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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나 Jul 01. 2021

나 역시 엄마 외에 다른 대책은 없으면서

다시 일어서기 위하여

“우리 엄마도 내가 그렇게 안타까운가 봐. 빨리 복직하라고 난리야”


얼마 후 예전 직장 동료 이혜가 다시 복직했다는 소식을 알렸다. 

이혜는 나와 같은 곳에서 나온 후로 두번 더 직장을 옮겼다. 원래라면 대리로 승진했어야 했는데 또 한번의 이직 시기가 승급 심사를 빗겨 갔다. 그러다 아기를 가져 육아 휴직을 하고 보니 이번에 복직하지 않으면 언제 다시 대리를 달 수 있을지 기약이 없어진다고 했다. 

머리 새까만 후배들이 치고 올라와 그 후배들을 곧 대리님이라고 부를 날도 멀지 않았다고. 이혜의 어머니 또한 이혜에게 돌이 된 아이를 두고 회사에 나가라고 등 떠밀었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여파인지 이대로 딸이 저무는 게 아쉬운 엄마들이 육아를 자처하고 나섰다. 자신 또한 김지영이 될까 두려워 서둘러 복직하는 딸들에겐 엄마 외에 다른 대책은 준비되지 않았다.


복직한 이혜가 카톡을 보내왔다. 

[회사가 아무리 힘들어도 육아보단 쉽다. 근데 아기가 자꾸 눈에 밟혀.]

복직하고 처음 만난 이혜는 원래 마른 몸에서 혼까지 쏙 빠져보였다.


“칼퇴 하자마자 엄마 집에 들려서 아기 데려와. 아기 데리고 집에 가면 아기 밥 먹이고 씻고 재우고. 거기에 내 밥 남편 밥 차려 먹는 것도 보태서 다 일이야 일. 가끔 잠든 아기 얼굴 밤에 보면 눈물이 나. 엄마한테도 미안하고. 무슨 부귀 영화를 누리자고 이렇게 사는지”


나는 그저 이혜를 복직할 직장이 있다는 사실만 부러워하다 정작 복직해 방향을 잃은 듯 한 이혜를 보니 어떤 말을 해줄지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네가 맞는 거야라고 말해주었다. 

모든 이들의 답이 정답이 아닌 최선이듯 그 곳에 아무리 똑똑한 사람 있다 하더라도 정답을 찾아줄 수 없었다. 그래도 참고 다니라고 하기엔 이혜의 젊은 시절에도 유통 기한이 있었다. 그렇다고 그냥 그만 둬라고 하기엔 집 구석에서 울던 내가 모순적이었다.

그 곳에 있던 우리 중 누구도 섣불리 결론을 낼 수 없었다. 그 어떤 것도 녹록치 않았다. 

그 곳에 있던 우리 모두 고립을 느꼈다.


“너는 다시 취직 안하니?”

우려스러운 얼굴로 엄마가 물었다. 

엄마가 되고 내가 엄마의 삶을 되짚었 듯 엄마도 엄마가 된 내 모습에서 자신을 투영시킨 모양이었다. 아니면 그저 집에서 다 늘어진 티를 입고 젖먹이 아기랑 실랑이하는 모습이 안타까웠을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엄마는 내가 무엇을 하든 군말 없이 아이를 봐 주겠다고 했다. 여름 내 학원에 다닐 때도 엄마는 돌쟁이 손주와 하루종일 씨름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지난 삼 년간 동전 한 닢 벌어 온 적 없지만 엄마는 내가 나다니는 것이 좋은 모양이었다. 엄마에게 모든 것은 가능성을 의미하는 듯 했다. 

그래서 언제인지 모를 사회 생활을 하려면 여자도 운전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몇 번이나 반복된 엄마의 등쌀에 밀려 미뤄 두었던 운전 연수를 시작했다. 

그러다 역시나 책이 좋아 돈도 되지 않는 책을 쓰겠다고 앉은 딸을 위해 손주를 받아 안았다. 엄마는 내가 언젠가 다시 내 일을 하게 되리라고 나보다 나를 더 믿고 있는 것 같았다. 온 인류가 응당 나아가야 할 역사의 흐름처럼. 


나 역시 엄마 외에 준비 된 대책은 없으면서 곧 호강시켜 주리라 허풍을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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