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살에 사랑니를 빼면

회복력의 중요성

by 붕어빵의 효능

과거 이십대 후반, 나는 사랑니 네 개중 세 개를 뺐다. 나머지 하나는 왜 안 뺐는지 기억은 안 나는데

아무튼 세개를 뺐다. 사랑니 발치는 큰 일이라던데, 발치 장인을 만나서 그런건지 젊어서 그랬던 건지

어? 생각보다 괜찮은데? 이런 기억이 있다. 아프지도 않았고 발치 후 고생도 거의 안 했다.

한 일주일정도 술은 안 먹었는데 사랑니 빼서 술 안먹는다고 하면 사람들이 사랑니 뺐다고? 하고 물어보는 수준이었다.


근 일년여간 남은 사랑니 하나가 자꾸 잇몸을 건드려 아프기도 한 터라 얼마 전 남은 사랑니를 빼기로 큰 맘을 먹었다. 사실 의료보험에 대한 무지로 (퇴사하고 백수되면 무조건 의료보험 안 되는 줄 알았다...) 퇴사 전에 큰 일 해치우자 이런 맘으로 그러면 선생님 사랑니 빨리 빼주세염. 이렇게 저질러 버린 일이긴 하다. 하긴. 언젠가 하기는 해야 할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대망의 치료날. 선생님이 발치를 시작하며 쓰읍.. 이러는데 순간 좆됨음을 감지했다.

보자기를 두르고 누운 채 사랑니와의 실랑이 과정이 영겁의 시간처럼 느껴졌고 진짜 공포스러웠다. 흑흑.

(그래도 조각은 내지 않고 잘 발치했지만) 이후 부기와 아픔이.. 솔직히 존나 아프다. 잠을 못 잘 정도로.

발치 자리의 지혈 등 예후를 보건대 이건 그냥 내가 늙어서 아픈게 맞다.


아침에 또 항생제 털어넣고 드는 생각이 늙을수록 회복력이 더뎌진다는데 이건 마음에도 적용이 되는 일일까 생각해 봤다. 아직 정식 퇴사자가 되려면 몇 일이 좀 더 남긴 했다. (참 길다.. )

괴롭힘 신고로 유급휴가에 퇴직신청으로 재택에 연차 털이까지 실제로 출근을 하지 않은지는 5개월이 다 되어간다. 이미 충분히 백수의 패턴에 익숙해지고도 남았을 시간이어야 하는데 아직도 괴롭힌 새끼들 생각이 나면 분하고 (그래도 강도는 훨씬 덜하긴 하다) 백수를 받아들이는 것도 아직 덜 된 것 같고 좀 상태가 애매하달까. 아침에 눈을 뜨면 일어난 것도 아니고 안 일어난 것도 아니고 애매하게 있다가 독서 같은걸 하며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미래를 도모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벽하게 쉬는 것도 아닌 그런 상태로 반나절은 보낸다. 물론 중간에 쇼츠와 유투브와 인터넷 쇼핑과 (요즘 추가된 것은 뉴스) 등을 곁들인.


적극적으로 미래를 도모하거나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구직을 하는 것도 아니고

이런 애매한 상태를 스스로한테 어디까지 자 그래도 괜찮아 하고 용인해줄지. 어렵다.

아직도 회복이 안 된게 맞는 걸까?


그래도 입안이 너무 아프니까 이번주까지는 좀 놀아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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