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늦게 식을 때

(뒤늦은 미안함은 오래 뜨겁다)

by kerri


>> 감정은 늘 늦게 도착한다는 걸 나는 오래전에 알았다.
그래서 더 조심했고 그래서 더 미안했다.
너는 아직 모를 거야. 나는 너의 마음이 늦게라도 도착하길

얼마나 오래 기다리는 사람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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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늦게 식을 때>



어질러진 신발을 정리했다
누가 밟고 지나갈까 봐
그저 그랬을 뿐이다

근데 얘는
오늘도 짜증이다
하, 또 저 표정이다

참았다
또 참았다
그런데 이번에도
말이 툭 하고 나왔다

"너도 이제 다 컸잖아"
"좀 알아서 해라"
"엄마도 힘들어 죽겠다"

딸아이 눈이 잠깐 흔들리더니
문이 꽝 닫혔다
그 소리에
내 마음도 쿵, 하고 내려앉았다

하루 종일 친구들이랑 웃고 떠들면서,
엄마한테 미안해 한 마디는
잊은 모양이다
진짜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나 보다

사실
나도 후회했다
그냥 말하지 말 걸
좀 더 따뜻하게 말할 걸

얘도 힘든 거 아는데
내가 더 버텨야 하는 걸 아는데
오늘도
그게 안 됐다

이상하다
이젠 다 큰 딸이
가끔 너무 섭섭하게 느껴진다
근데 또
너무 미안하다

그래서 나는
그 밤
불 꺼진 방에서
혼자
마음이 늦게 식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