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에게 찾아온 갱년기를 맞이하는 중입니다.
이번 설날엔 놀랄 일이 하나 더 있었다.
동생이 엄마와 함께 역으로 날 데리러 왔었다.
우리 집 내력 중 하나는 말이 많다는 점이다.
차를 타고 집에 도착할 때까지 기차에서 본 사람들, 새로운 맛집 등 여러 가지 이야기를 계속 떠들었다.
집에 도착하니 아빠가 안방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이야기는 끊기지 않고, 집에 들어서서도 쉴 새 없이 대화했다.
점점 말소리가 커지자 엄마가 열려있는 안방 문을 닫았다.
몇 분이 지났을까, 아빠가 부스스한 모습으로 거실에 나왔다.
“내가 문 닫지 말라고 했잖아.”
“당신 잠 깰까 봐 그랬지.”
“그래도. 난 시끄러운 건 괜찮은데, 문 닫는 게 싫다니까.”
“아니.. 그냥 조용하게 잘 자라고 그랬어.”
아빠가 요새 몸이 계속 좋지 않았기에, 우리는 이왕이면 푹 자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나 어릴 때 자다가 봉변당한 기억이 있어서 문이 닫혀있으면 불안해.”
아빠가 말한 기억의 범인은 할아버지였다.
아빠가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한 적은 손에 꼽지만, 대부분 좋은 모습이 아니었다.
여러 문장이 오갔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늘 도망갈 준비를 해야 했던 어린 시절의 아빠가 있었다는 것이었다.
“할아버지가? 진짜 할아버지가 그러셨다고?”
“그래.”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얼떨떨했던 것 같다.
믿을 수 없었다.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 그랬구나. 에구. 아빠가 많이 무섭고 힘들었겠다.”
아빠 등을 토닥여주며 말했다.
“우리가 몰라서 그랬던 것 같아. 아빠. 앞으로는 내가 항상 신경 써서 문 열어줄게.”
(요새 내가 브런치 글에서 자주 언급하는 듯 하지만) 아빠가 몸이 안 좋아지고 나서부터 마음이 약해졌는지, 가끔 옛날 일을 꺼내 이야기했다.
주로 밝은 이야기들이 아니었다.
마음에 상처들을 한 장씩 넘겨보는 느낌이었다.
갱년기가 온 모양이었다.
어른들의 질풍노도의 시기.
그것은 과거와 엮여 더욱 거세다.
낮잠을 자고 있는 아빠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데 마음이 아팠다.
아빠의 과거를 보상할 수 있는 방법이 지금의 내게 없다는 것이 무력하게 느껴졌다.
대전으로 돌아가기 위해 역으로 향하며 엄마와 동생에게 말했다.
“아빠가 마음에 몸살이 온 것 같다. 근데 내 생각엔 아빠가 인생에서 한 번은 꼭 겪어야 할 시기인 것 같기도 하니까 그동안 잘해주자. 지금도 다들 잘하고 있지만.”
둘은 고개를 끄덕였다.
난 이미 비슷한 일을 겪은 적이 있었다.
엄마의 갱년기였다.
어찌나 사나운 갱년기가 왔는지 감당하기가 버거웠다.
어느 날 친구한테 짜증을 내며 그 이야기를 했는데, 그 애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나도 비슷한 일이 있어서 강연 같은 거 들었었는데, 거기서 이런 말을 하더라. 부모가 어느 순간에 자식들을 다 키우고 나면 기댈 곳이 필요해진대. 근데 그때 원래 본인의 부모는 너무 나이가 들어서 거기 기댈 수가 없으니까 자식한테 그 역할을 바랄 수 있다는 거야.”
그 대화가 부모와 자식에 대한 내 관점을 많이 바꾸어주었다.
그때까진 경직되어 있었다.
언제까지고 엄마는 엄마고 자식은 자식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 말은 다시 말해 누군가는 평생 돌보는 입장이고, 누군가는 평생 받는 입장이라는, 어쩌면 꽤 이기적인 생각이었다.
하지만 관계의 변화는 늘 생긴다.
이제는 부모와 자식이 아니라 친구처럼 동등한 관계가 되어야 하는 순간이 왔을 뿐이었다.
그리고 엄마의 갱년기를 보다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적응할 수 있었다.
엄마의 사춘기반항아 같던 시절에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엄마가 하는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이는 것, 공감하는 것.
가끔 좋아하는 간식을 사가는 것 정도였다.
조금 더 나이를 먹은 지금에도,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은 거창하지 않다.
그저 무심한 척 손을 잡아주는 것, 등을 쓰다듬어주는 것.
언제나 내게 상처를 털어놓을 수 있도록 문을 열어두는 것.
그런 것만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결국, 이 시기를 잘 지나갈 수 있는 힘이 될 것임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