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가는 공부
선영은 여름을 좋아했다. 뜨겁고 후텁지근한 여름날 지내기를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 했다. 그렇지만 그녀는 그 계절에 초록색이 내뿜는 생명력이 좋았다. 2012년 이었다. 그 해 여름은 예년에 비해 유난히 무덥지도 선선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혼자 뜨거운 폭염 속에 내던져진 것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인연의 끈을 놓지도 못하고 이어갈 수도 없었다. 게다가 그녀는 사십대를 맞이하고 있었다. 중년에 들어선다는 당혹감까지 보태어져 혼란스러웠다. 정신을 차리기는커녕 몸을 가누기조차 힘들었다. 바깥세상은 평온하기만 했다. 홀로 세상에서 떨어져 나온 듯 그녀는 캄캄한 시간을 통과하고 있었다.
선영을 다시 일으킨 것은 공부였다. 조각조각 해체되어 버린 자아를 회복하려 몸부림 쳤다. 그녀는 자기 내면을 깊이깊이 들여다보았다. 먼저 살아왔던 환경들을 되짚어 보았다. 그 속에서 어떻게 타인들과 상호작용을 해 왔던가를 면밀히 살폈다. 깊게 탐색해 들어가는 과정을 통해 비로소 그녀는 자기 자신을 이해하게 되었다. 자신을 보듬을 수 있었다. 스스로를 온전히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어렴풋하게나마 그녀는 자유를 느꼈다.
다시 여름이다. 십년 전과 별반 다르지 않은 날씨다. 선영은 가뿐한 마음으로 2022년 여름을 보내고 있다. 자기를 찾기 위해 애써왔던 시간의 층들은 그녀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었다. 그녀는 이제 인연을 이해하면 삶이 편안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사람으로 인해 깊게 상처받지 않게 되었다. 그녀는 상황을 볼 수 있는 지혜로움도 지니게 되었다. 삶에서 마주하게 되는 모든 것들은 조건의 성숙일 뿐이라는 것도 이해하게 되었다. 그녀 속에 잠재해 있던 괴로움들이 사라져 갔다. 오십대를 맞이하는 지금, 그녀는 자기를 벗어나 더 넓게 시선을 돌릴 여유도 생겼다. 우리들 각자는 세상과 연결되어 있고 그 연결들이 바로 우주다. 선영은 그걸 알고 있다.
그녀를 계속 변화시키는 것도 공부다. 그녀는 지금 또 다른 자아를 찾아가고 있다. 이제는 올곧게 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버리기 위해 자아를 다시 들여다본다. 우리는 모두 따로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다. 욕망하는 개별 자아들이 끊임없이 자신과 세계를 분리시킬 뿐이다. 이러한 자아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온전한 자유를 느낄 수 있다. 자아가 추구하는 대로 욕망에 끌려가는 삶을 살지 않는 방법은 공부밖에 없다.
여름은 또 올 것이다. 다시 십년이 지나면 아마 지금보다 훨씬 무더워진 날씨가 우리를 맞이할지도 모른다. 십년 후에 선영은 또 어떤 모습으로 미소 짓고 있을까. 그녀는 그 때 자신의 모습을 예상해 보지도 애써 상상하지도 않는다. 지금의 그녀에게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궁금하지도 않다. 왜냐하면 주어진 순간순간에 오롯이 집중하며 정성스레 살다보면 어느덧 자연스런 그림이 그려져 있을 거란 걸 그녀는 이제 알고 있기 때문이다.
2022.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