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조직을 운영하다 보면
사람에게서 가장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여기서는 이것저것 다 하게 되네요.”
대기업에서는
각자의 역할이 비교적 명확하다.
정해진 직무, 정해진 책임, 정해진 경계.
하지만 작은 조직은 다르다.
일은 계속 생기고,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한 사람이 여러 역할을 맡게 된다.
문제는
기준 없이 이것저것 하게 될 때 생긴다.
그때부터 구성원은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보다
소모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 쉽다.
“내 전문성이 쌓이고 있나?”
“이게 내 커리어에 도움이 되나?”
멀티플레이는 필요하지만,
아무 기준 없는 멀티플레이는
조직에도, 개인에게도 좋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멀티플레이를 전제로 하되
한 가지 원칙을 먼저 세웠다.
각자 반드시 ‘메인 역할’을 가진다.
그 위에서만
멀티플레이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우리 팀은 대부분 공학자들이다.
하지만 세부 전공은 모두 다르다.
전자공학,
의료공학,
기계공학,
재료공학,
생명공학.
각자는
자기 전공 영역에 대해서는
명확한 책임을 진다.
그게 흔들리면
멀티플레이도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메인 역할이 분명해지면
그 다음부터는 자연스럽다.
누군가는
다른 프로젝트를 서포트하고,
누군가는
회의에 참여해 다른 관점에서 의견을 낸다.
“이건 내 일이니까 안 합니다”보다는
“이건 네 영역이지만, 내가 도울 수 있는 건 뭘까”
라는 질문이 생긴다.
이건 역할을 흐리는 게 아니라,
역할을 존중하기 때문에 가능한 협업이다.
백오피스 업무도 마찬가지다.
전담 인력을 두지 않고
임원이 병행해서 맡고 있다.
효율의 문제라기보다는
조직의 밀도를 유지하기 위한 선택이다.
작은 조직에서는
모든 사람이
회사의 전체 흐름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
멀티플레이어가 많다는 건
한 사람이 모든 걸 잘한다는 뜻이 아니다.
각자가 자기 중심을 지키면서
서로의 빈 공간을 메워주는 상태에 가깝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을 뽑을 때도
“얼마나 많은 걸 할 수 있나”보다는
“자기 영역을 얼마나 책임질 수 있나”를 먼저 본다.
작은 조직에 필요한 건
다재다능함이 아니라
균형 잡힌 확장성다.
메인이 있고,
그 위에 얹히는 멀티플레이.
이 구조가 유지될 때
작은 조직은
빠르면서도 지치지 않고 움직일 수 있다.
이건 대기업의 방식도 아니고,
모든 스타트업에 맞는 정답도 아니다.
다만
우리가 여섯 명으로 일하며
가장 안정적이라고 느낀 방식이다.
작은 조직에는
작은 조직만의 전략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사람을 ‘여러 일을 시키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의 중심을 가진 존재로 보는 데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