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스
드디어 니스 코트다쥐르 공항에 도착했다. 입국 심사는 없었고, 여러 통로들은 차단된 채 Baggage Claim 쪽만 오픈되어 있었다. 비행기에서 내린 모든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심사 없이 바로 연결되어 있는 짐 찾는 곳으로 갔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코트다쥐르 해안)
암스테르담 공항에서 네덜란드 입국 심사 때 뭣하러 왔냐, 얼마간 머물 거냐, 너네 나라로 언제 돌아가느냐 등의 일반적인 입국 심사를 하면서 심사에 통과하였는데, 아마도 거기서 받은 심사로 니스 입국 심사까지 완료된 모양이었다. 블로그 등을 보니 솅겐 조약이라고, 유럽 연합(EU) 국가 간에 맺은 조약으로, 조약에 가입한 국가에 입국 시엔 첫 입국하는 국가에서의 심사로 그다음에 입국하게 되는 국가의 입국 심사까지 패스가 된다고 하더니 그런 경우인 것 같다. 출국 전 알아본 바로는 니스에서도 형식적이나마 입국 심사를 한다고 하더니, 이젠 아예 없앤 것 같다.
남의 나라 입국 시에는 늘 마음이 긴장된다. 그래서 나름 긴장했던 것이 풀리면서 가벼워진 마음으로 짐을 찾고 택시 승차장으로 나왔다. 공항은 익숙한 지역 공항만큼이나 규모가 작아서 이동하기가 용이했다
택시 승강장으로 나오니 하늘도 나무들도 tv에서 자주 보았던, 그래서 갈망했던 여지없는 남프랑스 풍경이다. 드디어 니스에 왔다는 느낌이 확 와닿았다.
정차해 있는 택시들 옆에서 40~50대로 보이는 훤칠한 백인 미남 셋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가 다가오는 승객들을 향해 환한 미소를 띠며 다가와 승차 안내를 한다. '저렇게 맑고 환한 미소를 띠는 40~50대의 남성을 한국에서 본 적이 있나' 잠시 한국의 남성 얼굴들을 떠올리며 마법에 걸린 듯 싱그럽고 아름다운 미소에 빠져 승차 순서를 기다렸다.
그중 가장 손위로 보이는 남성이 아마도 승차 차량 조정 역할을 담당하는지 열심히 기사들과 의견을 교환하며 손님들에게 차량을 안배해 준 후 가까이 다가온다. 스크린 화면을 뚫고 나온 배우 같은 얼굴에다 맑고 환한 미소를 마치 천성적으로 그렇게 타고난 모양 얼굴 가득 띄우며 ' 봉주르 마담' 하고 말을 건네왔다, 니스에 대한 이미지는 무입국 심사에서 이미 한차례 환영받는 느낌으로 기분 업되어 있던 차에 호남형 아저씨의 환대 가득 담은 미소에서 니스에 대한 점수를 한번 더 따고 들어가게 되었다.
예약해 둔 호텔을 말하며 메모해 둔 주소지를 보여주고 있는데, 다음 차량 순서인 듯한 기사가 다가와 서로 대화를 나누더니, 기사가 자신의 검은색 SUV 차량으로 안내하며 거의 한 달가량의 생활을 위해 침대 방수 커버, 진드기 퇴치제, 샤워기 헤드 필터, 고무장갑, 주방 세제, 수세미, 차량용 핸드폰 거치대, 햇반, 통조림 등 바리바리 알뜰히 챙겨 온 짐들로 무겁디 무거운 캐리어와 보스턴백을 가볍게 들어 올려 뒷 트렁크에 싣는다.
기사는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다. 한국이라고 말했다가 재빨리 남한이라고 강조하며 혹시 아는지 물으니 안다고 하는데 나라 이름 정도만 아는 눈치였다. 그래서 나라 자랑 좀 하려고, 이름만 알고 노래도 전혀 모르는, 그러나 세계적으로 유명세 떨치고 있는 BTS와 삼성전자를 말하였으나 고개를 가로젓는다. 아차, 40대 프랑스 남성에게 잘못 예시를 들었다는 생각이 들며 얼른 축구 좋아하는 나라이니 당연히 알 것이라 여기고 자신만만하게 손흥민을 우리 발음으로 말했다가 모르는 듯하여 발음 문제인가 싶어 영국에서 불리어지는 '쏘니(Sonny)로 재차 말해 보았다. 그러나 역시 모른다고 한다. 아니 손흥민을 모르다니, 약간 혼란에 빠지다가 뒤늦게 깨달았다. 아뿔싸 여기가 어디인가. 영국에 대해 자존심 꼿꼿한 프랑스가 아닌가. 그 프랑스인이 영국 토트넘에서 뛰고 있는, 그것도 동양계 선수를 어떻게 알 것인가. 설사 안다고 하여도 안다고 할까... 그런데 정말 모르는 것 같았다. 자존심이 많이 구겨졌다. GNP 세계 10위 안에 드는 경제 강국에다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k 한류를 모른다고 하니 우리나라가 아직도 유럽에선 지구 어느 한 귀퉁이에 있는 쪼끄만 나라로 인식되고 있다는 뜻인가 반문하며 구겨진 자존심 회복할 우리 한국을 대표할 무엇에 대해 재바르게 머리 구르고 있는 중에 복잡한 내 심경 알 리 없는 기사가 아마도 승객에게 늘 그래왔을 상투적인 물음을 묻는다. 니스에는 며칠 정도 머물 것인지를 물으며 차량이 필요하면 불러 달라며 명함을 건네주었다. 자존심 회복할 신박한 그 무엇은 결국 떠오르지 않았다.
개운찮은 입맛 다시며 바깥을 바라보니 차창 너머로 보이는 하늘은 더없이 맑고 파랬으며, 하얀 솜사탕 마냥 달콤한 맛을 낼 것 같은 하얀 솜구름은 두둥실 유유자적하고, 햇빛은 명랑 쾌활하게 빛나고 있었다. 차는 점점 공항에서 멀어지며 시가지로 접어들고 있었고, 20여분의 시간이 지난 후 드디어 전형적인 프랑스 아파트형 주택가에 위치한 숙소에 도착했다.
이틀 묵을 호텔은 출입문도 로비도 일반 가정집으로 착각할 정도로 너무 작고 소박하다. 호텔이 맞는지 두리번거리며 직원을 찾고 있는데, 편의점 계산대 같은 곳에서 아담한 남자가 밝은 얼굴로 인사해 온다. 거기가 프런트였고, 호텔 직원이었다. 비즈니스호텔이지만 그래도 호텔인데, 호텔 분위기가 전혀 아니다. 좁은 로비에 엘리베이터 공간이 있는 것이 신기했다. 배정된 룸의 키를 받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층으로 올라가니 객실 사이 복도도 좁다. 그러나 룸은 넓고 깨끗하고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혼자 지내기에 충분히 넓고, 캐리어 두 개를 놓아도 될 정도의 공간이어서 둘이 지내도 될 정도이다. 같은 계열의 호텔을 이번에 인천 공항 근처에서도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 근처에서도 이용해 보았지만 룸 공간은 가장 넓다. 좁고 지저분한 침구류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실내 기물 들로 밤새 제대로 잠을 못 이루고 떠나온 간 밤의 스키폴 공항 인근 호텔을 떠올리자니 여긴 천국이다.
꿈에 그리던 로망을 실현할 곳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안도감에 의자에 몸을 싣는다. 잠시 숨을 돌리고 창문을 열어 보니 길 건너 맞은편엔 같은 높이의 아파트가 마주하고 있다. 고풍스러운 건물은 하얀 커튼들로 창문을 가리고 햇살 가득 받고 있는 테라스엔 차양들이 쳐져 있다. 일반적인 호텔의 입지가 빌딩으로 둘러싸인 업무지역에 위치해 있는데 비해 사뭇 다른 분위기어서 낯설지만 니스의 맛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어서 좋다.
침구류에 진드기 퇴치제를 뿌리고, 캐리어를 열고 바깥 외출 할 준비를 한다. 나가서 찾아가 보아야 할 관광지를 챙겨 온 지도와 구글 지도에서 확인한다. 마세나 광장, 영국인 산책로, 'I love Nice, 캐슬힐, 의자 모양 조형물 들을 둘러볼 생각이다. 샤갈, 마티스 미술관은 여행사와 합류해서 함께 갈 생각으로 제외를 한다. 도보로 가기엔 멀고, 렌터카로 다녀오기엔 주변 주차 상황이 여의치가 않고 , 심지어 어떤 블로거는 제대로 주차해 놓았는데도 차량 파손의 피해를 입어 성가신 일들을 처리해야 했다는 얘기도 있었기 때문이다.
호텔에서 바다로 나가면 마세나 광장을 시작으로 보고자 하는 곳이 순서대로 배치되어 있다. 구글맵을 켜고 니스 바다로 향한다. 국내에선 길 안내 작동이 안 되던 구글맵이 우리말까지 하며 친절하게 안내를 한다. 출국하기 전에 구글맵과 웨이즈(waze) 두 개의 앱을 다운로드하여 놓았다. 구글맵은 우리말 서비스가 안된다고 하여 우리말 서비스까지 된다는 웨이즈를 다운로드한 것인데, 구글맵은 '오른쪽으로 가라', ' 왼쪽으로 가라' 너무도 친절하게 우리말로 안내를 한다. 길 잘못 들어서면 카카오맵처럼 재빨리 새 경로를 안내해 준다. 홀로가 아니라는 자신감에 힘차게 걸어간다.
(상가지역과 마세나 광장)
한가한 주택 지역을 10여분을 걸어가니 어디서 들 나왔는지 많은 사람들이 보이며, 한 곳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바다 쪽으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따라가니 커다란 대로가 나오고, 대로변을 따라 상가들이 밀집한 지역이 나온다. 카페, 식당, 의류점들이 즐비하다. 나이키, H& M, 버거킹, 맥도널드, 스타벅스도 나온다. 트램이 저 멀리서 들어오고 있다. 조금 더 나아가니 커다란 광장이 나온다. 광장 한편으로 트램이 빙 둘러 나간다. 마세나 광장이다. 다비드상이 서 있는 분수대도 나온다. 조금 더 남쪽으로 나아가니 식당과 기념품을 판매하는 상가가 나오고, 남녘에서 자생하는 키 큰 식물의 정원을 지나니 차로와 보도 너머로 마침내 탁 트인 바다가 보인다. 차로와 보드는 동서로 길게 뻗어 있는데, 폭 10여 미터 내외의 널찍한 보도인 영국인 산책로는 해안을 따라 잘 단장되어 있고, 그 아래로 지중해 푸른 바다가 남실남실 폭 100m 정도 되는 해변 자갈밭을 쉴 새 없이 드나들며 가없이 펼쳐져 있다.
(니스 해변 이모저모)
그래, 이 바다 보려고 왔지. 너른 바다를 이쪽 해안선에서 저 멀리 수평선까지, 저 동쪽 언덕에서 저 서쪽 멀리 튀어나온 지역까지, 로망을 안고 달려와 드디어 도착한 바다에 무한한 애정을 담아 가로, 세로 눈길 분주하게 바다룰 가로지르며 보고 또 본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는 어느 영화 제목처럼 온몸 뻐근히 행복감이 밀려오면서 천천히 영국인 산책로를 걷는다. 삼삼오오 활달하게, 다정하게, 또는 홀로 저마다 여행의 여흥을 즐기는 관광객들 사이로 위, 아래 짧은 조깅복 입고 경쾌하게 뛰어가는 주민들도 있다.
서쪽으로 걸어가다 보니 니스 해변 상징 중 하나인 의자 모양 조형물이 산책로에 설치되어 있는 것이 보인다. 조금 더 걸아가다 돌아서 동쪽으로 향한다. 시야 동쪽 끝에 언덕이 보이고, 그 어디쯤 있을 니스 해변의 또 하나의 상징인 'I love Nice' 글자를 찾아볼까 한다. 언덕은 캐슬힐이었고, 조금 더 앞으로 걸어가니 반원구형의 조형물이 해변 쪽에 우뚝하다.
조금 더 나아가니 'I love Nice'가 나타났다. 이리저리서 사진을 찍고 있자니 익숙한 말소리와 패션스타일로 한국인들이 다가온다. 단체 관광 온 모양이다. 열심히 포즈를 잡고 사진을 찍고, 찍어준다. 실컷 사진을 찍고 바다로 향해 마련된 기다랗고 둥그런 계단형 의자에 앉아 바다를 바라본다. 여러 상념들이 떠오른다.
그렇게 한참을 보낸 후 옆에 있는 캐슬힐 언덕을 올라간다. 약간 가파른 언덕을 바다 쪽으로 난 길을 따라 10분 정도 올라가니 니스 해변이 한눈에 들어온다. 활처럼 둥그렇게 휜 반원 모양의 해안선을 경계로 오른쪽으론 니스 내륙의 시가지가, 왼쪽으론 너른 지중해가 펼쳐져 있다. 고요하고 너무나 평화로운 분위기이다. 색소폰으로 들려주는 재즈 선율은 여행의 기분을 한껏 올려준다. 지중해 바다도 예쁜 시가지도, 음악도 모두 한마음으로 니스 입성을 환영해 주고 있다는 생각에 기꺼운 마음으로 20유로를 헌사한다. 청춘 커플이 사진 한 장 찍어 달란다. 그네들의 사랑을 응원하며 이각도 저 각도로 즐겁게 셔터를 눌러준다.
캐슬힐 위쪽은 꽤나 넓었고, 다양한 산책로가 마련된 공원이었다. 조카를 데리고 나왔는지 청년이 어린 꼬맹이들 데리고 축구 놀이를 하고 있다. 학교 과제로 무슨 식물이라도 찾는지 풀숲을 연신 헤집어며 대화하는 꼬맹이와 엄마, 유아들을 데리고 나온 젊은 엄마들이 담소를 나누는 모습도 보인다.
(저물어 가는 니스 해안)
해변 조망도 하고, 산책도 하고 꽤나 흡족한 시간을 보낸 후 언덕을 내려왔다. 서서히 바다로 노을의 기운이 퍼져간다. 땡볕 아래 타오르던 바다는 차분히 가라앉고 있다. 반면 산책로는 이 시간을 기다렸다는 듯 많은 사람들이 쏟아지며 활기차다, 파도 쉴 새 없이 찰싹이는 해변 자갈밭에도 어느새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깔고 앉아 있다. 활기차게 걸어가는 사람들, 바다를 향해 나란히 배열된 카페에 앉아 있는 사람들, 산책로 가장자리에 걸터앉은 사람들, 해변 자갈밭 위 사람들, 모두 바다와 대기 가득 퍼지는 붉은 기운에 취하고 있는 것 같다.
오늘 하루를 돌아본다. 무척 길었던 하루다.
암스테르담 공항 근처 호텔에서 새벽 4시에 일어나 스키폴 공항으로 향하던 시간부터, 니스 입국에서 호텔 도착 그리고 이 시간까지, 10년의 세월을 압축하여 보낸 하루 같다. 뿌듯한 자부심과 행복한 느낌이 가득 차오르며 숙연해진다. 부모님이 생각난다. 원하는 곳에 이렇게 올 수 있는 것이 건강하게 낳아주신 부모님 덕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행복한 순간엔 늘 부모님이 생각난다.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는 두 분의 부재에 두 눈 가득 눈물이 떨어진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내일 차량을 렌트할 렌터카 사무실 위치를 확인한다. 묵고 있는 호텔에서 도보로 10여분 위치에 있는 데다 찾기가 무척 쉬워, 탁월한 업체 선정에 뿌듯해진다. 내일 렌터카로 시원하게 드라이브할 지역을 살펴본다. 과연 무사히 운전할 수 있을지 긴장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