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창가에 두고 익힌 마음

낯선 아주머니들과 어느 가을날의 뜬금없는 감 따기

by 내곁의바람

주홍빛 감이 나뭇가지에 주렁주렁 매달리는 가을이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일이 있다.

<내가 올 해 찍은 근처 감나무>

내가 대학원생일 때, 학교 근처에 감나무가 참 많았다. 자그마한 것들이 아니라 어른 키의 두 배는 넘는 것들이었다.

가을이 되면 그 나무들의 가지가 휘어질 만큼 감이 많이 달렸다.


그리고 그걸 수확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꽤 체계적이었다. 내가 처음 보는 가위도 가지고 다녔다. 긴 나무막대기 끝에 감을 자르는 용도의 작은 가위를 달고, 양쪽 손잡이를 철사로 칭칭 감아 놓은 모양이었다. 2인 1조나 3인 1조로 짝을 이루어, 한 명이 그 가위로 감이 달린 가지 끝을 바짝 자르면 툭 떨어지는 감을 나머지 사람이 상처 나지 않도록 받아내야 하는 것이 그들의 규칙 같았다.


나는 그 광경을 자주 구경했다.

매실 따는 사람이나 쑥을 캐는 사람은 봤어도, 그렇게 감을 따는 사람을 본 적은 없었다.

길을 지나가다 그 모습을 보면 지나치지 않고 꼭 구경하다 발길을 돌리곤 했었다.


그리고 그날도, 엄마 또래의 아주머니 세 분이서 감을 따고 계시길래 가던 길을 멈추고 또 구경했다. 툭툭 감이 묵직하게 떨어지는 모습과 마른 나뭇잎이 스치는 소리가 정겹게 어우러졌다. 감을 잘 받아낼 때마다 터져 나오는 그들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좋아서, 나는 한참이나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쟈 감 먹고 싶은갑다. 감 하나 줘야겠구먼."


날 발견한 한 아주머니가 그렇게 말하자, 나무 위에 올라가 있던 아주머니가 날 손짓으로 불렀다.

쭈볏대며 가지 않으니, 어서 온나! 하고 우렁찬 목소리로 날 다시 불렀다.


"아줌마가 감 떨어진다~ 하면 잘 보고 있다 받아라. 알았제?"


나는 결연한 의지를 가지고 감을 받아내려 했지만 무수히 많은 잎 속에 숨어 빠르게 아래로 떨어지는 감을 포착하지 못했다.

두세 번 기회를 주셨지만 하나도 받지 못해, 감들이 바닥에 탁탁 부딪혀 물렁하게 터져버렸다.

나 때문에 못 먹게 된 감이 아까워 속이 상했다.


"에구, 처음이라 잘 안되는구나. 괜찮다."


아주머니는 터지지 않아 깨끗함 놈을 골라 내 손에 쥐어주셨다. 처음이라 그렇다며 날 이해해 주는 그 분위기에 속상했던 마음이 풀어졌다.


"하나만 더 주실 수 있나요? 친구가 있어서..."

오늘 만나기로 약속한 친구가 생각났다. 그 애도 나와 함께 탐스럽게 열린 감을 가끔 구경하곤 했었다.

"그래! 니가 보고 맘에 드는 놈으로 하나 더 가져가라."


그들은 처음 보는 내게 깨끗하고 커다란 감을 두 개나 주셨다.


나는 그걸 창가에 두고 익혀먹었다. 엄마에게 사진을 보여주니, 홍시로 익혀먹는 감이라고 했다. 아직 떫을 것이니 그늘진 창가에 두고 자주 지켜보라며.


서늘한 창가에서 말랑해져 가는 홍시를 보며 며칠간 침을 꼴딱 삼켰다.


그리고 마침내 홍시를 베어 물었을 때, 그것은 내가 먹었던 그 어떤 감 보다 달고 부드러웠다.


하지만 내가 베어문 건 그날 처음 만난 아주머니들의 마음이었다.

같이 감을 따던 그 순간이 그날의 파란 하늘처럼 선명하게 내 마음속 그림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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