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근교 여행 3

루아르 고성 투어 : 앙부아즈 성

by 태윤상학

일주일 간 머물던 숙소를 떠나 다른 숙소로 이동해야 하는 날이다. 15 구역, 한국인이 많이 사는 구역으로의 이동이다. 퇴실하는 날짜에 맞추어 루아르 고성 투어를 예약하였다.


아침 7시에 여행사에서 숙소 앞으로 데리러 왔다. 밝게 인사하는데 기사 표정이 뚱하다. 오늘 아침 미팅 시간을 두고 어제부터 말이 좀 엇갈리고 하더니 영 표정이 마음에 안 든다. 기사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가이드도 겸했다. 이런 가이드는 처음 본다. 서비스 종사하는 사람이 이래서야 원.. 아침부터 기분 썩 안 좋게 만든다. 차로 한참을 달려가 다른 곳에서 부부 한 팀을 태운다. 그렇게 세 명을 태우고 루아르로 향한다. 작은 인원에 불만이어서 그렇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오늘 방문할 루아르 고성은 루아르 강을 끼고 자리하고 있는 성으로 파리에서 2시간 30분 정도 남쪽에 위치해 있다. 루아르 강을 따라서는 크고 작은 800개 정도의 성이 발달해 있다고 한다. 그중 오늘은 앙부아즈, 쉬농소, 상부르 등 세 개의 성을 둘러볼 예정이다. 묵직한 침묵을 깨고 가이드가 고성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을 한다. 뒤에 앉아 있던 남편분이 말소리가 잘 안 들린다고 하는데도 아무 대꾸 없이 계속 이어간다. 머쓱해졌을 남편이 더 이상 요청 없이 조용하다. 참 희한한 가이드다.


(앙부아즈 성으로 가는 길의 휴게소)


1시간 정도 지나 휴게실에 들렀다. 이른 시간에 출발한 관계로 아침 식사 타임을 갖게 된 것이다. 스타벅스도 있고, 여러 종류의 빵과 커피를 취급하는 꽤나 큰 카페도 있다. 역시 우리 편의점 같은 매점도 있다. 에스프레소와 빵을 골라 자리에 앉는다. 프랑스의 빵과 에스프레소에 맛 들여 버렸다. 오직 이를 위해서도 기꺼이 프랑스를 방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만족한 모닝커피 시간을 갖고 개운한 기분으로 또 출발한다. 1시간 30분 정도만 더 가면 첫 번째 방문지인 앙부와즈 성에 도착한다.


(앙부아즈성 출입문과 앞 풍경)


주차장에서 내려 걸어가는데 골목으로 초등생 정도의 학생들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간다. 모두 안전모를 쓰고, 안전복 지정색인지 연두색 조끼나 의류를 입었다. 자전거를 많이 타는 나라답게 안전에 대한 교육과 습관이 잘되어 있는 것 같아 우리나라에도 도입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주차장에서 마을 주택 지붕 위로 둥그런 성의 윗부분이 보였는데 이내 성 앞에 이르렀다. 이렇게 앙부아즈성은 마을과 함께 있다. 높은 성벽 앞으로는 카페와 식당들이 가지런히 예쁘게 자리해 있다.


성으로 들어가는 출입구에 높고 꽤나 위압적인 원형탑이 있다. 그 탑의 안으로 성으로 통하는 길이 있는데, 꽤 높고 넓다. 예전에 왕족이 출입할 때 말을 탄 기마병의 호위를 받아 마차를 타고 드나들었기 때문이란다. 답사를 나왔는지 중학생으로 보이는 학생들 한 그룹도 앞으로 들어가고 있다.


(생위베르 성당과 성당 내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 묘소)


(플로렌틴 성당 자리였던 곳에 있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석상)


탑 안의 답답한 길을 벗어 나오니 철제 출입문이 또 있다. 문을 지나 언덕으로 올라가니 방금 지나온 고픙스런 길목과 달리 야외 테라스에 테이블까지 둔 세련된 카페가 있다. 그리고 경사진 길을 좀 더 올라가니 시원하게 탁 트인 풍경이 전개된다.

잘 가꾸어진 푸른 잔디밭과 정원수로 이루어진 널찍한 공간은 고요하고 평화롭다. 높다란 성벽 위로 이렇게나 넓은 공간이 있다는 것에 놀랍다. 정원 저 안쪽으로 성이 있다.

왼쪽 성벽 한 자리에는 자기 키만큼이나 높다란 첨탑을 이고 있는 고딕 양식의 자그마한 성당이 앙증맞게 자리하고 있다. 성당은 샤를 8세 때 건축된 생 위베르 성당이다. 2024년에 대대적인 복원 공사를 완료하였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깨끗한 화이트톤의 건물이 산뜻하고 화사하면서도 섬세한 조각들로 화려하다. 그 화려한 성당 안에 르네상스 시기의 세계적 천재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영면하고 있다. 의외였다. 그가 왜 여기에..


이탈리아 출신 레오나르도가 이곳으로 오게 된 것은 이곳의 왕 프랑수아 1세 때라고 한다. 1515년, 프랑수와 1세는 선대 왕들의 이웃 나라(스페인, 영국, 신성로마 제국 등)와의 영토, 상속, 권력 문제를 두고 벌인 치열한 전투를 이어서 원정 간 이탈리아에서 승리하여 밀라노를 되찾는다. 이 원정에서 찬란하게 꽃핀 이탈리아 르네상스 문화를 목격한 프랑수아 1세(당시 20대 초반이었음)는 이탈리아에 비해 초라한 프랑스 궁전을 개축하기를 희망하며 이탈리아의 예술가들을 프랑스로 초빙한다.

이때 64세의 노년에 접어들어 이탈리아에서 다소 뒷자리로 밀려나 있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그의 부름에 응하여 1516년에 앙부아즈로 오게 된다. 그는 앙부아즈 성에서 400m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는 끌로 뤼세성(Chateau du Clos Luce, 프랑수아 1세가 이용하기도 했던 왕실 저택)에서 거주하면서 그림, 건축, 운하, 도시 설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프랑수아 1세의 전폭적인 지지와 후원에 협응 하여 왕성하게 활동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앙부아즈에 온 지 3년이 되던 해인 1519년에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사망하게 되고, 그는 앙부아즈 성 정원에 있던 플로렌틴 성당(St. Florentine)에 잠들기를 희망했다고 한다. 그의 희망을 따라 플로렌틴 성당에 유해를 안치했지만 안타깝게도 이 성당은 프랑스혁명 기간 동안 파괴되어 사라지게 된다. 그러다가 1863년에 플로렌틴 성당 발굴 프로젝트가 시행되면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묘석 파편을 발견하게 되고, 그의 유해는 지금처럼 생 위베르 성당(Chapelle Saint-Hubert)으로 옮겨지게 된다. 이후 플로렌틴 성당 자리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석상을 세웠고, 현재까지 그 자리에 있다.


그의 유해가 안장된 묘소에는 그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싱싱한 하얀 백합꽃이 묘소를 잘 관리하고 있다는 듯이 꽂혀 있다. 다양한 영역에서 실력을 발휘한 인물을 뜻밖의 공간에서 맞닥뜨린 놀라움과 존경심에 머리 숙여진다. 자기 고국을 떠나와 말년을 보낸 이곳의 타향살이가 마음에 들었을까. 나이 들수록 고향을 자주 떠올리게 되는 마음에서 왠지 수구초심의 삶이 아니었을까 하는 마음에 숙연해진다.


(생위베르 성당 쪽에서 아래로 내려다본 마을 모습)


예배당을 나오니 성 아래로 동화책에서나 보았던 뾰쪽한 지붕을 한 주택들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탄성이 절로 나온다. 트롯 가수 임영웅이 무대에서 부르는 '보랏빛 엽서'의 첫 번째 마디의 '엽서'에 청중들이 하나같이 탄성을 내지르는 순간처럼 보는 순간 저절로 탄성이 흘러나온다. 셔터를 마구 누른다. 담아도 담아도 마음 채우지 못한다. 동영상으로도 촬영한다. 가이드가 왼쪽 끝으로 손짓하여 한 주택을 가리켜 레오나르도 다빈치 집이라고 한다. 진정한 천재로 여겨지는 인물에 경외심 가득 담은 마음으로 사진을 촬영한다. 르네상스 시대의 중앙에서 주목받다가 밀려난 그 낙심의 상처가 얼마나 컸을까, 노구를 이끌고 이곳으로 와서 상심을 달래며 보냈을 인물에 연민이 생긴다.


(프랑수와 1세)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임종을 지키는 프랑수와 1세)


(앙부아즈 성 본채인 궁전)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푸른 잔디 사이의 단정한 보도를 따라 앙부아즈 성의 본채로 이동한다. 커다란 창으로 햇빛이 환하게 들어오는 공간은 왕족의 침실, 회의실, 접견실, 음악 살롱, 시종의 방 등 다양한 기능으로 나누어져 있다. 공간 곳곳마다 사용하였던 가구의 배치와 더불어 이곳에서 지냈던 인물들의 초상화와 당시의 상황이나 자연 풍경을 직조한 태피스트리(Tapisserie)가 벽에 부착되어 있어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더한다.


앙부아즈 성은 원래 중세 시대에 앙주 공작이 세운 성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샤를 7세 때 왕족에게 소유권을 빼앗기게 되고, 이후 왕실이 실제 거주하는 궁전이 된다. 이는 샤를 7세가 영국군과의 전쟁에서 쟌다르크의 활약으로 승리하면서 프랑스의 옛 영토를 회복하게 되고, 이후 왕권을 강화하는 제도에서 비롯한다. 왕권 강화의 대표적 예로 군사 제도를 개혁하여 '상비군 제도'를 둠으로써 군위를 강화하고, 국세를 상설화하여 왕실의 재정을 튼튼히 한 것이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샤를 7세는 기존 중요 세력이었던 봉건 영주 대신에 부르주아 출신의 신흥 귀족들을 왕실의 중요 요직에 등용한다. 이와 같은 개혁으로 자신들의 군사 및 재정이 약해지는 것을 염려한 봉건 귀족들이 샤를 7세에 반발하여 반란을 일으킨다. 이에 샤를 7세가 왕권에 도전하는 음모에 가담한 공작 루이 당부아즈(Louis d'Amboise)를 풀어주면서 그로부터 앙부아즈 성에 대한 소유권을 넘겨받게 되고, 이후 샤를 7세의 뒤를 이어 5명의 왕이 이곳에 살게 된다.


현재의 앙부아즈 왕성의 75%는 샤를 8세 때 건축된 것이라고 한다. 샤를 8세 통치 기간 동안 앙부아즈는 중세의 웅장한 요새에서 르네상스 왕궁으로 변모한다.

그의 요구에 따라 거대한 공사가 15세기말부터 시작되는데, 기존의 방어에 중점을 둔 성곽 중심의 성은 넓은 창문과 밝은 채광을 둔 주거 공간으로 변모하게 된다. 그리고 이탈리아의 장인을 불러들여 조각, 회화, 장식을 맡김으로써 프랑스 최초의 르네상스 양식 건축물 중 하나가 된다.


성을 세우고 또 주거 공간으로 사용하고 했던 지난날의 인물들의 화려하고도 일상적인 일들을 듣자니, 늘 느끼듯이 허무함에 마음 무거워진다. 누구나 언젠가는 사라지게 된다는 존재의 허무함 말이다..


(앙부아즈 성의 정원, 루아르강 주변 및 성을 둘러싸고 있는 마을 풍경)


궁전을 나오니 탁 트인 공간에 잘 다듬어진 아담한 정원이 나온다. 샤를 8세가 이탈리아 원정에서 보았던 이탈리아 정원을 모방해 마련한 정원으로 프랑스식 정원의 기원이 되었다고 한다. 장방형의 잘 계산되어 만들어진 정원으로 정원에는 남프랑스의 프로방스 지역에서 볼 수 있는 라벤더가 활짝 피어 있다. 이곳의 풍경은 정원에서 마주하여 정원 건너편으로 멀찍이 바라보이는 앙부아즈성의 전망도 좋지만, 정원 성벽 아래로 흐르는 루아르 강과 그 강변을 끼고 형성되어 있는 마을의 풍경이 압권이다. 잔잔하게 흐르는 강과 마을이 자아내는 전원 풍경은 파란 하늘아래 너무 예쁘다.


(앙부아즈 성 출입문 앞의 카페와 상가 거리)


성에서 나오니 들어갈 때는 한산했던 카페와 식당 거리가 다소 활기차다. 단체 손님이 온 듯 연령 지긋해 보이는 남녀 백인들이 무리 지어 각 식당들을 드나들고 있다. 카페 한 곳에 들어가 점심으로 바케트, 치킨 샐러드와 음료를 주문해서 야외 테라스에서 식사를 한다. 위로 높이 솟은 성벽을 바라보며, 옆자리에 앉은 유러피언들의 유쾌한 웃음 속에서 맛난 음식을 먹는 순간이 꿈같이 여겨진다. 식사를 마치고 동네 구경에 나선다. 카페 안쪽의 골목으로 들어가니 예쁜 상가들이

형성되어 있다. 예쁜 시계탑도 있다. 모임 시간이 되어 동네 구경은 상가에서 멈춘다.


앙부아즈성은 성의 고풍스러운 분위기도 좋지만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루아르 강과 고풍스러운 마을이 함께 어울려 빚어내는 풍경이 무척 좋다. 마음에 두고 있는 지역들인 아프리카, 중동, 중앙아시아 그리고 중남미 일대를 한번 돌고 난 뒤 기회가 된다면 꼭 다시 와 보고 싶다. 그땐 렌터카로 와서 최소 3~4일간은 머물고 싶다. 아침 창을 열어 뿌연 안갯속에 잠긴 동네를 보고, 골목을 거닐어도 보고, 루아르 강변 산책도 하고, 보트를 타고 강을 따라 흘러가 보고, 성에서 이쪽저쪽 성벽에 기대어 예쁜 마을 내려다보며 풍경에 흠뻑 취해 보고 싶다. 그땐 우아하고 세련된 이 고장의 풍경에 어울리게 격조 높은 룩(Look)으로 잘 차려입고 것이다.


이어 다음 행선지인 쉬농소성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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