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머리만 하던 엄마, 머리카락은 여유의 상징.
우리 엄마는 짧은 머리를 고수했다.
항상 목을 덮지 않는 짧은 머리.
그러다 돌연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다.
엄마가 55살을 넘어선 어느 날이었다.
"엄마 머리 기르면 어떨 것 같아? 파마도 하고."
엄마가 거울을 보며 빗질 중에 내게 물었다.
"글쎄, 괜찮을 것 같은데?"
하긴, 엄마도 짧은 머리가 지겹기도 하겠지... 싶었다.
"엄마, 머리 기르고 싶으면 길러봐. 잘 어울릴 것 같아."
나는 긴 머리의 엄마가 궁금했다. 내가 태어나기 전 찍은 사진으로밖에 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래?"
엄마는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엄마는 정말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다.
몇 개월이 지났을까, 쇄골까지 머리카락이 닿자 이번엔 파마를 했다.
내게 머리핀이나 끈을 사다 달라고도 했다.
나는 짧은 머리를 해 본 적이 없었다. 늘 단발과 긴 머리를 오갔기 때문에, 머리끈은 종류별로 장단점을 꿰고 있었다.
내 머리끈을 사러 갈 때 간간히 엄마가 좋아할 만한 것을 골라 선물했다.
난 엄마가 별안간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다고 생각했지만, 몇 년이 지나고 지금까지 긴 머리를 유지하길래 물었다.
"엄마, 긴 머리가 하고 싶었어?"
"그냥. 왜, 안 어울려?"
"아니, 그냥."
엄마는 딱히 설명하지 않았다.
엄마는 원래 구구절절 자신의 마음이나 감정을 설명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시간이 많이 지나고, 드라마나 영화에서 자신이 겪었던 것과 비슷한 상황을 겪는 장면이 나오면 그제야 저 사람 마음을 알 것 같다, 하고 혼잣말처럼 말하곤 했다.
엄마의 마음은 알아채기 어려운 숙제 같았지만, 나도 어른이 되니 숙제 난이도가 많이 낮아졌다.
물론 그 숙제를 풀 때, 외할머니가 많은 힌트를 주시곤 했다.
내가 대학생이 되고 2년 뒤, 동생도 대학교에 입학했던 시점이었다.
그때쯤 나는 네일아트에 빠져있었다.
여러 가지 스티커도 사고, 화려한 색의 매니큐어도 몇 가지 사서 손톱이나 발톱을 한껏 꾸미고 다녔다.
"나도 그거 할까?"
엄마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엄마가? 손톱에? 불편할 텐데..."
"그런가?"
"그러면 발톱에 할래? 요새 여름이고 샌들도 자주 신으니까. 내가 해줄게."
나는 그동안 쌓은 실력을 발휘했다.
밝은 색 매니큐어와 귀여운 스티커로 엄마 발톱을 열심히 꾸몄다.
"맘에 들어? 내가 시간 내서 한 번씩 해줄게."
엄마는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다음 주 주말에 외할머니댁에 갈 일이 있었다.
할머니는 여느 때처럼 활짝 웃으시며 우리를 반겨주셨다. 엄마가 신발을 벗고 맨발로 거실을 돌아다녔는데, 할머니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네 엄마 발톱색이 왜 저러냐? 어디 부딪히기라도 했어?"
"아, 그거 네일아트예요. 제가 했어요."
난 손을 쭉 펴서 내 손톱도 보여드렸다.
"엄마가 해달래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는 재밌다는 듯 막 웃으셨다.
"너네 엄마가 여유가 생겼나 보다."
"여유가 생겼다고요?"
"자식들 다 대학 보냈으니까. 이제 여유가 생겨서 저런 것도 하고 싶었나 보네."
그 말 뒤에 머문 할머니의 먹먹한 표정.
나는 숙연해졌다.
모르고 있었다. 네일아트가 엄마에게 자신의 시간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첫 번째 상징이었음을.
엄마는 어느 날 갑자기 머리를 기른 게 아니었다.
몇 년 전, 나와 동생이 몇 개월 차이로 취업에 성공했었다. 그래서 같은 연도에 집을 나와 각자 독립하게 되었다.
이렇게 둘 다 갑자기 집을 떠날 줄은 몰랐지만, 자식들이 어른으로써 완연한 독립을 해냈다며 엄마는 행복해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 엄마 나이가 50대 초중반이었다.
그리고 이듬해쯤, 엄마가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다.
시기가 그렇게 맞아 들었다.
긴 머리는, 엄마가 자식을 키우며 넘어온 고비들을 스스로 인정하는 두 번째 상징이었나 보다.
지금은 어깨너머로 찰랑이는 엄마의 머리카락을 떠올리며, 다음엔 어떤 새로운 변화가 엄마를 기다리고 있을지 조용히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