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산모가 식품 항원을 모유로 전달할 수 있음을 언급하고 있지만 십여 년 전만 해도 다 먹어도 괜찮다는 의식이 전반적이었다. 이제는 식품 알레르기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고 정보도 많아져서 대화를 나누는 게 전보다는 수월해졌다고 느낀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아토피안이나 식품 알레르기 케어에 대한 일부 시선이 곱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저 엄마 정말 까다롭게 구네. 그러니 아이가 저렇게 예민하지..’하고 옆에서 거드는 말들도 많다.
'시집살이는 귀머거리 삼 년, 장님 삼 년, 벙어리 삼 년'이라는 옛 말이 있는데 아토피 케어가 딱 그런 것 같다.
알레르기 수치는 단계적으로 높아지는데 몸의 작은 변화들이 쌓이고 쌓여 어느 순간 한계에 다다르면 폭발적인 반응이 나타난다. 엄마들에게 언제부터 아이의 아토피가 시작되었나 물어보면 분명히 사건과 전조 증상이 있었다. 알레르기 수치가 매우 높아진 시점에서 강한 외부 반응을 유발하는 사건을 '트리거'라고 부른다.'트리거'는 총알의 방아쇠'란 뜻인데 '트리거'를 시작으로 알레르기 반응이 심화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트리거는 예방접종, 질병 감염, 독성 식품의 접촉, 스트레스 등으로 매우 다양하다.
내 딸의 경우, 황달 때문에 먹인 분유의 소화장애를 시작으로 심한 복부팽만과 시큼한 냄새의 점액변이 동반된 증상을 보였고 이런 증상이 반복되면서 점차 아토피 피부염으로 발전된 케이스다.
소화 장애의 경우 녹변, 다 소화되지 못한 모유나 분유 부산물(작은 쌀 알갱이 크기의 하얀 단백질 덩어리)이 섞여 나오기도 한다. 이런 증상들은 아이의 미숙한 소화 상태와 불안정한 장내 환경을 말해준다.
장은 우리 몸의 가장 큰 면역기관으로서 장내 환경이 불안정하게 되면 정상적인 면역인자가 성숙되지 못하고 불완전한 면역인자인 IGE 항체가 비정상적으로 많이 생성됨으로써 알레르기 수치가 올라가게 된다.
특히 신생아는 소화기관이 미성숙하기 때문에 컨디션에 따라 변 상태가 불규칙할 수 있는데 계속 변이 좋지 않거나 고약한 냄새가 난다면 정상적인 소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신생아의 경우 좋은 변은 황금빛의 액체 상태로 비피더스균이 많아 요거트 냄새가 난다) 매일 변을 보지 않는다고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다. 배변 횟수보다는 얼마나 좋은 변을 보는지가 중요하다. 아이마다 소화 흡수 능력이 다르기 때문이다.
계속 변이 좋지 않다면 엄마의 현재 식단이나 분유가 아이에게 잘 맞는지 의심해 볼 필요가 있으며 이런 경우 식단 조절과 장 마사지, 유산균 섭취 등을 통해 소화 촉진과 건강한 장내 환경 회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쉽게 변이 좋아지지 않는 경우에는 의사의 상담을 받아보는 것이 좋다.
아이가 특정 식품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것이 확실해지면 수유모는 해당 식품의 섭취를 즉시 중단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엄마는 아이가 어떤 식품에 반응을 보이는지 잘 파악하기가 어렵다. 다양한 식품을 함께 섭취하고 있는 데다가 극심한 반응이 아닌 경우 모르고 지나칠 때가 많기 때문이다.
항원성이 높은 고단백 식품들은 섭취 후 불완전 소화로 이어질 수 있으며 이중 일부가 큰 펩타이드 단계로 모유 속에 남아 항원으로 아이에게 전달된다.또한 히스타민이 다량 함유된 식품이나 향과 맛이 강한 자극성 식품, 독성 식품도 모유 수유 시 식품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수 있으며, 수유모가 해당 식품의 섭취를 일정 기간 중단하게 되면 반응은 진정된다.
수유모가 소화불량이나 변비가 심한 경우 모유의 질이 떨어지게 되는데, 평소 식품 알레르기나 아토피 피부염이 있는 아이는 이런 모유를 먹은 후 알레르기 증상이 더 심해지는 경우가 있다. 수유모의 장내 건강이 모유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유산균이나 효소가 풍부한 식품을 매끼 식단에 첨가하고 물 섭취를 충분히 해주는 것이 좋다.
* 모유 수유 중 아기의 우유 알레르기가 의심될 때
일주일 정도 엄마의 식단에서 일체의 유제품 혹은 우유 성분이 포함된 모든 가공식품을 차단한 후 체온, 피부, 배변, 수면, 가려움증 등의 알레르기 반응 여부를 매일 기록해두고 증상이 좋아지고 있는지 체크한다. (매일 사진을 찍어두면 상태를 체크할 때 큰 도움이 된다)
일주일이 지난 후에도 별다른 차도가 없다면 의사의 판단 아래 1주일 더 유제품 차단을 시도해 볼 수 있다. 차단한 날 이후로 조금씩 아이의 상태가 개선되고 있다면 유제품 제한을 3-6개월 정도 지속해 볼 것을 권유한다.
대체로 유제품 알레르기는 장관의 미성숙에 따른 소화장애로 비롯되기 때문에 크면서 좋아지는 경우가 많지만 만 3세 이후에도 극복이 안 되는 경우가 있다. 이는 문제가 되는 식품 항원을 조기에 차단하지 못해 알레르기 수치가 너무 높아졌거나 선천적인 요인에 의한 것이다.
신생아 때부터 우유 알레르기를 가지고 태어나는 경우는 극히 드물지만 가능하다. 상담을 하면서 이런 사례를 두 번 접해보았는데 모유는 물론 모든 특수분유에도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특수한 케이스였다.
모유 속 유청 단백질 혹은 유당에 반응하는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는데, 모유 단백질은 소화기관이 미숙한 아기들도 쉽게 소화할 수 있지만 소화 장애가 심한 아이들은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수유 시 분수토를 자주 하는 아이들이 있다면 우유 알레르기를 의심해 보아야 한다.
유당 불내증은 모유 속 탄수화물 성분인 유당(락토스)을 분해하는 효소(락타아제)가 선천적으로 부족한 경우 발생한다. 유전력이 있으므로 직계 가족 중 유당 불내증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자녀에게 유전될 가능성이 높다. 유당 불내증은 주로 심한 복통(배앓이)과 설사를 유발하는데 아기의 배변 횟수가 너무 많거나 점액변을 자주 본다면 의심해볼 만하다. 요즘은 유당을 제거한 락토-프리 유제품도 시중에 판매되고 있으니 자녀의 유당 불내증이 의심된다면 이런 제품으로 바꿔서 반응을 관찰해 볼 수도 있다.
아나필락시스 증상이 나타났다면 만 3세까지는 유제품의 완전 차단이 필요하며 의사의 판단 아래 만 5세 이후로 우유 성분이 함유된 빵, 쿠키 등의 베이킹 제품이나 요거트, 치즈 등의 발효식품을 소량 섭취해 볼 것을 권유한다. 치즈는 통과가 안되지만 요거트는 통과가 된다던가 우유가 함유된 빵은 괜찮은데 생우유는 반응이 있는 등 우유가 함유된 식품이라도 반응이 각기 다를 때가 있다. 이유는 각각의 식품 속 우유 단백질 함량과 결합 상태가 다르기 때문에 소화 흡수하는 과정에서 각기 다른 반응이 나타나는 것이다.
단백질을 가열 조리하는 경우 식품 속 단백질 결합이 끊어지면서 항원성이 낮아지고 발효과정에서는 단백질이 가수 분해(단백질을 더 작은 폴리펩타이드 또는 아미노산으로 분해하는 대사과정) 되기 때문에 소화 흡수가 편해진다. 일단 통과된 식품 형태로 먹이면서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면 1년 내에 모든 형태의 유제품을 섭취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알레르기가 걱정되는데 모유 대신 분유를 먹이는 게 나을까 고민하는 부모도 있을 것이다.
모유에는 아기의 면역체계를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특정 균들에 영양을 공급하는 모유 올리고당이 풍부하다. 특히 초유는 생애 최초의 면역계를 형성하는데 필요한 면역 물질을 다량 함유하고 있다.
따라서, 식품 알레르기를 발생시키는 특정 식품을 제외하고 영양의 균형을 맞춰 골고루 섭취하면서 모유 수유를 진행하는 것이 가장 좋다. 아토피 전문 병원에 가면 아기의 혈액검사를 토대로 식단에서 배제해야 할 식품과 대체식을 찾도록 도움을 준다.
아토피 커뮤니티에 가입해 정보를 얻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당신의 든든한 선배이자 때로는 험한 길을 함께 헤쳐나갈 동지로서 큰 힘이 되어 줄 것이다. 각 시도별로 무료 아토피 상담센터를 운영하기도 하니 도움이 필요하면 신청해보자. 당신은 결코 혼자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