, 그리고 둘째는 소설을 잘 쓰게 되어서 사람들이 내 글을 읽어주고 함께 교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하늘에서 신이 뾰로롱 나타나 마법봉을 매만지며 둘 중 하나만 고르라고 하면 뭘 골라야 할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소설을 잘 쓰게 되어서 사람들이 내 글을 읽고 공감하고 즐거워할 수 있다면 반려자는 포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둘 다 가지면 제일 좋겠지만 굳이 택하라면 말이다.
그래서 아, 나는 성애적 사랑보다는 내 성취가 더 중요한 사람이구나, 했다. 그것이 자아에 대한 깨달음일는지 아니면 한갖 생각일는지.
어쨌든 소설도 계속 계속 쓰다 보면 늘긴 늘겠지.
며칠 내에 이 소설도 마무리지어야 하고, 저녁에 미리 신청해 둔 화상 영어 과외도 있는데. 운동도 하고 싶은데 몸이 너무 비실비실하다. 정말이지 몸이 두 개라면 좋겠다.
저녁이 되어도 몸이 별로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인다. 고민하다가 결국 월요일 병가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