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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윤상학 Aug 09. 2024

여름 바캉스 2

마지막 만남

 2년 전 일이다.

막 제주도 수국 꽃구경을 마치고 올라왔는데, 열심히 카톡이 울렸다. 더운 여름 어떻게 지내느냐며 서울서 호캉스 하고 싶다는 친구 A의 얘기가 올라왔다.  

  예전에 현빈, 하지원이 열연했던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촬영지였던 호텔에서 4박 5일간 호캉스 풀충전하고 왔던 터라 별로 마음 내키지 않았다.

  어제 제주에서 올라왔다며 안부 인사 전하는데, 또 다른 친구 B가 마침 서울에 애들한테 갈려고 는데, 애들도 보고 호캉스 한번 하자고 동감을 하였다. 제주 호캉스 여흥에 좀 더 빠져 있고 싶은데, 노(no)라고 하기엔 셋뿐인 모임이어서 딸애도 볼 겸 그럼 그러자고 하였다.


  A는 호캉스 하고 싶은 호텔을 지목하였고, 기왕 서울 올라가는 길에 강원도 곰배령 여행이 어떤지 제안하였더니 모두 좋아해서 그렇게 우리는 서울 호캉스 1박, 곰배령 투어 2박 포함하여, 3박 4일간의 여름 바캉스를 떠나게 되었다


  호텔은 석촌 호수 주변에 위치해 있어서, 근처 대형몰에서 식사도 하고 쇼핑도 하고 호수 주변을 산책도 할 수 있었고, 객실은 공간도 넓고 호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와 만족스러웠다.


  출발하기 전에 호텔 예약부터 곰배령 숙소, 식당 등 분주히 카톡을 주고받으면서, 여행 기분에 젖어들어 들뜬 기분에 친구 B가 호캉스답게 드레스 코드는 빨간색으로 하자며, 본인은 밤새도록 코 삐뚤어지게 술 마실 거라고 다짐하듯 말하였다.

  그러나 60대 초로에 접어든 셋은 각자 자기 입맛에 맞는 옷을 걸치고 나타났고, 알코올은 멕시코 음식 전문점서 주문한 맥주 한두 잔 마신 게 전부였으며, 석촌 호수 밤 산책 후 호텔로 돌아와서는 씻고 잠들기 바빴다.

  오래간만에 만났으니 수다 좀 떨 수도 있었을 텐데, 더운 날씨에 분주히 서둘러 대구서 올라왔으니 모두 지쳤던 거였다.

  그렇게 호기롭던 우리의 호캉스는  싱겁게 끝나버렸다. 다만 발아래 펼쳐지는 호수와 도시 전경을 내려다보며 즐겼던 한낮의 수영이 그나마 위안이었다.



호캉스 호텔 앞 석촌 호수


  다음 날 조식 후, 곧바로 강원도 곰배령으로 출발하였다. 원하게 쭉 뻗은 고속도로를 내달려 어느새 산자락 사이로 구불구불난 도로에 접어들며, 도로 양옆으로 펼쳐지는  자밭과  옥수수밭, 배추밭초록의 향연과 차창 가득히 밀려오는 청량한 공기에 연신 감탄하는 가운데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을 하였다.


  일찍 출발하여 아직 해가 중천에 있을 무렵에 도착한 우리는 숙소에 짐을 풀고, 곰배령 산행은 다음 날 하기로 하고 천천히 마실 구경에 나섰다.


  동네는 주로 숙박업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 주택들 대여섯 가옥이 있었고, 온통 푸르름 속에 에워싸인 공간은 사위가 너무 고요하여 별 세계인 듯하였다. 첫날은 그렇게 훠이훠이 동네 구경으로 보냈다.


  다음 날 산행 준비를 단단히 하고 곰배령으로 향하였다. 곰배령 오르는 길은  완만한 경사에 비교적 폭도 넓고, 바닥도 잘 정비가 되어 있어서 오르기 수월했고, 무엇보다 울창한 숲은 7월의 땡볕을 잘 가려주고 있어서 산행을 즐겁게 해 주었다.


  2시간 가량을 올랐을 때, 드디어 완만한 곰의 배 모양을 한 곰배령에 다다랐다. 그런데 우리가 기대했던 야생화 천지는 어디 가고 푸르른 초원만 있었다. 어쩌다가 일찍 고개 내민 듯 야생화 몇 송이들이 군데군데 있을 뿐 정말 푸른색 천지였다.

  실망 가득 안은채 내려왔는데, 주인장 말로는 야생화는 8월 초에 오면 제일 좋다고 하였다. 우리는 1달 가까이 일찍 갔으니 푸를 수밖에..





  래도 곰배령 청정한 공기도, 푸른 초원도 너무 좋다고 서로 위로하며 저녁을 먹으러 식당으로 갔다..

식당... 가지 말았어야 할 식당...

그 식당행이 우리 인연의 마지막이 될 줄은..


  숙소 옆의 식당은 산골 식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메뉴들 취급하고 있었고, 우리는 엊저녁 놓친 알코올이 아쉬웠던 터라, 동동주와 파전과 도토리묵 무침을 먼저 주문하였다. 산행 후의 힘겨움까지 더해 동동주는 꿀맛이었고 술술 잘 넘어갔다.

  그러면서 늘 그렇듯 온갖 소재로 얘기들이 이어졌다. 본격 아주머니 수다가 시작된 것이었다. 얼마 전에 막 끝난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구 씨 얘기부터 시작해 서울서 취업해 살고 있는 애들 이야기, 서울 집값이야기에 이어 정부 정책, 피부 미용, 부부이야기 등 참으로 소재도 풍부하지..


  그렇게 수다 삼매경으로 즐거운  중에  친구 B가 느닷없이 '네 남편은 사람 얼굴 보게 생겼던데,  뭘 보고 골랐다고 하더' 라며,  제 딴엔 남편이 나를 결혼 상대로 선택한 것이 몹시나 신기한 듯 물어왔다.

  순간 당황하였다. 사람 얼굴 안가리게 생긴 B가 그런 말을 하는 것에 놀랐고, 평소 외모 부심 있던 터라 놀랐다.

 일단 무엇보다 질문에서 비위가 상했다. 보통 연인이나 부부한테 그들의 만남에 대해 궁금할 때 '어떻게 만났느냐, 무엇에 서로 끌렸느냐' 이렇게 물어보지 않나. 그러면 이렇게 물으면 될 것을 왜 굳이 얼굴을 넣어 묻는 다 말인가.

  대놓고 너 못났다고 표현하는 것이 아닌가. 불쾌하기 짝이 없었을뿐더러, 어릴 때부터 평생을 예쁘다는 말을 들어왔던 터라, 친구의 물음에 적잖이 놀라기도 하였다.


   남편은 얼른 보면 이목 구비가 시원하여 그런대로 괜찮아 보이나, 아버님을 닮아 얼굴이 크고 키가 작은 편이다. 래서 결혼 당시 많이 망설였더랬는데, 그런 나를 두고 내가 편에 비해 기우는 인물로 여기고 물으니, 황할 수밖에 없었다.


 래서 남편이 키가 작고 얼굴이 커서 멀리서 걸어오는 거 보면 얼굴이 아장아장 걸어오는 것 같고, 키가 작아서 옷을 입어도 타일이 안 산다. 그래서 결혼할 때 많이 망설였다며, B의 생각이 잘못됐음을 지적하는 답변을 하였더니, B는 온몸 넘치는 살을 출렁이며 낄낄대면서, '그나마 키보고 골랐구나' 라고, 재밌다는 듯이 웃어대는 것이었다.    


  마이 갓!!! 도대체 얘 뭐야? 점입가경!

B의 눈엔 엄청나게도 내가 기울게 남편보다 못하게 보였나 보였다. 그래도 그렇지. 아무리 그렇게 느꼈어도 지켜야 할 선이란 게 있지 않은가. 그건 친한 사이어도 마찬가지  터. 그 선 지키지 못하는 무례함과 그것이 무례한 지 조차 인지 못하는 사람은 답이 없다.

 

 무례와 무지 풀장착한 지도 모르고 뱃살 출렁이며 웃어대는 B가 짠하고 안타깝고 뒤엉킨 마음으로 쳐다보니, 여전히 B빙글빙글 웃고 있고, 나는 여기는 어디 나는 누구 상황이 되어 가고, 어이없는 B의 언행에 A도 놀랐던큰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얼른 'oo이 예쁘잖아' 라며,  B를 제지하니, B는 순 어리둥절해하며, 본인 얘기에 무슨 잘못이 있었는지 점검하는 표정이었다.


 그냥 너는 미적 기준이나 취향이 나나 다른 사람들하고 많이 다르구나. 나 보고 예쁘다는 사람들이나 나를 따라 다녔던 머슴애, 남자들 육하원칙 따라 말하면 3박 4일도 모자랄 것 같은데, 너가 나를 그렇게 형편없이 볼 줄은 몰랐네. 그리고 우리 남편 같은 타입이 너 취향이었구나. 그냥 이목구비 시원하면 키작고 얼굴 큰 비율 같은 건 전혀 문제 안되는구나. 나는 아닌데..라고 말할 걸  그랬나.


 왜 몰랐어?보다시피 예쁘고 날씬하잖아. 게다가 학력이며 직업이며 내가 오히려 아깝다고 난 생각하고 있어. 남편은 선본지 2개월도 안되는 날짜를 결혼식 날짜로 먼저 잡아 온걸 내가 겨우 늦춰서 3개월 안되는 날짜에 식 올렸어. 지금도 남편은 내가 최고래라고, 잘난 척할 걸 그랬나..


 단점 투성이 성격 중에 가장 크게 치는 단점이 순발성이 떨어진다는 거와 쓸데없이 약한 마음 때문에 억울한 공격에 한 방 제대로 못 날리는 거다. 집에 와서 뒤늦게 이불킥하며 기똥차게 한 방 못 먹인 걸 두고두고 후회하는 타입이다.

 역시 이번에도 그 성격대로 지혜롭게 대처 못한 것을 자책하며 이 응답 저 응답, 쏟아 낼 응답들이 뒤늦게 마구 솟아났다.

 

 어쩌면 가뜩이나 약한 마음에다 60고개 넘으며 무너져 내리는 얼굴 라인에 자신감 떨어져 훅 들어온 공격에 전투력 더욱 상실했는지도 모른다.


 하여튼  자존심이 구겨질 대로 구겨졌지만 쩌겠나. 본인 기준에 내 외양이 그렇게 비친다면 하는 수 없는 거지.

  편은 전지현이 왜 예쁜지 모르겠다 하고, 언젠가  한 팝 아티스트 자기 앤젤리나 졸리가 무척 어글리 하다 하는 걸 본 적 있다. 그만큼 미적 기준이 다른 경우도 있으니까.

  다만 말할 때, 머리에서 한번 걸러야 하는  아닌가. 내뱉는 말이 상대한테 결례가 되는 건 아닌지, 상처를 줄 수 있는 건 아닌 지를 고려해서 말해야 되지 않나.

 B의 말하는 태도가 대체로 이러하다. 무례한 편이다. 아이들 앞에서 제 남편을 무시하여, 남편으로부터 타박받는 일들을 들려주는데, 그 내용이 아슬아슬다.

  비빌 언덕 없는 제 남편이 부부 교사로 맞벌이하고 있는 B를 어쩌지 못하고, 참고 사는 게 아닐까 할 정도의 수위도 서슴없이 해대는 B였다.  

  한 번은 길 가다 대로변에서 남편한테 따귀 맞았다며, 자기 남편의  불 같은 성질을 하소연하였더랬는데, 내용 듣고 보니 B는 혀로 제 남편을 죽였던 것이었다.

  

   아무튼 이러한 말투에 대해 우리가 지적하면, '내 말본새가 원래 그렇게 타고난 걸 어떡하냐' 며 무시해 버린다. 이러한 언행에  A와 나는 무던히 잘 견뎌내며 지내 것이었다.


  여행지인 데다 아무리 부글부글 끓어도 곧잘 잊어버리는 성격어서 이내 잊고서  다음 날엔 언제 그랬냐는 듯 하하 호호 웃으며 무사히 대구 집으로 내려왔다.


 그러나 으로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 보니, 더 이상 B와는 함께해서는 안 되는 거 아닌가,  B의 무례한 말투를 더 이상 받아서는 안 되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잊고 있었던 B로부터 받았던 모멸감들이 떠올랐다.


 여행 가기  달 전쯤, 셋이 만났을 때의 일이다.


 그때도 여러 얘기를 하다가, 늙어서 이젠 헤어 스타일도 마음에 들게 잘 안 나온다며, 예전에는 헤어숍 가면 김희애 머리 해주세요, 라며 연예인 따라 여러 스타일 많이 했는데라고  말하니, 말 떨어지기 바쁘게,  B 왈 '체~ 얼굴이 아인데~' , 그 특유의 자주 하는, 눈꼬리 찢고 입술 삐죽이며 오만상 얼굴 그러뜨린 채, 한껏 비아 거렸다.

  순간 나는 내 귀를 의심하였고, 거실 바닥에 앉아 손으로 머리카락 등을  있던 친구 A도  완전 얼음이 되어 동작 그만 자세를 취하였다.

  B 제 말하기 바빠 얼어붙기를 눈치 못 챘고, 몇 초간 영원 같은 느낌으로  A와 나는 어붙어 있었다. 잠시 후 거실 바닥에 눈 박고 동작 그만이던 A가 슬그머니 고갤 들어 날 슬쩍 훔쳐본다고 본 것이 마침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내 눈치를 살피는 것이었다. 민망함이라니... 친구 앞에 당한 그 모멸감이라니..

 

  하기사 B의 틀린 건 아니다. 맞긴 맞는 말이다. 내 얼굴 김희애 얼굴아니 않은가. 일란성 쌍둥이가 아닌 다음에야 어떻게 내 얼굴이 김희애 일 수 있나.

 그런데 온몸으로 '너 따위가 어떻게 감히 김희애를 들먹일 수 있나'며, 가슴 찌르는 표현까지 할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내 남자의 여자'에서 뽀글뽀글했던 김희애 머리는 내게도 썩 잘 어울려 많은 이들로부터 칭찬을 받았고, 연예인들 머리 따라 할 때마다  대체로  잘 어울렸었다. 그리고  난 김희애를 한 번도 예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내가 더 낫다고 생각하고 있. B가 들으면 기함을 하겠지만 어쩌겠는가, 내 눈에 그렇게 보이는데.


 그러고 보면 나를 어글리 하게 보는 B도, 김희애가 예쁘지 않게 보이는 나도 다 각자 미적 기준이 다르고, 취향이 다르다. 그러니 B의 언행에 크게 기분 나쁠 일은 아니다. 그냥 각자 다르다. 다만 말하는 태도가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B는 남의 외모를 직격으로 비판할 외모가 결코  아니다. 물론 남의 외모 지적에 어떤 자격이 필요하다는 뜻이 아니다. 최소한 자기 점검이라도 하면 함부로 말하지 않을 것이란 말이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자기 점검을 제대로 하고, 인간에 대한 성찰을 제대로 하는 자는 함부로 남에게 말을 못 한다는 뜻이다.


 아무튼 B를 소개받은 날 남편이 빙긋이 웃으며 '아따, 기 못생겼네...' 하였고, 친정 동생들은 B를 옥떨메(옥상에서 떨어진 메주 의미로, 마침 B의 이름 끝자리랑 딱 맞아떨어졌음)로 별칭 한 바 있는데, 외모 열등감에다 여러모로 떨어지니 심술만 잔뜩 남아 막말한다고 평가 절하하였다.


 모 방송 프로그램에서 같이 출연하는 인물들이 탁재훈 놀릴 때 자주 그의  어릴 적 사진을 들이미는데, 그때마다 탁재훈이 질색팔색하는 '탁삼이' 얼굴. B는 바로 딱 그 탁삼이 얼굴에다 박정현과 김을동이 어른거리는 얼굴을 하고 있다.


남편은 시누들이 성룡 닮았다고 하고, 나는 화양연화에 나왔던 장만옥 닮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사실 웃는 얼굴은 내가 훨씬 낫다. 장만옥은 웃는 것이 어색하고 별로다. 남편은 내 웃는 얼굴은 백만 불 짜리라고 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아득히 지난 시절 있었던 일도 기억이 났다.


  신혼 초 편은 한마디 상의도 없이 직장을 나와서는 사업에 손을 댔다.

  이 사업 저 사업 손을 댔는데, 손대는 것마다 잘 안되었고, 은행 보증 일등인 공무원 신분던 내 앞으로 최대한 은행 대출 끌어다 쓰다가, 나중에는 시댁이며 친정까지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다 쓰는 바람에 집안이 엉망이 된 상태였었다.

  그것도 부족해 남편은 고금리 사채까지 끌어다 쓰면서, 직장으로는 월급 차압 문턱까지 갔었고, 집으로는 빚쟁이들이 사흘토록 전화해 대서 전화기도 끊었고, 집달리들이 우르르 몰려와 세간살이에 빨간딱지를 붙이고 가 상황 속의 살림살이었다. 돌이켜보면 지옥이 시절이었다.


 그래서 그 시절 친구들 만나면, 늘 힘들다고 한탄을 했었다.

  어느 날 셋 모임에서도 힘들다고 했더니, 예의 그 B'그래도 시어른이 며느리 잘못 들어와서 사업 망했다고는 안 하네' 라며, 입 실룩이며 이죽였다.

  나를 위로는 커녕 남의 집 시집와서 집안 망하게 한 재수 없는 여자로 규정하는 것이었다. 몹시 불쾌하고 기분 나빴지만  대꾸를 못하였다. 너무 어이없는 상황엔 도무지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남편이 총각 시절부터 사업하며 저지른 여러 사건들과 청소년기 질풍노도를 유감없이 발휘했던 일들을 시댁 식구나 본인으로부터 들어 이미 알고 있었기, 친구의 그러한 말에도 무시하고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중매로 만난 남편은 한마디로 시댁에서 골칫덩어리 같은 존재였 것이었다. 없던 남편은 무슨 자랑처럼, 고교 시절 경찰서를 집 드나들듯 들었고, 매번 아버님께서 학교로 경찰서로 불려 왔었다고, 신의 일들을 들려주었다.

  그리고 시어머니로부터도 남편의 범상치 않은 행위를 엿볼 수 있는 일화들을 전해 듣기도 하였다.

  경제적 곤란 속에서도 어머니와 나는 나란히 거실 소파에 앉아 이런저런 얘기들을 많이 나누었었다. 주로 어머니께서 지난 일들을 들려주셨고, 나는 듣는 편이었는데, 말씀 중에 남편 이야기도 하면서,  중 2 때는 남편이 하도 이상해서 조상묘에 가서 굿까지 했다는 말씀도 해주셨다.

  

  어릴 때부터 매를 고 혼을 냈어야 하는데, 아버님 깨서 어린것이 무엇을 안다고, 커서 말하면 된다고 하셨단다. 하기사 자상하장남이셨던 아버님으로선, 내리 딸 네 명 후 얻은 아들이니 남편이 오죽 예뻤을까. 어머님께서 어쩌다 매라도 들라치면, 남편은 얼른 아버님 등 뒤로 가서 숨었다고 했다.

  아버님은 4년 전 99세로 돌아가실 때까지, 남편한테 작은 소리로라도 싫은 소리 한번 내신 적이 없으셨다. 자 여섯 중에 아마 싫은 소리 안 들은 자식은 남편뿐일 게다. 다른 자녀들한테는 큰 소리로 호통까지 치시던 아버님이셨는데, 한 번도 남편에게는 싫은 소리도, 내색도 하시는 걸 본 적이 없다. 항상 오케이고 예쓰였다.

  기울어진 경제로 힘들게 지내고 있는 나에게, 남편 날개 안 꺾기도록 많이 도와주자고 오히려 설득하셨던 버님이셨다. 만큼 지극한 아버님의 짝사랑 속에서 자란 남편은 세상 무서울 게 없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셋째 시누에게서도 남편의 일을 들을 수 있었다. 한 번은 셋째 시누 차를 타고 가는데, 시누가 동생인 남편 얘기를 꺼내면서, '총각 때도 아버지 돈 지가 다 까먹더니' 라며, 온 가족이 경제적 곤궁으로 힘들게 지내고 상황 속상해하며, 일 벌이기만 하고 야무지게 처리하지 못하는 남편을 원망하 기를 는 것이었다.


  이렇게 남편은 학창 시절부터 결혼할 때까지, 엔간히도 부모 속 썩이고, 아버님 돈 깨나 털어먹은 사고뭉치였던 것이었다.

  중매로 만났으니 남편의 그런 점을 어떻게 알 수 있으랴. 이미 결혼은 하였고, 나의 결혼이 굉장한 모험이었음을 알게 됐을 때는 이미 때는 늦은 것이었다.


  이와 같은 남편의 이력을 알고 있고, 사고뭉치 인물을 떠맡겼다는 미안함 때문인지, 남편의 수준에서는 분한 존재 대한  차원인지는 몰라도, 시댁 식구들은 나를 예뻐해 주셨고, 그만큼  뢰를 듬뿍 받고 있는 터여서, B죽이는 말투도 무시하고, 그냥 보수적이구나 하고 넘어갔던 것 같다.


   그 이후로도 모임 때마다 B의 비난과 힐난비아 거리는 말투는 거침이 없고,  A와 나는 계속 B로부터 불편과 불쾌를 감내해야만 했다.

  간혹 둘이서 왜 그럴까, 왜 안 고쳐질까 하며 B의 이해할 수 없는 언행에 대해 불편 심기를 서로 토로하곤 했다. 

  물론 그런 말투만 빼면, 비록 씁쓸한 순간이 있었더라도, 풍성하고 다양한 소재의 얘기로, 10대 때부터 함께 한 세월이 있었기에, 우리의 만남은 대체로 즐거웠.

  그래서 여고 3 때 같은 반으로 만난 이후 40여 년 간을 만나 수 있었던 것 아닌가 한다. 


  그러나 이제는 도저히 함께 하고 싶지 않아 졌다.

가뜩이나 늙어가는 서러움에 외롭고, 우울한데 기왕이면 위로받고 격려받고 박수받고 싶다.

  잘못하는 언행에 대해선 꺼이 비판 감내하겠지만, 아무런 도움 안 되는 자존감 훼손하는 언행은 더 이상 주하고 싶지 않아 졌다. 


 래서 B의 전화번호를 차단, 삭제하고,  sns도 차단하여 내 주변에 얼씬 거라지 못하게 하였다.


그렇게 여름 캉스를 마지막으로 우리의 인연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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