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편린

여행은 마치 죽음과 같아서

다시 만난 스페인에서 찾는 여행의 낭만

by 이지구

"여행은 마치 죽음 같아." 엄마는 다시는 못 돌아올 곳을 눈에 담으려는 듯 눈동자에 풍경을 한가득 머금고 말했다. 8년 전에 함께 떠난 동유럽 말했으니, 오스트리아쯤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다시 이곳에 오지 못할 테니까.


하지만 그 말을 부정이라도 하듯 나는 친구와 함께 여행했던 스페인을 9년 만에 엄마와 함께 다시 방문했다. 나는 이내 여행은 죽음과도 같다는 말에 수긍했다. 같은 곳에 간 나 역시 이전의 내가 아니었기 때문이었음을 알게 된 것이다. 9년 전 치기 어렸던 때에 친구와 세비야 광장에서 레몬 맥주를 마시며 이런 깔깔거리며 밤을 새우던 나는 온데간데없었기 때문이다.


세파에 시달려 무표정한 나를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이 해의 기울기에 따라 시시각각 형형색색 변화하는 스테인드글라스의 색채로 위로해 주는 듯했다. 우리는 끊임없이 이전의 색채와 이별하고 새로운 색채와 만났다. 이렇게 낭만적인 이별이. 이렇게 낭만적인 죽음이 어디 있단 말인가.



바르셀로나의 근교인 몬세라트에 간 날, 안개가 너무 짙어서 몬세라트 대성당의 외관도 보이지 않아서 전망대도 가지 못하고 바르셀로나로 돌아와야 했다. 춥고 사기가 저하된 나와 엄마는 기차역에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나가던 미국인 아주머니께서 나에게 영어로 "이 기차 바르셀로나 가니?"라고 물었다. 나는 (정말로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아마도(maybe)"라고 대답했다. 그 아주머니와 친구분은 "이 아가씨가 '아마도'라고 하네 하하하"라며 유쾌하게 웃음을 터뜨리며 내 손을 잡았고 엄마와 나 역시 웃음을 터졌다. 결국 날씨 때문에 허탕을 쳤든 웃음 한 번에 무장해제가 되는 게 여행자의 기분이 아닌가 싶다.


여행은 일상보다 더 짧은 호흡의 생과 죽음이다. 길든 짧든 끝이 있고 변수가 많고 수많은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도 인생의 축소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행에서의 낭만은 그저 그런 낭만주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여행이라는 다른 생을 시작하고 끝을 맺으면서 일상을 살아 낼 수 있는 힘을 얻는다. 마치 우리가 몬세라트에서 갑자기 터뜨린 웃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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