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주
벌써 2025년의 절반이 지났다.
점점 일기를 쓰는 양이 줄어가고 있긴 하지만, 아직까지 한 주도 그냥 건너뛴 날은 없으니 열심히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처음 브런치에 일기를 쓰려고 마음먹은 건 사실 우울증 극복이라든가 그런 정서적인 이유 때문은 아니었고 계산적이랄까 기술적인 이유였는데, 이제 와서 밝히자면 번역을 하면서 내 한국어가 점점 이상해지고 있다는 실감이 들어서였다.
소설을 쓸 때는 그런 느낌을 덜 받았는데 번역이나 검수 작업을 할 때마다 한국어가 한국어스럽지 않고 딱딱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문장을 만들어 내어 쓰는 것과 남이 쓴 외국어를 번역하는 것이 달라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소설의 문장도 이미 번역투에 절여져 있는데 직접 쓴 말이라 잘 눈치채지 못한 것인지 모르겠다. 여하튼 번역문을 읽을 때 국적을 알 수 없는 괴상한 말처럼 보이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소설보다는 노동력과 심력이 덜 드는 형식의 글쓰기를 꾸준히 해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라도 해서 한국어 글쓰기가 좀 더 자연스럽고 한국어스럽게 되길 바랐다.
그런 불순한(?) 목적으로 시작한 일기 쓰기였는데 올해는 이상한 일이 많이 일어난 탓에 2025년의 기록을 제대로 남기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언제 무슨 일이 있었고 누군가와 어디에 갔고 하는 등의 상황적 기억력이 떨어지는 편인데 2025년은 기록을 많이 한 덕에 꽤나 여러가지를 기억할 듯하다.
한국어를 한국어답게 쓰는 문제로 돌아가자면, 일기 쓰기를 한 덕인지 한국어 서적을 이것저것 읽어서인지 몰라도 그럭저럭 한국어의 감을 다시 찾아갔다. 그랬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난달부터 영어 공부에 매진하면서 영어로 사고하는 시간이 늘어나자 다시 원상복귀되고 있는 것 같다. 쩝.
어쩌면 올해(영어 공부의 해로 지정한 해)가 지나고 뇌에 한국어 패치를 몇 번 다시 해야 제대로 한국어 모드로 돌아갈지도 모르겠다.
올해 내 인생에 관해서는, 모르겠다.
삼십대 중반이 되니 일이 년 전까지만 해도 별 감흥 없던 노화라는 것이 부쩍 몸에 찾아들기 시작했다. 돈은 (한때 고비가 있었으나) 그럭저럭 잘 모으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원점이 되어버렸다.
정서적으로는 많이 회복했다고 믿는데 연애를 하니까 다시 힘들어지는 날이 종종 있다(혼란형 애착의 재미있는 점 한 가지를 얘기하자면, 타인과의 관계가 가깝고 깊어질수록 불안도가 높아지고 사람이 미쳐가는 걸 실시간으로 느낄 수 있는데 거기다 HSP라면 환상적인 콤보 효과가 일어난다).
설상가상으로 세상이 바뀌면서 내 직업도 직장도 이제 언제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은 처지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이렇게 생각한다. 아직은 젊고 건강하니 돈은 벌면 된다고. 몸과 정신이 건강하면 돈 문제는 실은 가장 해결하기 쉬운 문제라고. 그래도 이젠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을 예전만큼 하지 않고(빈도는 거의 백분의 일 수준?) 아마도 앞으로 조금씩 더 나아지리라고.
그러니까 남은 절반의 한 해도 이럭저럭 살아보고 싶다. 소설도 다시 열심히 쓰고, 헛생각 하지 말고, 명상 많이 하고, 꾸준히 운동하고, 건강하게 먹으면서. 그러다 보면 또 조금 괜찮아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