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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영 Sep 12. 2022

선택

결혼을 통해 들여다 본 자아와 자의식

             

자아와 자의식이 같은 말일까. 비슷한 말이지만 굳이 구분하자면 자아란 내가 느끼는 내 모습이다. 자의식이란 자아가 느끼고 생각하는 방식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말 그대로 자아가 작동하는 의식이다. 주체와 인식행위 중 어디에 초점을 맞추었느냐에 대한 차이가 있다. 


결혼을 선택하는 과정에 자의식이 미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해보자. 얼마 전에 있었던 여성문제에 관한 토론에서 있었던 일이다. 세 자녀를 둔 선생님이 현재 겪고 있는 자의식의 진통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결혼하고 직장생활을 병행하며 분주했던 시간 속에 나를 잃어버린 것 같다, 이제는 나를 찾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40대를 통과하는 주부들이 비슷하게 쏟아내는 레퍼토리다. 다만 전업주부이냐 직장여성이냐에 따라 조금은 다른 이야기를 한다. 전자가 주로 공허함을 토로한다면 후자는 지쳐있는 자신에 대한 연민을 쏟아낸다. 머리로는 이해되지만 마음으로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다.


선생님은 자기 선택, 자기 결정권이 과연 내 것이었을까를 고민하고 있었다. 때가 되면 결혼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 학습의 결과는 아니었던가, 관습대로 살다보니 어느덧 중년의 나이가 되면서 길을 잃은 느낌이 든다고 했다. 


나에게 있어 결혼이란 내면에서부터 강력한 결단을 필요로 하는 최고의 선택지였다. 지금까지 결혼하지 않은 이유를 찾는다면 그만큼의 중량감을 덜어낼 만큼 애정하는 대상을 만나지 못한 이유가 크다. 더불어 생애주기에 나를 맞추어 사는 방식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이처럼 결혼에 대한 관점의 차이는 곧 자의식의 차이다. 나의 경우 그만큼 자의식이 강했다는 이야기다. 


결혼을 선택한 이들의 경우에도 그 당시에는 자의식이 작동했을 것이다. 본인의 욕구이고 본인이 행복할 수 있다고 느꼈을 선택지였을 확률이 높다. 선택 행위 자체를 자기의지가 아니라 학습된 동기 탓으로 돌리는 것은 자기 내면의 역동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곧 자아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아 스스로 선택한 결혼 이후의 환경 속에서 중년 여성들이 허탈감에 빠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결혼한 이후에 여성에게 요구되는 현실적 상황들이 예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무거웠기 때문이다. 그것은 제도와 관습의 문제이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결혼생활에서 엄마라는 이름으로 여성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분위기는 아직까지 유효하다. 아내와 엄마, 딸과 며느리, 직장여성, 그 밖의 무수한 관계 속에 지워지는 역할들의 균형이 깨지면 여자는 자아로 시선을 돌린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위해 지금껏 달려왔는가. 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어긋난 균형을 맞추기 위해 자아를 회복하는 작업은 필요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이 수행해 온 역할들이 지니는 가치마저 부정하는 것은 위험하다. 자기 존재를 부정하는 심각성을 지닌다. 희생과 헌신은 나의 일부분 또는 전체를 송두리째 던질 수 있는 가능성을 포함한 단어들이다. 강요받는 측면에서만 한정해서 생각하면 곤란하다. 대상에 대해 생각해 보면 좀 더 명확해진다. 과연 우리는 아무에게나 희생하고 헌신할 수 있을까. 흔치 않은 행위이기에 소중하고, 소중하기에 아름답다. 결혼생활에서 강요당했을 수 있는 희생과 헌신에 대한 시간을 보상받고 싶은 마음과 그 시간들이 지니는 가치를 부정하는 것을 구분해야 한다. 


여기에서 다시 자의식이 중요하다. 잃어버린 자아에 대한 보상을 바깥에서 바라면 한없이 초라하고, 쓸쓸하며, 우울해질 수 있다. 타인은 내가 아니다. 남편과 자식도 타인이다. 내가 선택한 결혼이지만 주어진 역할들의 무게에 짓눌려 나를 돌아볼 여유조차 없이 흘러간 시간들이 있을 것이다. 지금에 와서 혼자 감내해야 하는 당혹스러움을 느끼는 것도 나의 자의식이다. 그 모든 것을 받아들여 내 삶의 과정의 일부로 재편성하고자 하는 것 역시 현재 나의 자의식이다. 그런 나를 보듬어 안고 사랑하고 응원하며 나아가면 된다. 


미혼여성의 경우는 어떠할까. 미혼과 비혼 으로 구분하는 것도 적절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미혼여성의 삶도 결혼생활 못지않게 만만치 않다. 1인가구로 혼자 사는 여성은 기혼의 중년여성들이 겪는 자의식에 관한 고민들을 쉼 없이 하면서 일상을 만들어 간다. 그것도 철저히 소외된 속에서다. 기혼의 중년여성들의 고민은 사회전체가 공감해 준다. 하지만 싱글여성의 삶은? 공감은 커녕 핀잔이나 야유, 우월감 어린 미소가 부메랑으로 돌아오기 일쑤다. 그러기에 진즉 결혼하지 그랬어, 누가 혼자 살래 등 너무나 짐작되는 리액션들이 표정에서 드러난다. 극소수 개방적인 의식을 가진 사람들에게서만 나오지 않는 표정이기에 일상을 드러내는 대상 자체를 스스로 축소해 버린다. 그 과정에서 자의식은 점점 강해진다. 강해지는 자의식은 외골수로 흐를 수 있기에 그것마저 조심한다. 혼자만의 생각에 빠지지 않기, 스스로의 울타리를 만들어 나를 가두지 않기, 경계를 두지 않기 등등 일상을 공유하는 타인이 없는 상황에서는 보이지 않는 짐들은 참 많다. 운동성속에 나를 유지시키면서 나와 상황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야 한다. 수적으로 훨씬 낮은 비율이기에 공감의 영역 또한 적을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자의식을 버리는 작업 또한 필요하다. 나에게로만 집중될 수 있는 의식을 계속해서 떨쳐내는 작업이다.


요즘 세상은 가르고 또 가르는 세상이다. 나이로, 세대로, 성별로, 인종으로, 국경으로, 학별로, 계급으로 등 등 끊임없이 가르고 대립한다. 갈라진 사회에서 수적으로 열세이면 약자가 된다. 강자들의 목소리는 해결 여부와 관계없이 시시때때로 울려 퍼진다. 하지만 약자들은 목소리조차 내기 어렵다. 결혼에 있어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여성이 약자다. 그리고 미혼여성은 그 속에서 또 다른 범주의 약자다. 하지만 이렇게 가르기만 한다면 갈등만 심화된다. 눈을 들어 타인을 들여다 볼 마음의 공간을 갖는것이 필요하다. 나의 자아와 먼저 화해할 때 비로소 그것이 가능해진다. 


요즘 공부하고 있는 영성과 평화에 관한 핵심이 바로 이런 구분을 넘어서는 거다. 나를 버리기 연습, 욕망을 버리기다. 나에게서 벗어날 때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에. 하지만 일상을 살아내는 우리들에게 자아, 자의식은 언제든 불쑥 불쑥 고개를 들이미면서 내 앞을 가로막는다. 그럴 때마다 그것이 다름 아닌 욕망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나는 자아라는 것을 알아채면 된다. 그 과정들을 반복하다 보면 마침내 나로부터 자유로워질 때가 오지 않을까. 이생에서든 다음 생에서든, 혹은 지금 당장일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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