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찾아온 폐경, 그리고 제안한 눈썹문신
저번 화에 아빠의 갱년기에 대해 글을 썼는데, 얼마 전 엄마와의 통화에 의하면 아빠가 차츰 좋아지고 있다는 것 같다.
“뭔가 기분이 좀 좋아진 것 같았어.”
“그래? 이유는 몰라도 다행이네.”
예전에 인터넷에 돌아다니던 짧은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아버지가 우울증이 와서, 출근 전에 가족들이 모두 나와 아버지를 안아주었다고.
아버지는 조금씩 나아지더니 어느 날부터는 출근 전 현관문 앞에 서서 ‘안아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다.
사람의 마음에 다정만큼 꼭 맞는 치료제는 없다.
여자의 갱년기는 폐경과 함께 온다.
엄마에게도 그렇게 갱년기가 찾아왔다.
“이제 더 이상 손님이 안 와.”
“무슨 손님?”
“한 달에 한 번 오는 손님. 이제 안 와.”
“진짜?”
그때 나는 대학생이었다. 엄마의 기분을 정확히 이해할 순 없었지만, 소감을 물어보니 시원섭섭하다고 했다.
말은 그렇게 해놓고 엄마는 당분간 우울해했다.
아주 친했던 친구가 말없이 멀리 이사 간 것처럼, 아련한 느낌이 있었다.
‘폐경이 정확히 뭐지?’
나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요새는 폐경이라는 말이 아니라 완경이라는 말을 쓴다는 것과 그 기간에 몸이 많이 약해지고 기분이 울적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들과 남편에겐 말하기 어려웠는지, 딸에게만 몰래 말해준 엄마의 비밀에 고민이 깊어졌다.
며칠을 고민하다가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눈썹문신 하러 갈래? 내가 쏠게!”
“갑자기 웬 눈썹문신?”
“엄마가 옛날부터 눈썹 숱이 별로 없다고 신경 쓰여했잖아. 늦기 전에 하러 가자. 내가 엄마 완경 기념으로 쏠게.”
우리 아빠는 내게 엄마가 미인이었다고 늘 말하지만, 꼭 이렇게 덧붙였다.
“그래도 네가 엄마 눈썹을 안 닮아서 다행이다! 아빠 눈썹 닮길 얼마나 다행인지.”
그리고 깔깔 웃었다. 그렇게 말할 때마다 엄마는 아빠를 매섭게 째려보았다.
눈썹은 늘 엄마의 컴플렉스였다.
엄마는 내 제안이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싫은 눈치는 아니었기에 곧장 시술 예약을 하고, 혼자 받기 꺼려진다기에 나도 속눈썹 연장 시술을 같이 받았다.
우리의 시술이 끝나고, 같이 바라본 거울 속에 내 모습은 솔직히 웃겼다.
나에게 풍성한 속눈썹이 참 안 어울렸다.
하지만 엄마는 눈썹이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어쩔 수 없지, 엄마가 좋아하니까 됐다.’
그 뒤로 엄마는 주기적으로 혼자 눈썹문신을 받으러 다녔다.
젊은 나는 아직 갱년기의 심정을 잘 모른다.
그리고 내가 한 일이 정말 위로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더 좋은 위로법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저 엄마가 오래 신경 쓰던 눈썹을 떠올렸고,
함께 시술을 받고 나와 거울을 보며 웃었던 날이 가끔씩 기억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