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파스타를 만든다.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것 같을때, 파스타를 만들어보세요.

by 미지

여느날과 같이 출근할 필요도 없고, 해야 할 일도 없는 행복해야만 하는 날이었다.

산을 향해 큼지막하게 난 창으로 끝내주는 날씨와 반짝이는 햇빛까지 투과되어 들어오고 있는데,


그래서 기분이 좋아야만 하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그 햇빛마저 내게 행복해야한다고 강요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천진하게 떠다니는 하얗고 뭉실한 구름을 보며 문득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리고 나는 습관처럼 그 생각을 붙잡았다.


이내 그 상념은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아’라는 확신으로 바뀌었다. 갑자기 흰 뭉게구름이 소름끼치게 하얗고 창백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오슬오슬 몸이 떨려왔다.

내가 그렇게도 좋아하던 바스락한 질감과 파이란 색감의, 가을의 절정임에도 불구하고.


그러다 곧 내가 거의 유령과도 같은 망상에 빠져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잠시 그 망상을 한 시간에 대해 *묵도하고 있던 찰나, 노오란 파스타가 떠올랐다.

보기만 해도 몽글해지는 버터와 그에 잔뜩 파묻힌 노란 면발 위로 파릇한 레몬딜 허브가 올라간 꾸덕한 파스타.


이 용기가 사라지기전, 열걸음을 걸어내어 주방에 들어가는데 성공했다.

일단 컬리에서 큰맘 먹고 산 비싼 무염버터를 후라이팬에 올렸다.

노란 버터기름이 지글지글 팬에서 끓으면 반은 시작이다.


잘 익힌 면위에 향긋한 레몬딜을 올리고 생레몬을 짜서 상큼한 즙을 몇방울 더해주면,

버터로 겹겹이 발라진 거친 듀럼밀 파스타면처럼 어느새 사랑이 내 벌거벗은 몸을 감싸주는 기분이다.


사실 후라이팬을 잡는 순간부터 요리하는 과정에 몰두한 나머지,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더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맛있는 파스타를 만들고 싶다는 집념만이 내내 머물러있었던것 같다.

요리라는 것은 사실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기에, 서있자니 땀이났다.


더운 조리대 앞에서 땀을 식히고 있는데 갑자기 창밖의 시원한 바람이 느껴졌다.

방금까지만 해도 창백하고 서늘했던 하늘에서 부는 바람이었다.


나는 이내 뜨거운 냄비에서 나는 김과 함께 서늘한 잡념들을 창문밖으로 내보냈다.

씨익 웃음이 났다.


세상에는 따뜻하고 노오란 레몬버터파스타의 온기만이 남아 주린 나를 덥혀줬다.


마침.



*묵도: 소리없는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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