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쯤 남자친구가 살고 있던 집에 들어가 같이 살게되었다. 그 집에 나보다 먼저 와서 살고 있던 식물이 하나 있었는데 작은 대나무처럼 생긴 개운죽이었다.
남자친구 어머니께서 이사 선물로 사주셨던 식물인데 나도 처음엔 관심이 없었고, 남자친구도 식물 키우는 것에 큰 흥미가 없어 가끔 물만 챙겨줬고, 햇빛이 잘 들어오는 창가에 뒀다.
우리 집은 남서향으로 정오를 넘어가면 오후 1시부터는 해가 질 때까지 집으로 햇살이 쏟아지듯 들어오는데
그 창가에 개운죽을 두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식물 상태가 영 좋지가 않은 거다.
잎 끝이 갈색으로 자꾸 마르길래 남자친구한테 물었다.
저 대나무 이름이 뭐더라?
그때 다시 개운죽이라는 이름을 듣고 검색을 해봤더니 음지나 반음지에서 잘 자라는 식물이라고 한다.
식물이니 햇빛을 잘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참 무심하고 무식했다.
그 자리에서 용케 버틴 것도 원래가 순둥하고 생명력이끈질긴 식물이라서였다. 바로 자리를 옮겨주었다.
직사광선이 들지 않고 빛이 은은하게 들어오는 안쪽으로 옮겨주고, 많이 타버린 잎들은 과감하게 잘라냈다. 몇 달간 지켜보니 더 이상 잎들은 타지 않았고, 새로 나는 잎들은 예쁜 초록색을 유지했다.
개운죽의 호전되는 상태를 지켜보다 왜인지 뭉클한 마음이 들었던 순간이었다. 그맘때쯤 하던 일이 잘 풀리지 않고, 불안감을 많이 느끼고 있었는데 어쩐지 위로를 받은 느낌이었다.
다 각자 맞는 환경이 있겠구나.
거긴 내가 말라갈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고, 어딘가 내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있겠구나.
2년 정도가 지난 지금, 개운죽도 나도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내 자리를 찾은 것 같다.
-
개운죽은 너무 강한 빛은 피하고 간접광이 은은하게 들어오는 반음지나 음지가 좋고, 강한 햇빛이 드는 창가에 두었을 때 죽지는 않았지만 잎 끝이 타는 걸 볼 수 있었다.
뿌리를 물에 담가놓고 키우는 수경재배가 가능하고, 물론 흙에서도 키울 수 있다. 생긴 건 꼭 대나무처럼 생겼는데 실제로는 전혀 관계가 없고 ‘드라세나’의 일종이라고 한다.
수경재배로는 1-2주에 한번 물을 갈아주거나 채워주면되고, 흙은 적당히 배수가 잘 되도록 상토와 펄라이트 혹은 마사토, 바크 등을 섞어주었다. 예민하지 않은 식물이라 평범하게 배합한 흙에 심어줬는데 큰 문제없이 잘 자라는 것 같다.
성장 속도가 느리게 느껴져서 좀 더 쑥쑥 컸으면 하는 욕심에 수경으로 키우던 걸 흙에 옮겨 심어줬는데 별다른 차이는 못 느끼고 있다. 사실 개운죽은 원래 성장 속도가 매우 느린 편이라고 한다.
개운죽은 상처를 봉합하는 능력이 거의 없어서 절단면은 파라핀, 촛농 등을 덧씌워 주어야 한다. 그러면 그 위로는 더 이상 키가 크지 않고 다시 옆구리에서 순이 올라오면서 성장하는데 나는 그 사실을 모르고
대체 잎은 나는데 왜 줄기는 길어지지 않는지 한참을 답답해했었다. 어디선가 키가 쭉쭉 뻗어 내 키보다 큰 진짜 대나무 같은 개운죽을 보고서 우리 집 개운죽도 그렇게 커지길 바라고 더 애가 탔던 것 같다. 조급해한다고 크는 식물이 아닌데 말이다.
개운죽은 왜인지 존재감이 없는 편인데 있는 듯 없는 듯 느리지만 조용히 자라주는 게 문득 기특하고 효자 같은 식물이다. 입문용으로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