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명절이 싫다.

엄마의 갑작스러운 짜증과 내 마음의 숙제

by 내곁의바람

이번 명절은 조금 우울했다.

코로나를 기점으로 우리 집엔 제사가 사라졌다.

30년 가까이 제사를 도맡아 지낸 엄마의 보이콧 선언을 기점으로 나 또한 아빠와 크게 싸웠다. 아빠는 제사를 지내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나는 아니었다.


스무 살이 넘은 뒤부터, 내 목표는 엄마가 조금이라도 편안한 집을 만드는 것이었다.

제사를 없애자고 싸운 것도 그 때문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집안사람들의 반대로, 코로나를 핑계로 제사는 유야무야 없어졌다.

우리 집은 제사를 지내는 대신 가족여행을 떠났다.

정말 많은 곳을 다녔다. 그리고 운전은 늘 아빠 담당이었다.

우리 집의 가족여행은, 매번 당일치기로 급하게 다녔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젠 아빠의 체력이 무리라며 숙소를 잡았다.

그것을 기점으로 우리 집엔 ‘1박 이상의 여행’ 문화가 들어섰다.

원래부터 놀러 다니는 것을 좋아하던 엄마는 그 시간들을 행복해했다.

“남들은 다 놀러 간다고 깨끗한 옷 입고 나들이 가는데, 나는 맨날 후줄근한 옷에 전 부친다고 기름이며 밀가루며 묻히고 장 보러 다니는 것도 엄청 싫었어.”

그 말을 들으니 마음 한 구석이 아렸다.

그렇게 엄마가 홀로 제사를 지내던 시절은 그래봤자 지금의 내 나이, 요새 같은 세상에선 명절처럼 긴 연휴가 끼이면 해외여행을 다니며 세상을 누볐을 시간들.

어쨌든 그렇게 몇 년을 가족끼리 열심히도 다녔다.

최고 기록이 1년에 여섯 번 이상을 가족여행을 다녔던 것이니, 정말 그동안 밀렸던 여행을 미친 듯이 다닌 시간들이었다.

그리고 이번 설날, 우리 가족은 오랜만에 다 같이 집에 있었다.

아빠의 몸살이 몇 주간 좀처럼 나아지질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이가 60이 넘어 조선소 일을 한다는 것이 이젠 녹록지 않은 모양이었다.

“올해 설날은 쉬어야겠어, 내가 너무 네 아빠를 데리고 돌아다녔나 봐.”

아빠는 엄마와 반대로 집에 있어야 충전이 되는 사람이었다.

‘몸살 날 것 같더라니.’ 30년 제사를 지낸 세월에 비할바도 아니지만, 아빠가 몇 년 간 시간이 날 때마다 여행을 따라다녔으니 지쳤을 것이라는 것도 부정할 순 없었다.

“알았어, 그럼 집으로 갈게.”

그리고 설 연휴 동안 정말로 집에만 있었다.

이번 연휴는 주말을 끼어서 5일이었다.

3일 차 저녁쯤 설거지하고 있는 엄마에게 다가가 장난을 쳤는데, 대뜸 짜증을 내는 것이었다.

“설거지하는데 장난치지 마!”

“아니, 뭘 그렇게 화를 내고 그래?”

“몰라, 설거지하는데 도와주지도 않고. 딸이 되어선.”

“아까 아들이 한다니까 엄마가 하지 말라며. 딸 아들이 어디 있다고 그래?”

“그래도! 명절인데 나만 집에 있고….”

섭섭하다는 듯한 말투였다.

“엄마가 아빠 아프다고 놀러 가지 말자며. 갑자기 왜 그래?”

“네 탓도 있어! 너도 놀러 가기 싫어했잖아!”

또 시작이었다.

단호하게 내가 잘못했다고 얘기하는 말투에 나는 지긋지긋함을 느꼈다.

가족여행을 힘들어 한 건 사실이었다.

나도 아빠를 닮아 집에서 충전하는 스타일인데, 대전에서 직장을 다니다가 집에 내려오기만 하면 차를 타고 멀리 나가 놀러 다니 자고 하니 정말 힘들었다.

사회초년생 시절 출장이 많고 일이 몰려 힘들 때에도, 엄마는 아랑곳하지 않고 여행을 가자고 했다. 날 빼고 다니라니까 그것은 가족여행이 아니라고 했다.

‘또 왜 이러는 거야?’

우리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것을 직감한 동생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엄마, 왜 그래~ 속상해서 그래?”

“….”

그 말에도 엄마는 아무 대꾸를 하지 않았다.

나도 답답하고 짜증 나는 마음에 대화를 끊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이틀 뒤, 연휴가 끝났기에 부모님은 출근을 했다.

동생은 휴가였고 나도 집에 있었다.

제일 나이 든 사람들이 부리나케 출근을 하고, 젊은 놈들은 집에 있다니. 아이러니했다.

도서관에 들러 대학원 준비를 위해 논문을 읽고, 쓰고 있던 소설이 있어 그것도 썼다.

시계를 보니 5시가 넘었다.

“누나, 6시 반까지 들어와. 엄마 마치면 모시고 저녁 먹으러 가야 되니까.”

동생이 했던 말이 생각나 집으로 향했다.

중간에 카페에 들러 와플을 샀기에 둘이서 티브이를 보며 그것을 먹었다.

예능 프로그램이 한창 방영되고 있었다.

살림남이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어떤 트로트 가수의 가족 이야기가 주제였다.

그 집도 제사를 지내네야 하네, 마네하고 싸우고 엄마가 우울해하자 딸이 왜 그러냐 물었다.

“엄마는 형제도 없잖아. 명절이 되면 외로워.”

그런 식의 이야기를 했다.


‘가족이 있는데도 외로운 건가.’

코로나 시점에 우리 집에 또 다른 큰일이 있었다.

건강하던 외할머니가 지병이 심해지셨다.

흔히들 말하던 코로나 블루의 영향이었는지 마음이 많이 약해지셔서 요양병원에 자신을 입원시켜 달라고 했다.

가족들은 모두 말렸지만 할머니는 완고했다.

혼자 살고 계셨기에 더 이상 어쩔 수 없어 요양병원을 가시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할머니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셨다.

‘그러네, 이제 엄마에겐 친정이 없구나.’

작년 명절에 여행을 다녀오면, 엄마는 꼭 이렇게 한 마디를 했다.

“아유, 놀러 다닌다고 우리 엄마한테도 못 가봤네. 우리 엄마가 날 기다렸을 텐데.”

엄마 마음속엔 늘 친정이 있었다. 나는 그걸 몰랐고.

어떻게 나는 이렇게 생각이 짧을까. 내가 겪은 것이 아니면 알지를 못한다.

그날 동생과 엄마, 나 셋이서 외식을 하다가 내가 무심한 척 물었다.

“엄마, 명절에 왜 그렇게 우울했어?”

“뭐가.”

“그냥, 갑자기 화도 내고. 왜 그랬어? 말을 해야 알지.”

“… 그냥 몸도 예전 같지 않고.”

“그러니까 주방 일에 너무 매진하지 말라니까.”

“그래, 엄마. 이제 대강 사 먹고 그래요.”

동생이 답답하다고 안쓰럽다는 듯 말했다.

“내가 안 하면 누가 해. 내가 꼼지락이라도 해야 먹을 게 생기는데.”

엄마의 저 말과 고집은 꺾을 수 없기에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 회사에 갔는데, A가 나보고 그러잖아. 이제 엄마 돌아오시지도 못하는데 친정집 정리하는 게 어떻겠냐고.”

A는 엄마의 친한 회사 친구분이셨다. 작년쯤 어머님이 돌아가셨다.

“이제 진짜 못 돌아올 것 같은데. 정리를 해야 될 것 같은데…. 너네 삼촌이 알아서 하겠지…. 집 꼴이 말도 못 할 거야.” 할머니가 집에 살지 않은지 2년이 넘어가는 시점이었다.

“… 엄마가 마음이 안 좋았겠네.”

여자들에게 친정은 평생이라는데. 그 말의 무게를 그제야 느꼈다.

“엄마, 엄마가 준비가 되면 하면 되는 거야. 시간에 쫓기듯이 그럴 필요는 없어.”

이런 상투적인 말은 위로가 되지 않을 게 분명했다.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거실에 셋이 앉아 있다가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친구들 3월에 또 만난다고 했지?”

“응.”

“그럼 이 가디건 어때? 엄마 올리브색 좋아하잖아.”

“… 예쁘네.”

“이거 한 장 사줄까?”

“단추 모양도 한 번 보자.”

내가 쇼핑몰에서 올려놓은 여러 장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 단추 모양이 별로야. 엄마 배가 가려지려나?”

“엄마, 모델이 입은 건 스몰이잖아. 라지도 있어.”

“그럼 하나 사줘 봐. 바지는 또 뭘 입고 가야 되나.”

동생이 옆에 있다가 툭 끼어들어 말했다.

“엄마, 딸이 있으니까 좋네. 옷도 사주고.”

“흥.”

아직 기분이 안 풀리는 모양이다.

신경 써서 선물한 가디건도 소용이 없어 속상했지만, 늘 그렇듯 시간이 필요한 일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잠든 새벽, 깜깜한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나는 알고 있다. 엄마는 자기 마음을 알아주길 바랄 때 괜한 짜증을 낸다.


엄마가 조금씩 풀어주던 어릴 때의 일화들로 알 수 있었다.

엄마는 싫다고 말해도 들어주는 사람 없고,

힘들어도 인정해 주는 사람 없이 어른이 되어버렸다는 걸.

엄마가 마음을 말하는 방식은 그런 식일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닫고, 딸로서 마음만이라도 잘 알아주자고 다짐했었다.

그것이 내가 내게 내린 평생의 숙제였다.

명절이 싫다. 아직까지 책임질 가족도, 시댁도 없지만.

이렇게 내가 마땅히 했어야 하는 도리를 마주하게 되니까.

설거지 한 번으로, 가디건 한 장으로 막아지지 않을 마음의 숙제들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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