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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영 Oct 30. 2022

다르니까 괜찮아? 다르지만 괜찮아.

고유문화와 다양성

                

  우리는 지금 다문화 사회에서 살고 있다. 그렇기에 요즘 아이들은 다름을 인정하는 법을 자연스레 배운다. 우선 교과서에 나온다.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살기 위해서는 문화 상대성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 민주사회로 가는 첫 걸음이기도 하다. 독재 사회는 획일적 생각을 하도록 강요한다. 그래서 대부분 언론을 통제한다. 다양한 생각들이 움틀 수 있는 싹을 자르기 위해서다. 우리에게도 각종 창작물에 대한 엄격한 심의가 있던 때가 있었다. 따라서 다양성에 대한 인식이 성숙한 시민의식에 대한 척도로 여겨지기도 한다. 여러모로 볼 때 다양성을 인정하는 문제는 중요하다.      


  하지만 다름을 인정하는 것과 올바른 가치를 지향하는 것은 다르다. 어린이 책을 읽는 모임에서 있었던 일이다. 함께 읽던 동화책에서 주인공인 아기 너구리의 손가락이 네 개였다. 다섯 손가락을 가진 동물 친구들 틈에 네 손가락으로 밥을 먹는 장면이었다. 그 때 한 선생님이 우리나라 젓가락 문화를 언급했다.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어렵게 쥘 필요가 있겠냐?”고 했다. 그냥 아이가 쥐기 편한 대로 쥐다보면 알아서 밥을 먹을 수 있게 될 거라고 했다. 내 생각은 달랐다. 젓가락질은 우리 고유의 문화다. 다음 세대로 제대로 전수할 필요가 있다. 우선 넷째 손가락에 젓가락 한 짝을 받친다. 그리고 첫째와 둘째, 셋째 손가락으로 나머지 젓가락 하나를 감싼다. 그런 다음 둘째, 셋째 손가락을 사용하면 자유자재로 젓가락질을 할 수 있다. 이것은 우리 선조들이 오랜 동안 젓가락질을 해오면서 반찬을 가장 잘 집을 수 있는 방법으로 자연스레 터득한 결과다. 그리고 그것이 세대를 통해 전승되었다. 이처럼 하나의 문화 속에는 오랜 역사 속에서 축적된 가치가 내포되어 있다. 특정한 방식을 동일하게 강요하는 규정과 구분되어야 한다. 우리는 젓가락질을 책에서 배우지 않는다. 어릴 때 부모님으로부터 자연스레 식사법을 배운다. 


  비슷한 예로 요즘 학생들 중엔 연필을 이상하게 쥐는 아이들이 꽤 많다. 비단 초등학생들 뿐 만이 아니다. 일부 중학생들 중에서도 그 모습은 여전히 나타난다. 왜 그럴까? 그 중 몇몇은 어릴 때 연필 잡는 법을 교정 받지 못했을 수 있다. 반대로 배운 걸 무시하고 자기 편한 대로 계속 쥐다가 나쁜 습관으로 굳어진 아이들도 있을 것이다. 바로 가치와 규정을 혼돈한 결과이다. 연필 쥐는 습관이 잘못된 학생들이 맞닥뜨리는 문제는 비뚤비뚤한 글씨만이 아니다. 수학 문제 풀 때도 속도에 있어 현저한 차이가 난다. 쓰는 속도가 느리다. 계산속도도 느리고 적는 속도도 느리니 당연히 전반적으로 쳐진다. 주어진 시간에 문제를 다 풀어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글씨를 단정하게 쓰는 것은 집중력에도 영향을 준다.      


  '국뽕'이란 신조어가 있다. 국수주의를 비꼬는 말이다. 요즘 세상에 고유문화 어쩌고 하면 이 ‘국뽕’이란 말로 비난 받기 십상이다. 하지만 자기 것만 소중히 여기는 국수주의와 고유문화를 존중하는 것은 구분되어야 한다. 어쩌면 다양성이 강조되는 사회에서 이것이 더 중요해 질 수 있다. 다양성을 강조하는 인식 속에는 고유문화를 대하는 관점까지 포함되기 때문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남과 세상을 사랑할 수 있듯이, 고유문화를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이 다양성에 대한 인식도 더 포괄적일 수 있다.     

 

"인간이나 민족이 나름대로 살아온 진실의 표현이 문화라면, 진실의 껍질을 거머잡고 버둥거리는 전통주의자나 아예 그걸 버리고 쓰레기통에 남이 쓰다 버린 것을 뒤지고 다니는 반전통주의자, 모두가 싫습니다. "(토지, 제2편, 귀거래 편)      


  소설 토지에서 오가다 지로의 대사를 통해 박경리 선생이 문화에 대해 이야기한 부분이다. ‘우리가 살아온 삶의 진실한 표현이 문화’라는 관점에서 볼 때 바른 젓가락질은 고유한 우리 문화다. 나는 고리타분한 형식만을 강조하자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젓가락을 팽개치고 죄다 쥐기 편한 포크만 쓰자는 것은 더욱 아니다. 다르다는 말이 자기가 편한 대로만 하려는 단순한 의도들을 포장하는 장치로 사용되어서는 안 될 거라는 점을 강조할 뿐이다.             

   

2022.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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