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겹도록 지치지만 버텨야만 하는 재수생의 여름
재수생에겐 여름이 가장 중요하다.
여름에 페이스를 지키며 꾸준히 공부하면 재수는 성공이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무더운 여름이기에 기운이 빠지고 지쳐서도 있지만, 8월쯤 되면 초심은 모두 사라진다.
재수생의 신분에 적응하고 그냥 나라는 사람으로 살아갈 무렵.
무단으로 학원을 빠지는 학생들도 여럿생기고, 분위기가 많이 풀어진다.
나도 그 무렵 많이 피곤했다.
하루에 믹스커피를 점심, 저녁 한잔씩 마시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올 때 차창에 기대어 자주 졸았다.
여름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하루하루가 비슷해서, 오늘이 어제인지 내일인지 구분이 잘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하루가 지나면 책상 위 문제집의 페이지는 조금씩 넘어가 있었다.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하루하루가 느리게 지나갔다.
'이 고비를 잘 넘겨야 한다.'
그 마음 하나로 내 패턴을 잘 지켰다.
나도 마음이 흔들려, 학원을 빠지고 집에 있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딱 한 번 학원을 빠진 적도 있었다.
하지만 다음 날엔 평소처럼 가방을 메고 버스를 탔다.
넘어진 적은 있었지만, 다음 날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생활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페이스 지키기'였다.
나와 함께 초심을 잃지 않고 공부하던 언니가 있었다. 언니는 이번 입시가 세 번 째였다.
평일엔 나와 점심, 저녁 식사를 함께했고 토요일에는 자율학습 메이트였다.
언니는 묵묵히 자기 할 일을 어른스럽게 해냈다. 내가 점심을 같이 먹자고 말하러 갈 때마다, 그 시간마저 책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열심히 하는 모습을 옆에서 본받게 되었다. 그래서 덜 흔들릴 수 있었다.
장마철이라 비가 아주 많이 오던 날이었다.
아침에 차 사고가 났는지 도로가 많이 밀려서, 1시간 가까이 지각한 날이 있었다.
밖은 소란스러운데 버스 안은 조용했다.
그 속에서 꾸벅꾸벅 졸았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학원 근처 사거리였다.
여기서 두 정거장 뒤에 내리면 학원이었다.
'앞으로 이 길을 이백번쯤 오면 재수도 끝나겠구나.'
축축하고 습한 공기 속에 홀로 우산을 쓰고 걸었다.
그해 여름은 천천히 느리게 이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