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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나 Jun 03. 2021

그때는몰랐고, 지금은 아는 것

그림일기

어느 날 낮잠을 자고 있는 아이 옆에 나란히 누워 있었다.

커튼 사이의 작은 틈으로 들어온 희미한 빛이 반사돼 아이 볼에 난 솜털이 빛났다.

아이의 솜털 위에 잔상처럼 그려지는 주름들과 함께 온갖 감정이 재난처럼 나를 순식간에 덮쳤다.

호르몬의 농간인가 싶었지만 속수무책으로 당해 눈물을 감당할 수 없었다.

마주 누운 아이는 빛이 났다. 쌔근대는 소리가 경이롭기까지 했다. 

한 편의 영화가 너로 인해 새로 시작했구나싶으면서도 누군가의 영화는 시작보다 끝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게, 그 사실이 더 속수무책이라 가끔은 베트남에서 한국까지 한 걸음에 달려가고 싶었던 적이 많았다.


보송한 아이의 솜털에서 세월과 주름을 연상시킨다는 게 이상하지만, 

아이와 마주 누워 매끄러운 볼과 보송한 솜털을 보고 있자니 엄마 눈가에 새겨진 주름들과 흘러간 시간만큼 검게 활짝 핀 검버섯이 잔상처럼 그려졌다. 마치 어제는 없던 것이 오늘 생겨난 것처럼 생소하게.

엄마와 영상통화를 하곤 깨닫는다. 


우리 엄마, 언제 이렇게 늙어버렸지.


940110 아름다웠던 엄마의 젊은 시절을 되새기며




엄마가 되니까, 아기 낳으니까 어때라고 종종 묻는 말들에

행복해란 대답을 하고 

그리고 엄마가 되고 나니까 일상의 틈에서 엄마가 보여라는 말을 속으로 덧붙인다.


엄마가 되고 나니까 이제는 알 것 같아,

엄마가 엄마여서 그토록 행복했고 또 그만큼 시렸던 마음을.

그걸 이제서야 알 것 같아.

그러곤 또 왈칵 주체 못 할 눈물이 나올까 그 마음을 서둘러 보내버렸다.


나는 아이가 자라나는 순간에서 늙어가는 엄마를 본다.

그럴 때면 그때는 아름다운 줄 몰랐던 어린 시절 젊었던 엄마와 내가 함께 했던 추억들이 파편이 되어 돌아와 가슴에 꽂힌다. 마음이 참 시리다. 벅차올라 달려가 안고 싶은 맘을 한번 누르고야 말았다.

분명 괜찮다고 나를 어르어줄 엄마를 생각하면서.

아이가 자라는 순간을 멈추고 싶은 만큼 엄마가 늙어가는 시간 또한 늦추고 싶다.



2020년 어느 달의 일기에서



Writer _ 똔 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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