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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윤상학 Aug 12. 2024

부라보 인생

영숙씨

'화끈한 오후입니다~'

'점심들 드셨나요?  벌써 입추를 지났네요. 이 무더위도 다음주가 되면 사그라 든다고 하니, 뜨거운  작별의 손짓을 즐겨봅시당~~'

'수영 마치고 집 드가는 길에 풍경이 너무 예뻐  한  했습니다. 즐감하시고 기분좋은 오늘 보내셔요~~^^'


여느 날 처럼 수영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풍경이 너무 좋아 한 컷 찍어 단톡방에 올렸다. 곧 언니가 간밤 내린 비로 좀 시원해졌다며 절기 딱딱 떨어지게 지은 조상들의 지혜가 놀랍다고 하였다.

 이렇게 둘이 서로 내용 주고 받는 동안 영숙씨는 한참을 응답이 없었다. 즉각 답변 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또 바쁘구나 하고 생각했다.

 시골 친정 어머니께 갔나, 지역 봉사 활동 갔나, 자기 계발 하러 갔나, 얼마 전 세입자 한분이 분란 일으켜 가까스로 해결했다고 했는데 또 문제 생겼나....여러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영숙씨가 응답을 하였다.

'오늘은 목요일이라 동사무소에서 봉사하며 시원하게 잘 보내고 있슴다.' 라며 특유의 구수한 답글을 올렸다.


  씨는 참 바쁘다. 그야말로 동분서주이다.

 어느 날은 복지관에 다녀 왔다며 앞치마 두르고 봉사 단원들과 반찬 만드는 장면을 올리고, 또 어 날은 시골 어머니께 왔다며 점심 상 앞 어머니와 마주하고 있는 사진을 올리고, 어떤 날은 리그라피를 배웠다고 예쁜 손글씨 사진을 올리고, 또 어떤 날은 친구와 태백 왔다며 차안에서 도로 옆 수북히 쌓인 설국 장면을 촬영한 동영상을 올리고, 어떤 날은 현역에서 은퇴한 정신과 의사가 숲속에 마련해 운영하고 있는 정신 수련원을 다녀왔다 하고..



어르신 한마당 봉사활동


 이민자 가정 초빙 한국 가정식 만들기 봉사 활동



                 국제 청소년 스포츠 대회 봉사 활동



                       고향 사찰 증축 홍보 활동



               친정 노모댁 제초 작업 마친 채전밭



                        성인지 역량 강화 교육 참



복지 센터에서 배워 그린 야생화


  정월 대보름에 친지들에게 돌리겠다고 배워 만든 복조리




  종종 큰 키가 불만스럽다고 하는 영숙씨는169 센치의 늘씬한  큰 눈을 하고 있다.

  키가 크면 싱겁다고 했던가. 싱거운 소리 잘한다. 약간의 유머는 있으나 대체로 진지한 편인 언니와 나, 둘에 비하면 유머 감각이 꽤 있어 모임은 유쾌하고 즐겁다.

그리고 별명이 '준비', '챙기리' 이다. 다른 모임에서 붙여준 별명이라고 하는데, 찰떡이어서 우리도 그렇게 부른다.


 우리는 대체로 2달에 한번씩 점심 시간에 만난다.  먼저 식당에서 만나 점심을 먹고, 다음엔 카페로 가는 게 만남의 주요 동선이다.


 점심 식사는 대체로 한식을 한다. 서양 요리와 동남아 요리를 좋아하는 나에 비해 한식을 좋아하는 두 사람을 따라 대체로 그렇게 한다.

  나물이며 생선이며 국이며 맛나게 식사가 끝나면, 영숙씨는 재빠르게 가방에서 이쑤시개를 꺼내 우리에게 준다. 우리는 요긴하게 받아서 쓴다.

 그렇게 서너 차례 영숙씨가 내미는 이쑤시개를 받다가 어느날은 어디서 구했는지 물었다. 계속 받는 게 미안해서 나도 건네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알려준 곳에 가서 구입을 했다. 한 통에 가격도 저렴하여 6통을 샀다. 다음 모임에 들고 나가서 각자에게 한통을 주었는데, 언니도 나처럼 이쑤시개를 준비해 와서 2통씩 나누어주었다. 같은 생각을 했음에 우리는 웃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었고, 모임에선 여전히 영숙씨가 재바르게 이쑤시개를 꺼내고, 우리는 여전히 받아 쓰고 있다.

다년간 구축된  '준비리', '챙기리'의 습관을 이길 수가 없다.


 카페를 가면 음료와 더불어 빵을 두어개 함께 산다. 고 예쁘고 맛나 보이는 케익류를 어떻게 외면할 수 있으며, 질겅질겅 씹을 수록 구수한 치아바타를 어떻게 안 집을 수 있으랴.

  그렇게 골라 전망 좋은 자리에 착석을 하면, 영숙씨는 또 가방을 부시럭부시럭 뒤적이며 하나, 둘 내어 놓는다.

복숭아, 자두, 귤 등 계절 따라 나오는 과일들과 커피 좋아하는 내게 맞춤인 에이스 비스켓 등 과자류를 내어 놓는다.

 이외에도 때에 따라 여러 가지 주전부리들을 챙겨 온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어지는 토크에 수북하던 주전 부리는 어느새 클리어된다.

  이렇게 우리의 입을 즐겁게 해주는 것들을 한번도 빠짐없이 준비하고 챙겨오는 영숙씨는 정말이지, 누가 지어줬는지, '준비리', '챙기리'가 똑 떨어지게 맞는 별명이다. 별명에 '~리' 가 붙은 건 영숙씨 성씨가 이씨여서이다.





  씨는 3남매 중 막내로, 위로 오빠 두분이 계신다. 아버님은 돌아가셨고 어머님은 대구 근교 청도에 홀로 계신다.

 자식들이 모시겠다고 하여도 논밭 훤한 들판에서 평생을 사신 분이라, 어쩌다 병원 는 일로 자식 집을 방문하여도 하룻밤 겨우 지내시고 집으로 가신단다. 아파트가 답답하시단다. 


  상처하고 재혼하신 큰오빠는 부산에, 작은 오빠는 대구에 사시고, 두 분 다 국책 은행과 공기업에 다니셔서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노후 생활을 하고 계신다.

  씨도 낭군님께서 대기업 다니시고, 본인이 식당도 운영하고 집 짓는 장사 하여 윤택하게 지내고 있는 편이다. 

 

 고졸 출신인데, 자기가 자란 동네에선 자기를 제외하고는 여남은 명 남녀 또래들이 모두 초졸이란다. 그래서 고등학교 까지 다니게 된 본인은 초등학교 동창회에 가면 유일한 고졸 출신으로 위세를 누린다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말한다.


  청도는 현재는 고급진 전원 주택 단지도 꽤 형성되어 있고, 높고 낮은 산지 곳곳에 복숭아 밭이 많아, 봄철이면  동네가 분홍빛 복사꽃으로 물든다.

   복사 꽃 풍경 좋은 곳곳에는 예쁜 카페 들도 많이 들어서 있어서, 지금은  대구 시민이 주중이나 주말에 나들이 장소로 즐겨 찾는 곳이다.

  그러나 영숙씨가 나고 자란 고향은 면소재지에 속해 있는 동네로 전형적인 시골이다.

그러니 40년도 훌 넘는 아득한 그 시절엔 얼마나 궁벽한 시골이었을까. 그래서 친정 어머니께 고등학교까지 진학시켜 주신 지한테 고맙 생각하라고 종종 말씀하신단다.


  시골에서 자라서인지 정 많, 마음씨 품새도 넓다. 누구 뒷말하는 것도 본 적 없고, 혹시나 오해할 여지 있을 것 같으면 열심히 세세히 상황 설명해주고, 의아한 일이다 싶으면 마음 상하지 않게 그 이유를 물어보고, 오해를 사전에 차단하려 한다.

 

 삼남매 중에 막내이고 여자이니 시골 계시는 어머니에 대해서는 위에 있는 오빠들께 맡, 뒤로 물러나 보조만 하여도 되겠인이 모 알아서 해결하는 편이다. 

 어머니 반찬, 건강 살피기, 요양사 알아보기 등을 비롯하여 시골이니 자그마하나마 채전밭이 있는데, 그 채전밭 가꾸기 등 몸을 사리지 않고 척척 도맡아 해낸다.

  올 봄에도 시골 집 창고 신축을 하였는데, 작은 창고 하나  짓는데도 수월하지 않더라며 구축 철거에서 신축 신고 부터 건축업자 물색, 자재 구하기 등 하나 부터 끝까지 오빠들 도움없이 혼자 다 해내었단다.

 건축 과정에 건축 업자와 실갱이 하여 완성 까지 머리 꽤나 썩어가며 완공했는데도, 오빠들 도움없이 홀로 완공을 했고 한다.

 큰 오빠는 부산 사는데다 재혼이라서 올케에게 부담 주기 싫어서, 작은 오빠는  퇴직 후 다른 사업을 벌여서 바쁘기 때문에 홀로 모두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두 오빠들로 부터도 여러모로 인정을 받아 통상 동생들을 부를 때 이름을 부르는 경우와는 달리 오빠들은 영숙씨를 '이사장'이라고 부른단다.

 씨의 호방하고 탁월한 일 솜씨를 익히 알고 있지만 오빠들도 그렇게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작년엔 큰 오빠네 큰 아들앞으로 서울에 있는 빌라 하나를 증여했다고도 했다. 엄마 일찍 여의고 새엄마 밑에서 자라온 조카를 말할 때면 항상 눈자위가 붉어지곤 하였는데, 그 조카 앞으로 물려줬단다. 어여뻐하는 줄은 알았지만 자기 자식을 두고서 이렇게 건네주기가 어디 쉬운가.

 우리에게 하는 것과 친구들 또는 세입자와의 사이에서 일어난 일들을 통해 영숙씨의 넉넉한 마음 품새를 알고 있었지만, 이다지도 클 줄은 몰랐다. 씨의 따를 수 없는 마음 품새를 읽을 수 있는 한 대목이었다.


 바쁜 와중에도 눈물 많고 정 많아 감동 받은 내용 올려 울컥하게 하고,


재밌는 내용도 올려 웃음 주고



여러 유익한 정보 올려 생활에 보탬 준다.



세절 인사도 놓치지 않는다.  입춘이라고, 초복이라고, 동지라고 절기마다 절기에 맞는 인사를 꼭꼭 먼저 올린다.

'입춘 맞아 행복하세요~'

'복날입니다. 맛난 거 드시고 건강하게 보내세요~'

'죽 드시고 액운 물리치세요~'







꽃피는 4월엔 꽃비 내린다고,

매월 첫날이면 첫날이라고,





일주일에 1~2번은 꼭 안부 인사한다.


'즐겁게 보내세요~',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많이 웃는 하루 되세요~'


때로는 예쁜 그림과 때로는 재미난 동영상과 함께 올리는 글에는 영숙씨의 따뜻하고 살가운 정이 가득이다.

그래서 늘 위안 받는다.


 씨는 여름이면 목에 거의 늘 스카프를 두른다. 면으로 된 스카프인데, 미에 땀이 흘러서 주체를 못한단다. 관절이 안좋아 관절 약을 먹고 있다고도 한다.


  런데도 이 삼복더위가 무색할 정도로 돌아다닌다. 자기 계발에 지역 봉사 활동에 친정 모친 돌봄에 친구와 우정 쌓기에 열심인 영숙씨, 내 주변 멋진 여자 중 한 명이다.

그래서 나는 종종 영숙씨한테 말한다. 영숙씨는 국가에서 관리해야 할 보물이라고.

멋진 인생 꾸려가는 존재와 인연인 것이 감사하다.

영숙씨, 부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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