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이 있어야 하는 사람

헬스장 빌런 소송기 04

by 붕어빵의 효능


어제 헬스장 본사와 통화 뒤 나의 액션 플랜은 한결 간결해져서,

빌런한테 나머지 치료비 내라고 하고, 그냥 합의금은 안 받겠다고 하면 금방 끝나겠지 싶었다.

그래서 빌런에게 상황이 이렇고(보험 커버 외 추가 치료비 발생) 난 이랬으면 좋겠는데 (추가 치료비만 내)

어떻게 생각해? 라는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 빌런이 씹으면 경찰 고소하고 내용증명 보내고 고소하면 되고

싫다고 해도 되니까 뭐 똑같이 하면 되지 뭐. 하고 넋놓고 있었다.

그런데 빌런은 역시 빌런이었다. 나는 이 연재기가 의외로 금방 싱겁게 끝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세상이 나를 브런치작가의 길로 인도하는 건가. 그렇지 않았다.

자 그럼 이제부터 빌런이 어제 어땠는지 낋여줄게.


그냥 위자료 없이 치료비만 내고 합의하는거 어떻게 생각해? 라는 나의 문자에

한 두어 시간 넘게 지난 후 빌런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런데 진짜.. 그건 내 평생 잊지 못할 신박한 답변이었다.


'저희 남편과 통화해보시겠어요?'


뭐 보통 싫다거나 욕설을 하거나 비싸다고 추가 네고를 하거나 그게 아니라 완전히 내 상상력을 뛰어넘는 반응이라 나도 순간 버벅거렸다. 네? 네? 네? 뭐라고요? 왜요? 내가 왜 니남편이랑 전화를 하죠? 금치산자세요?


잔뜩 고압적이고 가오잡는 남성이 전화를 바꿔서 상황 다 알고 있고 우리 변호사가 그러면 합의서 보낼테니까 그건 어떻겠냐고 했다. 목소리가 정말 불쾌했다. 직장에서도 상사가 저러면 가만 있지는 않을 수준(그러니까 퇴사했겠지) 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지가 갑이라는 그 자세. 이보세요. 너님이 가해자고요. 나는 한방병원 드러눕는 것도 아니고 이 더운데 병원 다니는 것도 존나 짜증나요. 내가 지금 보험사기단도 아니고.

근데 뭐라고요?


'너무 피곤하네요... 저도 빨리 끝내고 싶어요. 합의서 전달해 주세요'

그 남자의 권위적인 기분나쁜 어투, 밑에서부터 긁어대는 가오기름진 목소리만 기억나고 난 그냥 당황해서 (대체 내가 왜 니 남편이랑 통화를 해) 뭐라고 했는지 크게 기억이 나질 않는 통화를 마쳤다. 그러고 나서 처음 몰려오는 감정은 불쾌감인데 이것 또한 뒤끝이 끈적한게 순수한 불쾌감만으로 이루어진 감정이 아니었다.


대체 이런 빌런은 어떤 유형의 인간인가. 남을 넘어뜨려놓고 뒤에서 구경을 하질 않나 경찰이 잡으러 오고 고소를 하겠다니 그제서야 자기 남편을 앞세우는 인간. 이건 대체 어떤 끔찍한 회피형 권위자인가 하는 인류에 대한 호기심과 마지막 한 구석, 나도 우리 아빠한테 이를까 남편한테 이를까? 이런 유치한 생각이 뒤섞이다가 세상에 이 흉터가 비가역적인 것이고 더 크게 다쳤으면 그때는 진짜 더 억울해서 어쩌나 싶은 마음까지.


그리고 오늘 아침에 합의서라고 보내왔는데. 역시나 개판이었다.

난 오늘도 빡이 겁나 쳐서 잠을 못 자지 않을까. 로스쿨 졸업반도 이렇게는 안 쓸거다. 일부러 엿먹이려고 이렇게 쓴건가 싶을 정도로 무례하고 모욕적인 계약서였다. 원래 변호사들이 처음에 땡겨서 쓰고 그다음에 협상하는 식으로 일을 하기는 하던데 (좀 과하다 싶어서 이렇지 않아요? 라고 하면 조정점을 저렇게 둬야 나중에 협상하기 편하다고... ) 아니 지금 합의금도 안 받고 빨리 끝내자는 사람한테 저렇게 양아치로 나올 일이냐.

내가 추가 치료비를 요구할때마다 위약벌로 받음 금액을 회당 뱉어내라는 위약벌 조항을 넣어뒀다.

이건 그냥 개새끼라고 봐야 한다. 그 외에도 빡치는 포인트가 매우 많지만 아무튼.


합의서 동의하지 않고, 변호사랑 이야기하라고 했다. 귀찮다. 저딴 빌런이랑 말섞고 싶지 않다.

나는 합의와 소송 이전에 그냥 경찰 신고를 진행할 생각이다. 인실좆을 시키겠다.

이런 식으로 감정 포인트를 하나 둘씩 건드리면 그게 큰 일이 되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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