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투른 뜨개질과 글쓰기의 상관관계에 대하여.
내가 정말 잘하고 싶지만, 못하는 것이 한 가지 있다.
바로 ‘뜨개질’.
뜨개질로 만들어진 소품을 참 좋아한다.
뜨개꽃, 컵받침, 손가방, 동전지갑, 수세미까지.
그 특유의 포근한 감성과 아기자기함을 사랑한다.
하지만 뜨개질은 너무 어렵다.
기본적으로는 바늘로 매듭을 짓고, 그것을 꾸준히 이어 면을 만든다.
그리고 그 면들이 모여 하나의 형체가 된다.
그런 원리지만...
내 눈엔 실의 매듭이 다른 것도 잘 보이지 않으니 뜨개질엔 소질이 영 없는 듯하다.
그러다 몇 년 전에 룸메이트와 목도리를 뜨게 되었다.
룸메이트는 뜨개질을 잘해서, 내게 목도리 뜨는 것 정도는 가르쳐 줄 수 있다고 했다.
그때 당시에 쁘띠 목도리가 유행이라, 그 정도라면 나도 할 수 있겠다 싶어 도전했다.
뜨개질은 손의 힘을 일정하게 하는 게 중요했다.
내가 기분이 좋은 날은 매듭의 틈이 느슨했지만, 화가 나거나 기분이 상했을 땐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 틈이 촘촘해졌다.
그러니 일정한 넓이의 목도리가 아니라, 삐뚤빼뚤한 넓이의 목도리가 되었다.
거의 그 목도리는 내 기분 일기장과 다름없었다.
다 짜인 목도리를 포장하며, 나는 이 너절한 목도리가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났다.
상대방에게 선물을 하면서 다음엔 더 잘해보겠노라 다짐했다.
하지만 선물을 받은 친구는 웃으며 그 겨울을 따듯하게 보냈다며 고맙다고 했다.
그러고 보면 글쓰기가 뜨개질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글 쓸 때도 내 기분에 따라 다르게 쓰이니, 항상 비슷한 텐션을 유지하며 글을 쓰려 애쓴다.
인생을 살아보니 어떤 날은 절망적이기도 하고, 또 다른 날들은 희망차기도 하다.
울면서 쓴 글과 웃으며 쓴 글은 길이도, 문장도, 느낌도 다르다.
그래서 일정한 글쓰기가 일정한 넓이의 목도리를 뜨는 것처럼 어렵게 느껴진다.
아직까지 난 글쓰기 초보다.
아마 나중에 돌이켜보면, 내 글도 처음 뜬 목도리처럼 울퉁불퉁하고 서툰 흔적일 것이다.
그래도 그 목도리가 내게 따뜻함을 준 것처럼,
내 글도 누군가에게 그런 온기를 전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읽히지 않을 때보다, 읽혔을 때 조금이라도 마음이 녹는 글.
올해의 끝자락에서, 내년엔 그런 글을 쓰는 사람이 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