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새로운 도전.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
엄마로부터 전화가 왔다.
엄마랑은 일주일에 두 번은 꼭 통화를 한다.
주로 그동안 집에 있었던 일이나, 나에게 있었던 일을 공유하고 감상을 나누는 시간.
엄마가 별안간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 근데 아빠한테는 이 얘기 비밀이다?”
“무슨 얘기길래?”
“너네 아빠 일본어 과외 받는다.”
“뭐?아빠가 일본어를 배운다고?”
“응, 일주일에 한 두번씩 과외선생님이랑 배운대.”
못난 딸은... 그 얘기를 듣고 혹시 보이스피싱이나 이단 종교단체에라도 걸린걸까 걱정을 했다.
“갑자기 왜?”
“몰라, 도쿄에 다녀와서 그런가봐.”
도쿄.
우리집의 첫 해외여행 장소였다.
여행지를 정할 때 어디를 가고 싶냐 물으니, 아빠는 도쿄에 가고싶다고 했다.
우리집은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도쿄로 떠났었다.
“근데 재미있나봐, 다닌 지 세달 정도 됐어.”
“진짜?”
“자식들한테 부끄러울까봐 나도 비밀로 했는데, 이쯤되면 말해도 되지 않나해서. 너네 아빠 대단하지?”
엄마가 자랑스러운 듯 말했다.
정말 대단하다.
우리아빠는 64년생 용띠.
환갑을 지난 나이에 새로운 언어에 도전하다니.
우리집의 특별한 문화가 있다면,
공부를 하는 것 자체를 대단하다고 말해주는 분위기였다.
없는 형편에도 아빠가 공부할 때 필요한 볼펜은 가장 좋은 것으로 사주는 엄마.
그 모습을 보고 자란 우리는 공부는 가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자랐다.
부모가 아이들에게 공부하는 습관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고 한다.
우리집은 공부라는 행위 자체를 인정해주고 지지해주는 문화가 지금 나의 꾸준한 공부 습관을 만들어주었다.
아빠는 항상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하고, 그러기위해 정진하는 사람이었다.
특히 공학자의 면모가 강했다. 얼마전엔 전기 관련 자격증도 취득했었다.
그때도 나이가 50대 후반이었으니 생각해보면 일본어를 배우는 아빠가 어색하진 않았다.
그저 아빠의 배움의 다음장이 일본어였을 뿐.
아빠의 일본어 공부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엄마는 아빠를 위해 일본어 사전도 얻어다주었다.
본가에 갔을 때도 아빠는 쇼파에 앉아 틈틈이 일본어 단어를 외웠다.
나와 동생은 아빠가 대단하다고 이야기를 나누며, 다음 일본 여행 때에는 아빠가 통역을 해주면 좋겠노라고 사심을 터놓기도 했다.
엄마는 아빠가 일본어 선생님과 일본 문화를 통해 세상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시간이 즐거운 모양이라고 했다.
내 눈에는 공부하고 싶은 것을 실컷 하는 그 시간들이 아빠를 충만하게 해주는 듯 했다.
아빠는 늘 내게 ‘공부를 할 수 있을 때 실컷하라’고 했다.
엄마가 그렇게 이야기할 때보다 아빠가 그렇게 이야기할 때 마음에 와 닿았던 것은, 아빠가 얼마나 공부를 하고 싶어 하던 사람인지 역사를 알기 때문이었다.
아빠는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대학도 가고 싶었던 모양이었지만 쉽지 않았다.
자라면서 다른 불만은 딱히 없어보이면서도, 집에서 공부를 시켜주지 않은 것만은 원망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 같았다.
나도 이제는 공부를 할만큼 했다. 해보니 알 수 있었다.
아빠의 가능성과 공부에 대한 애정.
하고 싶던 걸 못했던 사람의 갈증.
끈질기게 이어지는 미련 같은 것.
생각해보니, 아빠는 내게 공부를 잘하라고 내게 말한 적은 없었다.
그저 하고싶은만큼 하라고 했다.
그 특별한 잔소리는 그런 것들로부터 비롯되었겠지.
나도 이제는 아빠가 할 수 있는만큼 하고 싶은만큼 공부하길 바란다.
그리고 아빠가 해줬던 지지와 응원을 같은 마음으로 보낸다.
내년에 아빠의 일본어 실력이 일취월장하면, 겨울의 삿포로에 여행을 보내주고 싶다.
하얗고 동화같은 세상에서, 자신감 넘치게 일본어로 소통하는 아빠를 보고 싶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