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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영 Aug 27. 2022

참 공부에 대해

나로부터 시작하기

                                     

지성을 통한 영성회복 방법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종교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지만 일상의 분주함으로 계속 미루기만 했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나의 관심사와 일치하는 수업을 만나 반가웠다. 신앙이 아닌 철학으로 접근하는 종교의 발달과정, 그 속에서 생과 사의 근원적 문제를 탐구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으로 설레었지만 수업이 진행될수록 날벼락을 만났다.


영성회복을 설하는 강사님의 태도가 영성과는 너무 거리가 멀었다. 부족한 지성으로 인해 자못 거드름을 피우거나 알은 채 하려는 태도에 대해서 가차 없는 비판이 날아왔다. 처음엔 비판으로 이해했다. 하지만 날이 지날수록 비난에 가까운 태도, 자기 안의 화를 어쩌지 못해 대상에게 몰아붙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비단 수강생에게만이 아니었다.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부정적이라는 점, 그러한 바탕에서 하나의 대상을 만나면 핀잔과 비난이 여지없이 쏟아낸다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지난한 시간 동안 지성을 쌓아 오신 분의 시각으로 보는 지금의 세상이 얼마나 한심했으면 저럴까라고 이해해보려 했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했다. 드디어 권위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본인의 까칠한 기질을 권위로 변형시켜 타인과 마주하는구나. 


평소에 존경하는 선생님에게 나의 괴로운 마음을 전달하며 배우는 자의 바른 입장을 갖추려고 애썼다. 하지만 더 좌절되었다. 선생님의 온화함과 인내심이 바탕이 된 그런 화법은 어떻게 가질 수 있냐는 나의 질문에 세상에 대한 긍정성과 타인의 변화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가지면 자연스레 배어 나온다고 대답하셨다. 순간 감정적 불편함이 강한 의문으로 전환되었다. 그렇다면, 영성회복을 강의하시는 분이 내용과 형식이 불일치하다면, 통일성이 결여된 사람에게서 배우는 공부가 의미가 있을까? 베다, 우파니샤드 등 인도철학의 핵심이 되는 경전들의 진도가 계속 나가는 와중에도 내부의 혼란함이 정리되지 않았기에 나는 수업을 기피하게 되었다. 결석하기 일쑤였고 대신 녹화본을 받아 혼자 들었다. 부정적 기운을 내뿜는 강사와 마주하는 거 자체가 싫었다. 그러면서 참 공부에 대해 생각했다. 삶과 공부의 일치성이 중요했기에 세상을 마주하는 나의 태도부터 엄밀히 살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사님이 반면교사로 작용되었다.


어지러운 마음을 더 이상 내버려 두면 안 되겠기에 학우님 중 한 분께 공부에 집중할 수 없는 나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평소에 신뢰가 가던 분이었고 나에 대한 호감도 함께 표현했었기에 이야기하기 편했다. 나의 고민을 잘 이해한다고 했다. 지금의 강사님과 처음 공부했을 때 본인도 비슷하게 느꼈다고 했다. 공감을 확인한 후 다시 질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계속 같이 공부할 마음이 생겼는지, 불편한 마음을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물어보았다. 가톨릭 신자인 학우님은 주변의 성직자 분들을 예로 들어주면서 인간이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자신도 애쓰지만 어쩔 수 없는 타고난 기질이 있음으로 이해한다고 했다. 그 점은 본인도 괴로울 것이다라고 했다. 너무 평범하고 당연한 말이어서 그렇구나 하고 통화를 마무리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분의 이야기가 계속 맴돌면서 나의 생각도 달라져 갔다. 


형식과 내용의 불일치로 생각했던 부분을 그분은 노력하는 모습으로 이해했다. 나는 자기 의지로 인한 행위이기에 앎과의 모순이라 생각했던 것을 그분은 의지로 어쩔 수 없는 타고난 기질이라고 했다. 바라보는 방식의 차이였다. 나는 대상에 대고 왜 그러냐고 항변하고 있었고, 불일치가 느껴지는 대상이 바뀌어야 한다라고 생각했다. 일상의 관계에서 마주하는 문제들과 하등 다를 게 없다. 영성을 주제로 하는 공부였기에 다르게 생각했던 나 또한 강사를 실체화시켜놓았다는 걸 깨달았다. 한줄기의 빛을 통과한 느낌이 들었다. 대상에게서 참 공부의 모순을 발견했던 내가 내 안에서 그것을 발견하였다. 우리는 모두 우주와 연결되었기에 내가 곧 우주이고 우주의 원리를 받아들이는 것은 나로부터 비롯된다. 대상에게서 출발할 때 괴로움은 시작된다. 붓다의 가르침, 데이비드 봄의 접힘과 펼쳐짐, 우파니샤드의 아트만 개념 모두 세상과의 단절에서부터 괴로움은 시작된다고 했다. 단절로부터 형성되는 강한 자아, 그것으로 인해 발생하는 까르마로 윤회를 거듭하는 우리네 삶의 원리를 이해하는 것이 멀리 있는 게 아니구나, 또 한 번 깨달음의 순간이었다.


다가오는 토요일은 인도의 대서사시 마하바라타를 함께 읽는다. 대상에 천착하지 않고 내용성에 더 깊이 들어갈 준비가 된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다시 수업 시간을 기다리게 되었다. 부딪힘에 깊이 들어가 회전할 수 있는 힘을 가진 나에게도 응원을 보내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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