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내게 먼저 찾아온 친구, 고마운 마음.
재수를 시작한 지 몇 개월 뒤, 나는 친구들과 연락을 끊었다.
그 시작은 한 단톡방이었는데, 대학을 간 친구들의 첫 방학이 다가올 무렵이었다.
새내기의 여름방학에 잔뜩 들떠, 각자 어디로 여행을 갈지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하루 이틀은 괜찮았는데, 계속해서 그 대화들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불편해졌다.
"얘들아, 나 모의고사가 얼마 안 남아서 당분간 연락 못할 것 같아. 수능 끝나고 연락할게!"
그렇게 카톡을 남긴 채 친구들의 답장을 보지도 않고 단톡방을 나오고, 카카오톡을 삭제했다.
그때 내 핸드폰은 엄마가 수능이 끝나고 처음으로 바꿔준 스마트폰이었다.
좁고 축축한 재수학원 화장실에서 조용해진 핸드폰 화면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엄마는 핸드폰 사줄 때 내가 재수할 줄 몰랐겠지. 재수를 하지 않고 그냥 대학을 갔으면 나도 이 스마트폰으로 친구들과 설레는 대화를 할 수 있었을까?'
나는 고개를 저으며 입시에 대한 마음을 다잡았다. 가고 싶은 학과와 대학이 있음을 스스로에게 상기시켰다.
친구들을 쉽게 잊어갔다.
어차피 내가 없이도 친구들의 대학생활은 잘 흘러갈 것이고, 한 달에 한번 있는 모의고사에 매일 있는 숙제까지 챙기는 것만으로 생활이 벅찼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꽤 장문의 메시지가 도착해서, 의아한 마음으로 읽어 내려갔다.
내가 고3 때 꽤 친하게 지내던 A였다.
내가 너무 생각이 짧았어.
네가 재수생활로 고생하고 있을 것이 뻔한데 속 편한 이야기들을 해서 미안해.
고등학교 국어선생님도 네가 아무랑도 연락을 하지 않는 것 같다고 걱정하셨어.
수능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려고 했지만, 네가 너무 걱정돼서 연락하고 말았네.
나 방학했는데, 너만 괜찮으면 학원 앞으로 가도 될까? 잠깐만 만나도 정말 괜찮아.
네가 정말 걱정되고 보고 싶어.
나는 순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A는 늘 나를 배려해 주던, 어른스러운 친구였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자신이 잘못한 부분을 생각하고 먼저 사과해 주는 면모가 그 애 다웠다.
나는 답장을 보냈다.
A야! 사실 너희가 나 빼고 대학생활 얘기를 해서 속상하긴 했어. 그리고 연락을 끊고 잠수를 타서 미안해. 그렇게 날 걱정하는지 몰랐어..
너만 괜찮다면 내가 6시쯤 수업이 끝나니까 그때 잠깐 만나서 저녁 먹을까?
야자를 해야 해서 오래는 못 만나겠지만..
A에게 학원이름을 가르쳐주었다.
A가 학원으로 찾아온 날은 꽤 무더웠다.
날이 흐리고 습하기까지 해서, 조금만 걸어도 숨이 턱턱 막혔다.
그 더위를 뚫고 단숨에 날 찾으러 와 준 그 애는 대학생 새내기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전에 친구들을 마주쳤던 버스에서 느낀 서글픔과 박탈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예뻐진 A가 날 얼싸안고 반가워해서, 그것만으로 좋았다.
나는 A와 근처 식당에서 간단히 저녁을 먹고, 그 애를 버스정류장까지 배웅했다.
희미한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19살 때처럼 시시한 이야기들로 키득거렸다.
A가 버스를 타고도 차창 밖으로 날 쳐다보며 환하게 웃길래, 나도 따라 웃었다.
살아가다 보니 유독 힘이 든 순간이 있다.
오직 이기심만으로 모두를 등지고 싶은 기분이 들 때면 A 생각이 난다.
A가 내게 보여주었던 따듯한 마음과 우정이 오래도록 기억 속에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