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왜 동생 게임 계정에 현질을 해줬을까?

아빠를 닮아가는 우리 가족의 사랑방식

by 내곁의바람

중학생 때 일이었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왔는데, 동생이 이불을 뒤집어쓰고 엉엉 울고 있었다.
"너 왜 그래? 무슨 일이야?"
평소 나를 짜증 나게 하거나 말싸움은 해도, 쉽게 엉엉 우는 녀석은 아니었다.

왜 우는지 말도 안 하고 대성통곡만 하기에 엄마에게 채근하며 물었다.
"엄마, 쟤 왜 저래? 왜 울어?"
"사기 맞았대."
"무슨 사기?"
"게임."
그러니까, 동생이 하고 있던 인터넷 게임이 있었다. 거기서 아이템과 돈을 거래하기로 했는데 상대방이 아이템만 받고 도망을 갔다는 얘기였다.

세상에 대한 배신감에 동생은 전 재산을 잃은 사람처럼 엉엉 울었다.

"으휴, 바보야."
나도 한 '냉소' 하던 중학생 시절, 동생을 한심하게 쳐다보며 혀를 찼다. 엄마도 지쳤는지 동생을 위로해주지 않았다.
아빠는 당시 그 게임을 하고 있었다. 레벨도 제법 높았다. 조용히 동생에게 다가가 얼마를 사기 맞은 거냐 묻더니, 그 금액만큼 동생의 구멍 난 게임 머니를 채워주셨다.
동생은 비로소 울음을 그쳤다.

지금 생각하면 귀엽고 풋풋한 이야기.

이 얘기를 나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얼마 전 티비를 보다가, 사기를 당한 사람이 뉴스에 나왔는데 동생이 말했다.
"에휴, 사기는 진짜 나쁜 거야. 저게 당하려면 진짜 깜박 속아서 넘어간다니까."
"야, 너도 사기 많~이 당했잖아. 어릴 때 게임에서. 크크."
"누나, 내가 그때 세상에 대해 배운 거야. 지금은 안 당한다고."
맞는 말이다. 동생은 제법 경제적이고 똑똑한 어른이 되었다. 나보다 돈을 잘 알았다.
"그건 그래. 너 어릴 때 사기 당하고 엉엉 울던 거 생각난다."
내가 깔깔 웃자, 동생이 저 이야기를 했다.
"아, 그리고 아빠가 내 캐릭터에 현질도 해줬는데. 친구가 엄청 부러워했었어."

현질은 게임 계정에 현금을 충전하는 것인데, 캐릭터를 꾸미거나 할 수 있는 유료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으로 캐릭터를 업그레이드 할 수 있음

"엥? 그런 일도 있었나?"
나는 몰랐던 일에 거실에 앉아있던 아빠의 등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아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옛날 같았으면 이해를 못 했을 일이다.
빠듯한 살림에 게임 캐릭터 현질이라니.
쓸 모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지금은 알 것 같다. 그 이유를.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빠가 MP3를 사줬었다.
"이게 뭐야?"
"MP3야, 이걸로 노래를 다운로드하여서 듣는 거야. 영어 듣기도 할 수 있고."

근데... 아빠가 이걸 왜 사 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대중가요를 몰랐다. 유행하는 연예인의 이름은 친구들 입으로 듣고, 따라 부를 줄 아는 노래는 아빠 차에서 흘러나온 트로트가 전부였다.
그런 내게 MP3가 필요할 리 없었다.

하지만 우리 집에 놀러 온 친구들의 반응은 달랐다.
"우와, 이거 MP3야? 좋겠다. 우리 집은 절대 안 사줘. 나도 갖고 싶은데."
부러움이 잔뜩 묻어나던 친구의 표정과 상기된 목소리.

그 기억이 동생이 말한 것과 닮아있었다.

아빠는 지금도 다른 사람들을 많이 관찰한다.
우리랑 비슷한 또래 사람들이 무엇을 입는지, 듣고 보는지, 무엇이 필요한지 늘 살핀다.

그것은 어린 날의 내가 미처 몰랐던, 아빠의 자식사랑 방식.

지금은 나와 동생이 부모님을 열심히 관찰한다. 불편한 점은 없는지, 필요한 게 있는지.
불편한 점은 도와주고 싶고 필요한 것은 채워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결국 그것이 우리가 물려받은, 우리 가족의 사랑 방식의 기반이 되었나 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