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이미 자기 역할을 알고 있었다

by Bosu Jeong

퇴근하고 집에 오면

나는 자연스럽게

아빠의 역할로 돌아간다.


저녁을 함께 먹고,

책을 읽고,

보드게임을 하고,

과자를 조금 나눠 먹는다.


오늘도 그런 저녁이었다.


그러다 아이가

이런 말을 했다.


“아빠, 이건 내가 설명해줄게.”


보드게임 규칙이었다.

며칠 전부터 아이가 자주 하던 게임이라

내가 모르는 게 있었다.


나는 가만히 들었다.


아이의 설명은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자신감이 있었다.


“이건 내가 잘 아니까.”

“이건 아빠가 해도 돼.”


자연스럽게

역할이 나뉘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미리 정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자기가 잘 아는 걸 맡고,

모르는 건 도와달라고 했다.


그 순간

회사 생각이 났다.


우리는 종종

역할을 ‘정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직무를 나누고,

책임을 구분하고,

경계를 만든다.


하지만 아이들은 달랐다.

역할은

스스로 알고 있는 것에 가까웠다.


아이는

모든 걸 하려고 하지 않았다.


자기가 잘 아는 부분은 맡고,

아닌 부분은 자연스럽게 넘겼다.


그래서 게임은

끊기지 않고 흘러갔다.


누군가 답답해하지도 않았고,

누군가 과하게 나서지도 않았다.


나는 회사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자주 본다.


자기 역할을 알고 있는 사람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움직인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다른 사람의 역할도

존중할 줄 안다.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다 보면

이상하게

회사에서의 기준이

더 또렷해질 때가 있다.


조직이 잘 돌아간다는 건

모든 사람이 열심히 하는 상태가 아니라,

각자가 자기 역할에 편안한 상태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에게

“이건 네 역할이야”라고

가르친 적은 없다.


다만

같이 시간을 보내며

자연스럽게 익숙해졌을 뿐이다.


회사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퇴근 후의 시간은

회사 이야기를 하지 않는 시간이다.


그런데 아이들과 보내는 이 시간이

오히려

회사를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에 대해

가끔 더 정확한 답을 준다.


오늘은

그저 게임 하나를 하다

그 사실을 다시 떠올렸다.

작가의 이전글작은 조직을 위한 멀티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