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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나 Jul 28. 2021

내 친히 인어에게 다리를 하사하나니

인어공주

"내 친히 인어에게 다리를 하사하나니"


"일단 고관절과 다리의 뼈는 고강도 탄소 복합제로 이루어진 구조물로 구축하고, 관절은 상어 연골이 합성된 소재로 만들어질 예정입니다. 미세한 근육의 떨림에도 반응할 정도로 초미세 센서가 장착되어 부드러운 움직임이 가능합니다. 이 위를 고민감도 신축성 전자피부센서가 장착된 최첨단 소재인 그리핀으로 이루어진 인공 피부로 덮어 실제 다리와 비슷한 모습으로 만들 예정입니다. 몇 달간의 재활 과정을 거치면 일반인과 같이 직립 보행하는 것이 가능할 겁니다"


3D로 구현된 인어 공주의 꼬리 부분이 확대되어 빙글빙글 돌더니 점차 사람의 다리로 변하는 과정이 구현되었다. 과정이 진행될 때마다 방청석에 앉은 사람들의 어쩔 줄 모르는 탄성이 터지기 시작했다. 그 탄성에 아나운서가 한 숟가락 더 얹었다.

"인어 공주가 현대 과학의 최대 수혜자 같네요"




넓고 평평한 탄상 위에 올라앉은 인어 공주의 꼬리에 두 명의 여자가 달라붙어 앉아 끈적끈적한 액체를 바르고 있었다. 오랜 물 밖의 생활에 적합하지 않은 공주의 비늘이 마르지 않도록 주기적인 관리가 필요했다. 액체를 씌운 꼬리를 둘러 스팀을 쏠 차례였다. 공주의 꼬리에 힘겹게 기계를 끼우던 여자가 말했다.

"이제 수술하시면 더 이상 이런 관리는 필요 없으시겠어요, 좋겠다"

"더 이상 힘들게 휠체어를 타고 이동할 일도 없지"

공주의 시선 끝에 낡은 휠체어 한 대가 서 있었다. 손잡이엔 팬들이 선물해준 공주 본인을 본 딴 비즈 인형이 현란하게 빛나며 걸려 있었다. 그래도 저 휠체어에 추억이 참 많았는데, 내심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공주가 인간 세상에 나와서 번 돈으로 처음 마련한 것이 저 휠체어였다.

"자, 이제 워시 오프하고 글리터 바를게요"

씻어낸 꼬리 위로 금빛의 글리터가 발라지고, 비늘 틈 사이로 접착제를 바른 후 큐빅마저 붙여 넣으니 공주의 꼬리가 조명에 아름답게 빛났다.

"자, 준비 다 됐어요. 촬영 들어갑니다"

공주가 능숙하게 카메라를 응시하며 포즈를 취하자 오케이, 소리와 함께 셔터가 눌리기 시작했다.


촬영장을 나서자 마중 나온 인우가 기다리고 있었다.

"촬영은 잘 마쳤어?"

15살 바다를 떠나 물을 거슬러 한강으로 헤엄쳐 와 처음 본 인간들의 도시는 압도적으로 거대하고 화려했다. 잠깐 본 도시의 풍경이 내내 공주의 마음속에 소용돌이쳤다. 한번 부푼 공주의 마음은 그 누구도 잠재울 수 없었다. '도시의 화려함에 속으면 안 된다'가족들의 만류에도 공주는 18살 바다를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밤마다 빛나는 불빛에 뜨거워 폭발할 것만 같던 도시는 차가웠다. 공주는 처음으로 육지 위로 몸을 끌어올렸을 때의 꼬리에 닿던 그 차가운 감촉을 아직도 기억했다. 으악, 저게 뭐야라고 소리치던 음성도 귓가에 선명했다.

그런 공주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준 건 인우였다. 공주의 사연을 세상에 알리고 다리를 얻기 위한 후원금 캠페인을 시작한 것도 인우였다. 그는 공주와 함께 하는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 하는 사람이었다.

"응, 재밌었어. 분장 제거하려면 골치 좀 아프겠지만"

인우는 그제야 꼬리에 붙은 큐빅들을 발견한 듯했다.

 "아이고, 오늘은 유독 많네"

공주가 차 조수석에 양쪽 팔을 지탱해 힘을 실어 상체를 들어 올리자 인우가 능숙하게 꼬리를 차 안으로 밀어 넣어주었다. 사이드 미러로 휠체어를 접어 트렁크에 넣는 인우가 보였다.

'우리 인우, 진짜 고생하네'


가는 길에 장을 보기 위해 마트에 들렸다. 보통 인터넷 주문을 하곤 하지만 당장 쓸 휴지가 떨어졌다니 별도리가 없었다. 마트에 들어서자마자 공주는 많은 시선이 자신에게 꽂히는 것이 느껴졌다. 공주의 꼬리는 당연히 어디에서든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그게 싫어서 담요로 가리고 다닌 적도 있었지만 어느 날부터는 꼬리를 내놓고 다니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시선에도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인우가 격려해준 덕분이기도 했다. 공주가 처음 도시에 도착했을 때는 사람들의 눈은 그저 노골적인 호기심만을 담고 있었지만 공주의 사연이 퍼진 후로는 동정과 따뜻한 시선을 담고 있는 눈도 많았다. 공주는 동정이 잘못되었다곤 생각하지 않았다. 공주는 때론 그 동정을 이용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냥 검정 머리 사람들 사이에 빨간 머리 사람이 있는 것과 같은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아이고 총각, 대단하네"

나이 든 할머니 한 분이 와서 친근하게 인우의 등을 토닥이고 가자 인우는 곤란한 듯한 미묘한 미소를 지었다.

"다리 없는 처자 수발드는 거 힘들지"

"그러게 대단하네. 그래도 이제 아가씨도 곧 정상적인 다리를 갖게 된다며. 축하해"

옆에 있던 남자가 거들었다. 악의라곤 하나도 없는 미소들이 공주 마음에 깊은 자국을 남겼다.


돌아오는 길 내내 인우는 공주의 기분을 살폈다. 인우와 공주가 함께한지도 벌써 3년, 인우는 공주의 눈썹 모양만으로도 그녀의 기분을 맞출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이런 상태에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올바른 방법임도 말이다.

아파트 단지 내의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공주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내리는 윗 층 아이와 부딪힐 뻔했다.

"으악, 얘. 갑자기 튀어나오면 어떻게 해"

"갑자기라뇨, 먼저 내리고 타는 게 맞는 거죠"

맞는 말이었지만 본능적으로 쏘아붙였다.

"아니, 네가 바닥에 붙어 있으니까 안 보이지. 휠체어는 어따 두고"

아이는 넓은 스케이트 보드에 몸을 붙이고 손을 바닥에 짚는 반동으로 굴러가고 있었다.

"아이, 요 앞에 보드 타러 가는 데 이게 더 편하죠, 공주님도 이거 타보세요. 덕분에 단지 내에 경사로도 다 설치되어 있잖아요"

공주가 방송을 타고 광고를 찍으면서 유명세를 타자 단지를 소유한 회사에서 자선 사업의 일종으로 계단 리모델링을 진행했다. 아이는 단지 내 계단이 있는 곳에 휠체어가 다닐 수 있도록 경사로가 설치된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아이의 말에 순간 공주는 인우 발 옆에 납작 누운 채로 보드 위에 올라가 있는 자신을 상상했다. 으아, 끔찍해. 나란히 있는 인우와 자신의 모습은 상상 속에서도 괴기하게 보였다.

"그럼 사람들이 우릴 어떻게 보겠니"

뭐 그런가요라는 상관없는 표정으로 아이는 빠르게 굴러 사라졌다.




"정말 혼자 갈 수 있겠어?"

다리 복원 수술 전 검사를 하러 가는 날이었다. 원래 인우도 함께 가기로 했었지만 지난밤 갑작스러운 상사의 부고로 팀원들을 대신해 사무실을 지키기로 했다.

"혼자 가기 싫으면 미뤄도 돼. 다음에 날 잡아서 나랑 같이 가자"

"안돼, 여러 사람한테 민폐야. 그리고 수술 날자가 밀리잖아"

공주는 수술을 미루고 싶지 않았다. 미뤘다가는 흔들리는 자신의 마음을 영원히 잡지 못할 것만 같았다. 인우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집을 나섰다. 인우의 얼굴에서 보이지 않는 바닷속 가족들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안 그래도 어제 한강에서 가족들을 만나고 온 참이었다. 공주의 수술 소식을 들은 가족들은 선뜻 축하해주지 않았다.

"결국 꼬리를 버리겠다는 거야?"

"인간의 다리로는 이렇게 빨리 헤엄칠 수 없어. 바다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거야"

"꼭 인간과 같아질 필요는 없어"

"네가 행복하다면 됐어"

모두 인우와 같은 표정이었지만 체념하듯 공주의 행복을 빌어주었다.

'언니, 꼬리를 버린다는 건 바닷속에서나 허용되는 표현이야'

공주는 내뱉지 못 한 말 대신 가족들에게 영원한 작별을 고했다.


날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지만 공주의 비늘엔 치명적인 맑은 날이었다. 수분 젤을 듬뿍 바른 꼬리를 랩으로 둘둘 싸고서 집을 나섰다.

"공주님, 오늘 다리 수술하러 간다면서요?"

아파트를 나서는 공주에게 어제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쳤던 아이가 휠체어를 타고 다가왔다.

"응, 정확히 오늘은 아니지만. 넌 어디 가니?"

"친구들 보드 타는 거 구경하러요. 저번에 다쳐서 당분간 타는 건 금지당했어요"

아이가 까진 턱을 들어 보였다.

"근데 왜 이쪽으로 가? 보드장은 바로 저 아랜데"

"저긴 계단이라 경사로 있는 데로 돌아가야 해요"

"저번에 단지 내 계단 경사로 붙여서 싹 리모델링하지 않았어?"

"네, 그런데 저긴 예외. 장애인은 보드 탈 리 없다고 생각했나 보죠 뭐"

또 남의 일처럼 어깨를 들어 보이는 아이에게 공주는 희망을 주기 위해 말했다. 자신의 존재가 아이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 수도 있으니까.

"너도 언젠간 다리를 갖게 될 거야"

그 말에 아이는 또 그런가요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저는 다리 말고 공주님처럼 꼬리가 있으면 좋겠어요. 심해에 가보고 싶거든요"


수술 전 인터뷰를 위해 여러 방송사에서 공주의 병실을 찾아왔다. 전형적이고 지루한 인터뷰였지만 공주는 끝까지 웃음을 잃지 않고 인터뷰를 진행했다.

"심정이 어떠신가요?"

"떨리네요"

"공주님을 보시고 희망을 얻을 시민들을 위해 한 말씀해주신다면요?"

공주가 망설이자 기자가 질문을 바꿨다.

"정상적인 다리를 얻게 되면 가장 먼저 무얼 하고 싶으신가요?"

다시 "글쎄요"라며 말 끝을 흐리자 마주 앉은 기자의 얼굴에서 답답함이 드러났다. 공주에게서 원하는 답을 이끌어내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했다. 하지만 공주는 기자가 원하는 답을 해줄 수 없었다. 도시에 오기로 결심했을 때 인간의 다리를 원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화려한 도시에서 인간과 섞여 살고 싶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인우와 자신의 모습을 안쓰럽게 보는 시선들이 따라붙기 시작했다. 낑낑대며 자신을 들어 올리는 인우 이마에 맺힌 땀과, 손을 잡고 걷지 못하고 늘 자신의 등 뒤에 있는 인우를 의식하기 시작했다.

"공주야, 나는 이대로 행복한데 왜 그래"

괴로워 꼬리를 찢는 자신에게 그렇게 말하는 인우의 얼굴에서 본 슬픔은 내 것이었던가.


"현대 과학의 수혜자시잖아요, 앞으로 과학 기술이 공주님과 같은 분들에게 큰 희망이 될 것 같네요. 다음번에 만날 때는 일반인과 동등하게 걸으실 공주님의 당당한 모습이 기대됩니다"

"자, 공주님을 위해 팬들이 준비했어요"

병실 밖에서 사람들의 환호성이 들렸다. 간호사가 들고 오는 케이크 위에 매끈한 두 다리로 서 있는 인어 공주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케이크 하단을 빙 둘러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바닷속 풍경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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