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을 했다

아무도 모르게

by 붕어빵의 효능

결국 출근을 했다. 연차가 드디어 0이 되었고,

희망퇴직 대상자는(빌어먹을hr) 아직도 발표를 안 한다. 분명히 이번주에 발표한다고 했는데 주 중까지 왔는데도 미루는 심보는 뭐냐. 희퇴 대상자가 되면 3주 정도는 재택근무로 전환이 가능하다.

그래서 무급휴가를 신청하지 않고 버티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출근을 했다. 아무도 안 하는 시간에.

새벽의 회사는 매우 조용했다. 회사 건물은 참 좋다. 사람이 잘 돌아다니지 않는 시간의 리조트 같다.

내 자리로는 가기 싫어서 (심지어 가해자랑 붙어있다) 이곳저곳 공용공간을 서성였다.

새벽의 회사는 이런 모습이구나. 퇴사 전에 참 이런 것까지 구경한다.

마땅한 자리를 찾지 못해 지하 식당에 들어가 책을 읽기 시작했고

읽는 것이 경미하게나마 내 불안을 줄여 주었다.

아는 사람을 만나면 어떡하지.

점점 아침 시간이 다가오면서 사람들 시선도 말소리도 두런거리고 부스럭거리는 소리도 무서웠지만

글자 앞에 남은 힘을 그러모아 집중하고 있노라니 조금 마음이 안정이 되고 출근 참 별일이 아니네 싶었다.

안정제가 혈관과 전두엽까지 도달하자 다시 나른한 졸음이 몰려오기 시작했고

해도 점점 뜨고 있어서 옥상 도서관에 갔다.

참 멋진 공간이다.


햇살을 맞으며 졸다 남은 책을 읽다가 하다 보니 드디어 점심시간이 되어 구내식당에 내려갔고,

나를 괴롭히던 한 사람과 눈을 마주쳤지만 나를 본 건지 만 건지 못 본 척 하는건지

아니 근데 지들끼리 그렇게 의리로 뭉쳐서 죽고 못 사네 하더니만 쟤는 왠 혼밥이냐.

알게 뭔가.

약간 덜컥하던 마음이 대범해졌고 점심밥을 싹싹 긁어먹고 상쾌하게 퇴근했다.


오늘은 오후반을 해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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