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러 들어오는 행운
저 앞에 보인다. 못 본 척 폰 화면에 열중한다. 통화하는 척을 한다. 아니면 양손에 바리바리 짐을 들고 있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일부러 멀찍이, 최대한 빠르게 걸어간다. 전단지를 피하는 방법이다. 간혹 이런 준비태세(?)를 갖추지 못하거나 집요하게 건네받았을 때는 "죄송합니다"하고 쌩 지나친다. 텍스트로 적어놓으니 유독 매정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전단지 알바가 여전히 기피되는 것을 보면 이런 매정함이 나의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매정한 내가 저런 제목을 달고 이런 글을 쓰는 것은 뻔뻔한 철판이 아니라 지금은 꼬박꼬박 잘 받기 때문이다. 왜 받는지, 전단지를 받으면 좋은 점을 나열해볼 테니 공감이나 설득이 됐다면 오늘부터는 전단지를 받아보면 좋겠다. 아, 참고로 나 혹은 지인이 전단지 알바를 하는 중이라거나 해봤기 때문에 적는 건 아니다. 감정에 호소하는 글은 아니다.
1. 내 마음이 안 불편하다.
전단지를 받기 시작한 가장 큰 이유다. 나는 사실 그렇게까지 쌀쌀맞은 사람이 아닌가 보다. 첫 문단만 봐도 얼추 알 수 있을 것이다. 받기 싫으면 안 받고 말면 되지 않는가. 꾸역꾸역 '척' 하고 사과를 하는 건 받고 싶진 않지만 안 받기엔 죄송한 '애매하게 착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 받기에 성공하더라도 괜히 찝찝한 마음이 남아있었다. 마음 불편해 신경 쓰이느니 내 마음 편하게 그냥 받고 말아 버리기 시작했다.
2. 좋은 사람이 된다.
평범한 내가 손쉽게 사회에 베풀 수 있는 작은 친절이다. 어차피 누군가에 의해 버려질 전단지, 바닥에 버려져 또다시 누군가가 치워야 할 쓰레기가 되느니 내가 받아 쓰레기통에 버린다. 하루 종일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쓰레기통에 제대로 버리고 나면 이 작은 게 뭐라고 좋은 사람이 된 것 같아 뿌듯해진다. 고작 전단지 받는 것 갖고 좋은 사람이라 말하긴 어렵겠지만 사소한 일상에서 쌓이는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사람의 품성을 빚어낸다고 생각한다.
3. 운이 좋아진다.
앞에서도 말했듯 '애매하게 착한' 나는 천사처럼 무조건적으로 선하기도, 그렇다고 마냥 이기적이기도 불편하다. 이런 내가 이기적으로 선행을 하는 방법은 그 행동을 타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뿌린 대로 거둔다니까, 조금 귀찮고 손해 보는 기분이 들어도 풍년을 바라는 마음으로 좋은 씨를 뿌리는 거다. 전단지 받기도 좋은 씨앗 중 하나다. 내가 행운의 여신이라고 하더라도 전단지를 안 받는 사람보다 받는 사람에게 더 행운을 주고 싶을 것 같다. 그렇게 0.1점의 부분점수라도 더 높게 받겠다는 얍삽한 심보를 가져보는 거다.
4. 전단지 받는 거 진짜 쉽다.
손만 내밀면 된다. 아니, 안 내밀어도 주시더라.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 받기만 하면 된다. 알아서 굴러들어 오는 행운을 기꺼이 받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읽고 나니 어이없을 수도, 허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전단지를 받는 것과 위에 나열한 장점들의 인과관계는 정말 낮다. 결국 태도,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느냐의 차이다. 그래도 이런 글 보고 전단지를 받으면 플라세보라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나는 전단지를 받는 지금이 열심히 회피하던 전보다 마음에 든다.
이 글을 읽고도 여전히 전단지를 지나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오히려 좋다. 행운의 대기열에서 내가 더 앞번호가 되는 것이니 감사하다. 나보다 한참 뒤에 행운 받으셔라. 이런 내가 약 올라서라도 당신이 전단지를 받았으면 좋겠다.
오늘 내 가방에는 미용실과 헬스장 전단지가 들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