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들은 술을 참 많이 마신다.
나 역시 10년 동안 술과 함께 살아왔다. 술자리는 늘 이야기를 부르고, 사람을 부르고, 어쩌면 그때의 따뜻한 분위기가 좋아서였는지도 모른다. “사회생활”이라는 이름 아래 어쩔 수 없이 술잔을 들었던 날도 많았다. 불금, 불토라는 단어가 주는 묘한 해방감은 일주일을 버틴 나에게 주는 보상이기도 했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그것은 보상이 아니라 중독의 족쇄였다.
나는 알코올 중독이 아니었을까?
우리는 흔히 힘들 때 술을 마신다.
“오늘 하루는 너무 고되니까 한잔 해야지.”
이렇게 시작된 한 잔은, 결국 뇌에 잘못된 신호를 남긴다.
힘들면 술이 필요하다.
이 회로가 반복되면, 술은 어느새 위로가 아닌 필요가 된다.
뇌의 보상 체계는 조금씩 망가지고, 우리는 더 쉽게 술을 찾는다.
다음 날 아침, 숙취에 절여져 몸이 무너지는 순간조차 또다시 술을 향한 갈망을 만든다.
내 경험을 빗대어 보자.
나는 주 3회 이상 술을 마셨다. 마시면 보통 소주 3병 이상.
그게 너무 당연해서 기록할 필요조차 없었다.
힘들었기 때문이고, 맛있는 안주와 함께라면 술은 늘 더 맛있게 느껴졌다.
그러나 시간이 쌓일수록 내 몸은 망가졌다.
패턴이 깨지고, 다음 날 집중력이 떨어지고, 체력은 바닥났다.
결국 나는 알았다. 이것은 나의 통제가 아니었다. 술이 나를 통제하고 있었다.
술을 완전히 끊을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술이 습관이 되지 않도록, 내 통제 안에서만 두어야 한다.
예컨대, 특별한 날, 축하할 일이 있는 날, 진정으로 기쁜 날에만 술을 마시는 것.
그렇게 하면 술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기쁨을 함께 나누는 도구가 된다.
습관적인 음주는 우리의 일상을 앗아가지만, 통제된 음주는 오히려 삶을 풍성하게 만든다.
나는 아직도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면 소주가 떠오른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무의식적으로 술을 찾는 것은 중독의 신호라는 것을.
그리고 나는 중독 대신, 자유를 택하고 싶다.
스스로 족쇄를 벗어나 행동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자유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