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우중충한 검은색 운동복

움츠러든 나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던 버스 안..

by 내곁의바람

학원에 갔다가 집에 돌아오는 버스를 탔더니, 아는 얼굴이 있었다.

고등학교를 같이 졸업한 친구들이었다.

친하진 않았고, 얼굴만 아는 정도로 마주치면 인사를 주고받는 사이였다.

해사한 얼굴로 자기들끼리 재밌는 이야기를 속닥거리고 있었다.


'예쁘게 꾸미고 어디 놀러라도 다녀온 건가?'

친구가 메고 있는 새 핸드백이 유난히 반짝거렸다.


모르는 척 그 애들을 지나치고 뒷자리에 앉아 고개를 푹 숙였다.

시야에 내 검은색 운동복과 운동화가 눈에 들어왔다.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고개를 들어 차창에 비친 내 얼굴을 보았다.

고3 때와 다름없는 얼굴과 질끈 묶은 머리.

염색이나 펌을 하고 립스틱을 예쁘게 바른 그 애들과 비교됐다.


한 번도 내가 뭘 입고 있는지 신경 써본 적 없었는데, 그날의 일이 조금 충격이었다.

그냥 내가 그 애들과 예전처럼 인사를 주고받으면 될 것인데, 그땐 그러기가 참 창피했다.


'어쩔 수 없지, 난 재수생이니까.'


깜깜해진 도로의 가로등 불빛이 흐릿하게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

조용한 버스 안에서 그 애들이 웃고 속닥거리는 소리만이 선명하게 들렸다.

한 정류장에서 다 같이 내리길래, 그제야 움츠렸던 어깨를 펴고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사실 내가 자존심이 강해서 그런 것이지, 재수를 한다는 건 별일 아니다.

그냥 한 번 더 입시를 치르는 것.

나이를 더 먹으니 다들 자기 속도대로 살아가지 않는가. 누군가는 취업을 늦게 하고, 누군가는 결혼을 늦게 하고, 또 누군가는 부모가 늦게 되는 것처럼... 나는 대학생이 늦게 될 뿐이었다.


하지만 당시엔, 그날 이후로 조금 우울했다.

당당하지 못했던 내가 떠오르며, 무언가 잘못한 기분이었다.


그런 내 마음을 다잡게 한 말이 있었다.


인생은 누가 먼저 도착하는지 겨루는 단거리 달리기가 아니라, 마라톤이라는 것.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내 페이스를 지키는 것이 승리의 비법이라는 말이었다.


내가 어디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만을 생각하는 것이 그런 상황에서 버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꿈을 꾸는 건 가치 있는 일이지만, 늘 빛날 순 없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며 나는 묵묵히 재수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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