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라면을 끓이다 뜨거운 냄비에 손을 데었다. 커다란 물집이 왼손 엄지 손가락 밑에 생겼다.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사무실에서 천장을 바라보며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세 시쯤 되자 원숭이가 들어왔다. 상사 언니는 놀다 가라고 말했다. 우리는 돈이 없어서 카페에도 갈 수 없었기 때문에 사무실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정신 병원 이야기를 해줄 수 있어?”
원숭이가 물었다.
그래서 나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느 날부터인가 잠이 쉽게 오지 않았어. 심지어 이틀을 꼬박 새운 적도 있었지. 밤에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드는 거야.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고 지켜보는 사람은 분명 대단히 악한 존재일 거라고. 그래서 내가 사는 세상은 영화 매트릭스처럼 가짜세계와 진짜세계가 나눠져 있고 나는 가짜세계에서 감시당하며 사는 사람일 뿐이라고. 그런 생각이 들자 나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어. 어떻게든 이 가짜세계를 빠져나가야겠다고 생각했어. 당시 나는 서울 안국동에 살고 있었는데, 집 밖으로 나가 보신각 까지 걸어가서 보신각을 붙잡고 알 수 없는 힘을 느끼기도 하고 근처 카페에서 과도를 훔쳐 양말에 꽂고 돌아다니기도 하고 보신각 주변에 누워있는 노숙자들에게 말을 걸기도 했어. 이곳은 가짜다. 진짜 세계로 빠져나가야 한다,라고 말하면서.
그렇게 부모님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실종이 돼버린 나를 경찰들이 찾아다녔어. 나는 정말이지 맨발로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어. 안산에서 서울, 서울에서 영월… 양말에 칼을 꽂고 말이야. 어느 날은 경찰의 눈을 피해 성당으로 도망을 쳤는데 사람들이 모두 기도를 하고 있었고 수녀님들이 뒤에서 기도를 하고 있었어. 아마 미사를 드리는 중이었나 봐. 나는 그곳에서 알 수 없는 힘에 짓눌리는듯한 느낌을 받았어. 성당 바깥 창고 쪽에 세탁기가 있었는데 나는 거기에 입은 옷을 모두 벗고 빨래를 했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정말로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어. 나의 냄새를 쫒아서 누군가가 나를 붙잡아 굉장한 고문이라도 할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어. 발가벗은 나는 마르지 않은 옷을 그대로 입었어. 그날은 한파주의보인 2월 초였어. 성당으로 도망갈 때 뛰어가다 아스팔트 바닥에 넘어져 다리에 심한 상처가 생겼어. 성당 신부님과 수녀님들은 왜 상처가 생겼느냐고 물었고 나는 왜인지 거짓말을 해버렸어. 아빠가 그랬다,라고.
나는 성당 앞에 걸터앉아 엉엉 울었어. 우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지만 말이야. 그러다 결국 나는 경찰에 붙잡히고 말았어. 붙잡힌 그 상황이 굉장히 기묘했다고 생각해. 나는 경찰 두 명과 경찰차 한 대가 뒤쫓아올 때 달리면서 모든 옷을 벗어던졌어. 기모맨투맨을 벗고 코듀로이 바지를 벗고 브래지어를 벗고 마지막으로 가엾은 팬티마저 벗어버렸어.
정신을 차렸을 때, 폐쇄병동 안에 링거를 꽂고 누워 있었어. 나는 일어나자마자 피를 튀기며 링거를 뽑아버리고 화장실로 달려가 샤워기로 천장 문을 부수고 올라갔어. 아마 영화를 많이 본 탓에 그렇게 하면 나갈 출구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나 봐. 간호사들이 뛰어와 나를 부순 천장에서 내리고 진정제를 맞추고 그날은 나와 같은 환자복을 입은 사람들이 내게 자꾸 무언가를 주었어. 감자칩, 쓰다만 샴푸, 캐릭터가 그려진 양말…
나는 밤에 화장실조차 가기가 두려워 페트병에 소변을 누고 바지에 묻으면 묻은 대로 말려서 잤어. 같은 방을 쓰는 할머니가 너무나 시끄러워 자주 깨곤 했어. 할머니는 새벽에 일어나 내게 돈을 빌려달라고 했어. 아주 조금이면 되니까, 집에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면서.
그렇게 병원에서 일주일이 지났을까? 나는 결국 진짜 세계로 돌아오게 되었어. 애초에 그런 가짜세계는 없었던 거지. 주치의는 내 뇌에 불이 나서 그것을 끄려고 주사를 맞고 약을 먹어야 한다고 말했어. 결국 나는 순순히 매일 제시간에 나오는 밥을 먹고, 약을 먹고, 매일 저녁 속옷을 손으로 세탁하며 지냈어. 아주 조용히.”
원숭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