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소송의 방

분노와 복수심은 당연한 것입니다

by 붕어빵의 효능

한 달만에 대학병원 진료를 받았다.

지난 번 치료에서 선생님은 정말 쉬는게 좋겠다고 했었다.

이직 준비, 소소하게 글 쓰기, 스터디, 동네 모임..

뒤쳐지지 않으려고, 회사에서 적응 못한 낙오자가 되지 않으려고 소소하게 발버둥치던 것들도 다 끊어 버렸다. 그냥 온전하게 쉬어 버려야겠다. 마음을 놓아 버리니 좀 숨을 쉴 수가 있었던 것 같고 아침엔 나른하게 아침약 먹고 잠깐 졸고 오후엔 아무 것도 안하다가 영화나 한 편 보다가 별 시덥지 않은 일이나 하다가 강아지 배방구나 뀌고 그렇게 허송세월로 살았다.


병가는 끝이 났고 남은 연차를 닥닥 그러모아 쉬는 중이다.

그 사이 회사는 난리가 나서 내가 속한 팀은 없어져 버렸고

희망퇴직과 정리해고를 진행하는 중이며

희망퇴직을 신청했지만 회사가 받아줄지는 미지수다.

그리고 긁어모은 연차도 다 써버려서 내일은 정말 출근을 해야 한다.

무급 병가를 쓰는 방법도 있는데 며칠만 더 버티면 희망퇴직 대상자가 발표되기 때문에

아주 조금만 버티는 방법을 선택할까 한다. 사실 마음이 한 이십퍼센트정도는 남아서 그냥 병가 쓸까.. 이런 마음도 있기는 하다. 그냥 회사에 가는게 싫고 그건 끔찍한 그 사람들을 마주치는게 너무 싫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따위 찐따들한테 스트레스 받는다는 그 상황 자체가 더 싫다.

그래서 그냥 당당하게 회사에 나타나고픈 생각도 있는 거다.


오늘은 진료 시간에 선생님이 생각보다 마음의 상처는 낫는데 시간이 조금 걸리지만, 낫기는 낫는다면서

분노와 복수심은 당연한 거라고, 현대 사회의 각종 제도들이 그걸 막고 있을 뿐

원시 사회를 생각해 보라며 그건 자연스러운 인간의 반향이라고 말해 줬다.

각종 교양과 자기 수련으로 그들에 대한 분노를 억제하고

사실 복수가 가능할거라고 생각도 안해서 포기도 포함해서 그런 패배의식에 젖어 있었는데 (여기에서 오는 우울감은.. 말도 못한다) 아 그건 아니구나. 가끔씩 고기 먹고 힘이 나면 쌍뻐큐 날리는 상상을 하는 내가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인 것이구나 그런 안도와 신남의 끄트머리자락 그쯤의 희미한 감정을 느낀다.


모르겠다. 이미 40줄에 들어서고 있는 경쟁력 없고 연봉만 높은 물경력 아줌마한테

온정을 베풀 회사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다시 또 노예로 귀중한 시간을 담보잡혀가며 중년을 불싸지를 생각도 크게 없다. 하지만 자존심이 상한다. 세상에 내 자리가 그렇게 없는 것일까.

이쯤 되면 날 괴롭힌 인간들에 대한 분노는 마음에서 우선순위가 아닌지가 아주 오래 되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가 나에게는 더 중요한 문제다.

다만 그 과정에서 대인관계 기피와도 같이 그들이 앞으로의 나에게도 깊게 상흔을 남긴 것에 대해서는

용서할 수가 없다.

당장 내일이라도 쌍뻐큐를 날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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