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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나 Feb 07. 2022

하하, 우리가 언제 이렇게 됐을까

지금은 딸아이의 엄마가 된 이해는 나랑 동갑이고 한때는 내 직장 사수이자 2년 선배였다.

지금도 그때도 내가 기억하는 한 지난 10년간 실업률은 늘 아슬아슬 사람들의 불안의 한계점을 넘어섰다 내려섰다 했고 취업 문은 바늘구멍이었으나 친구들이 옆에서 하나씩 그 구멍을 통과할 때면 남아있던 나는 불안했었다. 뒤늦게(생각해보면 뒤늦은 취업도 아니었는데) 합격 통보가 왔을 때 그 기쁨은 어떤 회사에 취직했냐는 기쁨보다는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일종의 믿는 구석이 생긴 안도감과 한 달 후부터 크든 적든 통장에 찍히게 될 월급에 대한 기대감이었다.

회사에 들어가 첫날 이해를 소개받았다. 안녕하세요라며 돌아본 그녀 얼굴엔 깊게 깔린 다크서클이 눈 밑을 지나 광대 밑까지 지나왔으며 수척해 보이는 얼굴과는 반대로 피부에선 윤기가 넘쳤으니 나랑 비슷한 또래구나 알 수 있었다. 도서관에서도 보지 못 했던 커다란 파일이 책상 밑에 빼곡히 쌓여있고 원단이며 지퍼가 책상의 빈 공간에 틈틈이 꽂혀있던 아수라장 같은 책상 위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이해의 작업환경을 보면 내가 어떤 회사에 들어왔는지 가늠할 수 있었으나 첫 직장, 첫 사회생활, 생존이 걸린 내게 일의 강도나 작업 환경 따윈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여기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걱정이 무색하게 동료들은 너무 좋은 사람들이었고 일은 고되지만 사회생활이 이렇게 재밌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마음에 맞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듯 우리는 다 뿔뿔이 흩어졌다. 나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한국을 떠나고 싶었고, 이해는 마침내 더 큰 회사로 이직을 했으며 다른 친구와 선배들도 제각각 갈 길을 떠났다. 그러다 우리가 다시 제각각 소식을 전해온 건 아이 소식이었다.


그러다 아이를 낳고도 쉬지 않고 달려온 이해가 드디어 쉼표를 찍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혼자 음악을 듣고 카페에 가서 책을 읽고, 가끔 여유롭게 호캉스를 즐기는 그런 쉼표는 아이가 있는 엄마에게 엄두도 나지 않는 일이지만 그래도 스타카토같은 쉼표도 숨구멍이 된다. 이해에게는 더 그랬을 것이다.

주말에 우리 집에 와 아이에게 밥 한 숟가락 더 먹이기 위해 한 톤 높인 목소리로 책을 열 권 이상 읽던 이해의 성대가 오늘 밤 나가지 않을까 아슬아슬했고, 좁은 집이라 중간중간 누군가 앉아 아이들이 다칠까 장난감 정리도 해야 했고, 하나가 아이들 밥을 하고 정리를 하면 하나는 아이들을 전담하게 되는데 엄마가 되고 보니 인수인계 따위가 없어도 손발이 척척 맞았다.


우리가 언제 이렇게 됐지.

그러게. 하면서 웃는 이해와 내가 몇 년 전에는 직장에서 선 후배로 만났다는 사실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그러게, 우리가 언제 이렇게 됐을까.


이제 우리는 주말에 아이와 함께 만난다. 아직 데면한 아이 둘을 친하게 해 주려고 답지 않은 목소리를 내며 상황극도 하고 놀이 중 다치지 않을까 중간중간 장난감 정리도 해야 하고, 아이들의 식사를 챙기고 나면 2차로 주린 우리의 배도 채워줘야 하고 그렇게 한차례 밥 타임이 지나가고 나면 쉴까 해도 한 명이 울기도 하고 연쇄 반응처럼 다른 아이도 쫓아 울기도 하는 그런 상황은 어김없이 오고. 함께 하는 육아가 체력적으로 결코 덜 힘든 것도 아닌 데 어린 나이 때는 친구도 엄마가 부지런해야 만들어 줄 수 있는 것이라 휴식인지 노동인지 모를 주말을 폭풍처럼 보내고 만다. 

그리고 또 보자며 다음을 기약하고야 만다. 우리 잘하고 있는 걸까, 잘하고 있어, 라고 서로가 존재로서 주는 위로 덕분에 말이다.


세상에서 튕겨 나온 기분이 들었다가도 혼자가 아니라는 기분은 솜이불처럼 포근하고 묵직한 위로가 된다.

함께 나이 들어가는 친구가 있다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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