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글을 읽는 사람들은
내가 아이들에게 얼마나 진심인지
어느 정도 느끼고 있을 것 같다.
누구에게나 아이는 소중하지만
나에게는 조금 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첫째 아이는
내가 휴직을 하던 시기에 태어났다.
그래서 100일까지의 시간을
거의 온전히 함께 보냈다.
아마 이 경험이
나를 조금 다른 아빠로 만든 것 같다.
엄마는 아이를 품고 있는 시간 동안
자연스럽게 부모가 되어간다.
하지만 아빠는 조금 다르다.
갑자기 태어난 아이를
머리로는 소중하다고 알지만,
가슴으로 느끼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나에게 그 100일은
아이의 든든한 배경이 되겠다고
마음먹게 만든 시간이었다.
둘째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중환자실에 있었다.
그때 나는 많이 울었다.
흐르는 눈물로
볼이 마를 정도였다.
그 경험은
아이와의 시간을
더 소중하게 만들어주었다.
그 이후로 나는
의식적으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건
나에게도 너무 즐거운 일이었다.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도 없고
그저 함께 웃고, 뛰고, 이야기하면 된다.
굳이 다른 곳에서
무언가를 찾지 않아도 되는 시간.
그래서 나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특별한 것을 해주지 않아도 괜찮다.
그저 곁에 있어주는 것,
그 자체로 충분하다고 믿는다.
나는 아이들에게
늘 곁에 있는
든든한 배경이 되고 싶다.
그리고 지금,
그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자라고 있다.
점점 나를 찾는 시간이 줄어들고,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아이들이 나를 가장 찾을 때는
함께 있고,
아이들이 덜 찾을 때는
나의 시간을 다시 찾자고.
사람들은 말한다.
아이들은 정말 금방 큰다고.
그 말이
이제는 실감이 난다.
언젠가는 이 시간을
아쉬워하게 되겠지만,
조금이라도 덜 후회하기 위해
오늘도 나는
아이들이 부르는 곳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