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만 통장 잔고를 곁들인
사랑니 발치의 후유증은 실로 대단했다. 거의 일주일 가까이 제대로 된 음식을 먹지를 못했다.
한쪽으로만 씹는 것도 어려운데다 매운거 먹으면 퉁퉁 붓고(떡볶이 세 입 먹었다 황천길 다녀옴..)
부기도 거의 일주일이 갔다. 늙으면 부기가 잘 안 빠진다고 병원에서 그러드라.
그렇게 겨우 극복하나 싶었더니 독감이 찾아와 증말 하늘이 노래지는 경험을 겪었다.
기분탓인가 원래 골골대는 체질이기는 한데 유독 코로나를 앓고 나서 감기 증상이 더 세게 오는 느낌이다.
거의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수준? 한 이틀은 변기통 붙들고 끙끙 앓고 살았다.
어제 드디어 좀 소강상태가 되었는지 식욕도 돌아오고 먹을 수 있겠다 싶어서 야밤에 컵라면을 먹었는데 너무너무x12 황홀했다. 멀쩡한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 무언가를 먹을 수 있는 상태가 된다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꽤나 건강한거다.
하여 아프고 배고픈 공식 백수의 시절이 시작되었다.
上. 아침 풍경
나는 강남에 살고 있다. (솔직히 말해 좀 불행해 보여야 많은 사람들이 온라인상에서 공감을 보내 줄 텐데 아쉽다) 동네 생활은 꽤나 만족스러운데 극성스럽고 호화스럽기보다는 조금 조용하고 한적한 곳이기 때문이다. 학군지가 아닌 터라 우리 동네는 퇴직한 것으로 보이는 할매할배들, 혹은 그들의 자산을 물려받은 학령기 이전의 아이가 있는 젊은 부부들, 그리고 고위직 공무원들과 검소해 보여야 하는 정치인들이 모여 살고 있다.
강아지 산책 때문에 아침 일찍 동네를 돌아다닐 때가 많은데 엄청난 새벽에 가면 자기 꼬마빌딩 청소하는 건물주들이나 골프 라운딩 가는 할줌할배들, 국제학교 셔틀버스 타는 어린이들. 조금 더 뒤 타임에 가면 온통 만석인 동네 브런치집들을 지나치게 된다.
여기에서 느끼는 역설적인 감정은, 누가 부지런하면 성공한다고 그렇게 가스라이팅을 하냐는 거다.
이곳 사람들은 정말 아침부터 부지런하다. 다들 아침 못 먹어서 안달이 났는지 정말 브런치집에 빼곡하게 사람이 들어차 있고 라운딩 가는 차들로 아침마다 아파트 앞은 인산인해다. 눈 비비면서 학교 가는 애기들은 말해 뭐해. 하지만 그 이전에 내눈에는 첫차를 타고 온 것으로 보이는 가사도우미들과 그들이 라운딩이나 아침 회의를 가기 위해 차를 대령해 놓는 기사들이 보인다. 광내서 차까지 박박 닦아가면서. 사실 저 사람들이 더 부지런한거 아닌가? 알 수 없는 이상한 감정이 든다. 그냥 열심히 살고 부지런하면 부자 된다는 말이 졸라 개뻥인건 잘 알겠다.
中. 놀이터 풍경
여기 놀이터는 학령기 이전의 나이대 애들만 정해진 시간에 엄마 혹은 보호자와 함께 등장한다. 애기들이 우리 강아지를 엄청 좋아하기 때문에 종종 어울리고는 하는데 아이들은 정말이지 예의바르며, 겁이 많고, 다정하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재미있는 것은 영어가 꽤나 자주 들린다. 거의 80프로의 비율로. 엄마들은 높은 확률로 애기들보다 영어를 못한다. 왜그런지는 모르겠다. 나이가 어릴수록 영어를 구사할 확률이 높아진다.
학업계획이나 진로에 대해 조잘조잘 떠느는 아이와 부모들도 많이 본다. 주로 너 몇개 틀렸어 왜 다 안풀었어 이런 이야기보다는 '그래서 아빠가 왜 좋은 대학 가야한다고 그랬지?' 라고 동기부여를 하는 식이다.
이것도 뻥이다. 나 서울대 나왔는데 속된말로 지잡, 고졸들이랑 게임회사에서 일했다. 걔네가 나보다 연봉 많았을 수도 있다. 하버드 나온 내 동생은 시간강사로 뺑이치는 중이다. 다 개뻥이다.
차라리 직업선택에 대해서 알려주는게 더 바람직하다. 하지만 애기들은 하나같이 유투버가 되고 싶다고 했다. 이건 그냥 지역불문 전국민 공통인건가. 놀고싶은 뽀로로 되기와 유투버 되기.
下. 노년의 풍경
다만 이곳에서 참 보고 배울점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사이가 좋고 다정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다는 것이다. 손을 꼭 잡고 양재천을 산책한다거나 브런치집에 가서 할머니는 손하나 안 대고 할아버지가 정성스레 잘라준 샌드위치를 먹거나 신문을 보고 서로 도란도란 이야기하거나 그런 게 정말 좋아 보인다. 빵집에 가면 할머니 준다고 할머니가 좋아하는 빵 한아름 사는 할아버지들도 그렇게 많다.
남편이 하는 말이 저것도 다 돈있어서 저렇게 화목한 거라고 아무튼 젊어서 개같이 벌어야 한다고 그러기는 하는데 노년의 화목과 평화가 얼마나 값진 것인지 이 동네에 살면서 깨달았다.
이 부분은 아직 내가 경험한 것이 없으므로 어떤 부분이 뻥인지 인사이트가 없다.
시나리오는 진도는 안 나가고 공모전 마감일은 자꾸 다가오는데
돌아버릴 것 같아서 그냥 일기나 써 봤다. 이제 진짜 시나리오 쓸거다.
그럼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