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노동자 팜하니의 직장내괴롭힘 요지경
세상에. 팜하니는 외국인 노동자잖아.
정신과 진료를 마치고 느릿느릿 길을 걷다 인터넷을 켰더니 오늘 국정감사에 뉴진스 하니가 등장했다고.
하이브와 민희진과 뉴진스와 그 일련의 사태들은.. (일단 말을 줄이고)
대신
구찌백을 매고 국정감사에 들어오는 스무살짜리 외노자가 대체 어떤 부분에서 노동자들의 대표성을 가지고 있다는 건지 난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어떤 사람들은 직장내괴롭힘으로 온 육체와 마음이 짓이겨질정도로 괴로워서 자살을 선택하기도 한다. 심지어 나도 자살충동을 종종 느낀 적이 있었다. 아 너무 억울하다. 이거 내가 죽으면 끝나나. 그런 생각 때문에 피해자들은 자살이 생각날거다.
그런데 말입니다. 실질적인 더 큰 집채만한 괴로움은 먹고사니즘과 연결되었을 때 더 큰 고통으로 다가온다. 어떤 피해자들은 당장 월세와 이자와 생활비를 감당해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직장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반강제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으며, 어떤 폭력으로부터도 보호받지 못한 채 점점 더 수렁같은 상황을 감내해야 될 수도 있다. 슬프게도 괴롭힘조차 절대 평등하지 않으며, 그 누구에게는 더 혹독하다.
나만 해도 많이 아프지만.. (오늘 3개월 진단받았다) 당장 일을 하지 않아도 생계에 지장 없으니 휴직이니 퇴사니 소송이니 하면서 통밥을 굴리고 있는 거고, 정 급하면 가해자한테 리터럴리 세번째 손가락의 뻐큐 날리고 퇴사해도 괜찮을 재력과 사회적 지위는 가지고 있다.
상대적으로 그래도 선택의 자유도가 넓으니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이 억울함과 분노를 어찌할까 싶고
그 과정에 그 어떠한 안전 장치 없이 고스란히 노출될 다른 노동자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려왔다. '무시해'라는 말을 들었다고 국감에 나가는 저 해사한 얼굴은 피해자를 주장하기에는 그 스스로의 권력이 너무 막강하지 않나.
나는 분명히 뉴진스가 사내괴롭힘을 당했을 것이라고는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사람들이 핍박받고 있는가, 는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들도 충분히 그들 나름대로 괴로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노동자를 대표할 수는 없다. 더군다나 핍박받는 노동자의 대표로는 더더욱.
뉴스를 보자 무기력이 몰려와 더 느릿느릿 집에 들어왔다. 오늘은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선생님도 좀 쉬어도 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