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지 않는 다리 위에 마음을 얹어 두고
침대에 누워 스크린을 올려다봤다.
리모컨보다도 무거운 건 팔이 아니라, 가슴이었다.
나는 멈춰 있는데, 화면 속 시간만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샘은 천천히 말하고, 천천히 웃고, 천천히 움직였다.
그 느림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부족함’이었겠지만,
이상하게도 내 눈에는 누구보다 온전한 사람처럼 보였다.
최소한, 나처럼 스스로를 짓밟지는 않았으니까.
나는 다리를 잃었다고 생각했다.
아니, 사실 그보다 더 많은 걸 잃었다.
계단을 오르던 기억,
아무 생각 없이 뛰던 버릇,
비 오는 날 물웅덩이를 밟아도 웃었던 이유들.
그 모든 게 아직 어딘가에 살아 있는데,
오직 나만 그 세계에 들어갈 수 없게 된 기분이었다.
샘이 딸의 손을 잡고 걷는 장면을 보면서,
나는 내 다리를 쳐다봤다.
움직이지 않는 살덩이처럼 누워 있는 하체는
마치 나와 아무 약속도 한 적 없는 타인의 몸 같았다.
그때 문득
이 질문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나는… 앞으로 뭘로 살아 있을 수 있을까?”
사는 것과 숨 쉬는 것의 간격이
이렇게 멀어질 줄은 몰랐다.
숨은 붙어 있는데,
삶은 자꾸 저 멀리 도망가 버리는 기분.
샘은 포기하지 않았다.
법정에서, 사람들 앞에서,
수없이 무너졌지만 끝내 무너지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 장면들을 보면서
눈물이 아니라 분노가 먼저 올라왔다.
“너는 서 있잖아.”
“너는 걸을 수 있잖아.”
“너는 도망갈 수 있잖아.”
그러면서도
그를 미워하지 못했다.
그는 나보다 불리한 조건으로
나보다 더 똑바로 사랑하고 있었으니까.
그걸 보면서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나는 너무 쉽게
나 자신을 포기하고 있었구나.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이유로,
나는 나를 서서히 장례 치르고 있었구나.
영화가 끝날 즈음,
눈물이 조용히 흘러내렸다.
울고 싶어서가 아니라
참고 쥐느라 흘러내린 물 같은 눈물.
나는 여전히 누워 있었고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고
여전히 막막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나는 아직 나를 미워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어쩌면,
그 사실 자체가
아직 완전히 꺼지지 않았다는 증거라는 것도.
극복이라는 말은
요즘 내게 너무 잔인하다.
그 말은 언제나
‘일어나’라는 명령처럼 들리니까.
그래서 나는 다른 말을 택하기로 했다.
견디기.
버티기.
그리고… 포기하지 않기.
다리는 멈췄지만,
나는 아직 끝까지 나를 배신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여전히 병원에 있고,
여전히 두렵고,
여전히 불완전하지만
그래도 오늘,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이 생각 하나만큼은
조용히 마음에 남겨 두었다.
나는… 아직 나를 떠나보낼 준비는 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