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매와 남매사이_2

by AZ


어릴 땐 대부분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유독 어둠을 무서워했다.


상상력이 풍부해서였을까,

방에 불이 꺼지면 온갖 생각들이 나를 덮쳐와

커진 동공을 이리저리 굴리고 심장은 빠르게 뛰었다.


나는 한 번도 나 혼자만의 방을 가져본 적이 없다.

그런데 나는 그걸 무척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혹시나 언니가 나랑 방을 같이 쓰고 싶지 않다고 하면 어쩌나 걱정까지 했었으니까.


큰 침대에 언니랑 같이 누워 자는 게

그나마 안심이 되었다.


언니는 누우면 곧잘 잠에 드는 편이었는데,

난 어릴 때에도 누우면 한참을 뒤척여야 잠에 들었다.


문제는 또 있었다.

언니는 불을 완전히 꺼야 잠을 잤고,

나는 불을 완전히 끄면 무서워서 잠에 들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언니가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언니가 잠들면 얼른 간접등이나 책상 위의 스탠드 조명을 켜고 자곤 했다.


그런데 언니는 그 불빛 때문에 자다가 중간에 깬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나는 잠에 들기만 하면 중간에 잘 깨지는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협상을 봤다.


불을 완전히 끄고 자는 대신에

언니랑 손을 꼭 잡고 자기로 했다.


설사 언니가 먼저 잠에 들더라도 내가 너무 무서우면 언니와 맞잡은 손을 꼭 쥐었다 펴라고.

그러면 언니가 안심하라는 의미로 손을 다시 쥐었다 펴준다고 했다.


생각보다 만족스러웠다.

불을 완전히 끄고 천장을 보고 눕는 게 여전히 무섭긴 했지만

무서울 때마다 언니와 맞잡은 손을 꼭 쥐었다 펴면

마치 언니가 ‘응 언니 안자, 언니 여기 있어’라고 대답이라도 하듯이 내 손을 똑같이 잡아주며 반응해 줬다.


그게 생각보다 무척 안정감이 들고 위안이 되었다.

혼자가 아니다, 무섭지 않다.

그 어떤 말보다 따뜻한 위안이었던 것 같다.


우리는 그렇게 내가 중학교를 다닐 때까지도 손을 꼭 잡고 잤다. 사실 언니가 나에게 손을 잡혀있는 형상이긴 했다.

(고등학교 때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물론 그게 항상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유독 무서운 날들이 종종 있었는데, 그럴 땐 내가 수시로 언니 손을 움켜쥐었고 언니는 잠들었다 깼다를 반복하다가 내게 짜증을 내는 날도 더러 있었다.


‘제발 좀 자,’ ‘대체 언제 잠들 거야,‘ ’잠 좀 자자‘ 등등

그래도 언니가 착해서 손은 계속 잡아주었다..


종종 혼자 자야 하는 날이 오면

나는 간접등이 아닌 방 전체 불을 환하게 켜놓고 잤다.

그때는 그래야 겨우 잠에 들 수 있었다.

어둠 속에 혼자 누워있는 건 죽을 만큼 싫었던 어린 시절의 나였다.



하지만 지금은 나도 불을 완전히 끈 상태에서 잠에 들고, 가끔은 아주 작은 불빛조차도 신경 쓰여 안대를 끼고 자야 할 때도 있다.


그런데 가끔, 정말 드물지만

무서운 걸 봤거나 무서운 이야기를 들었거나 하는 날에는 여전히 불을 끄지 못하는데,

차마 끄지 못한 불빛때문에 잠에 더 들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에


그런 날엔 그냥 밤을 새워버리기도 한다.


-


언니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어릴 때 추억이 하나 더 있다.


나와 동생이 초등학교 저학년, 언니가 고학년일 때 이야기이다.


나와 동생은 연년생이라 잘 붙어 다니고 자주 같이 놀았다.

그런데 언니는 우리와 나이차가 더 나다 보니

항상 언니 또래의 친구들과 더 자주 놀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나랑 동생은 언니랑도 놀고 싶어 했던 것 같다.


초등학생 때는 복도식 아파트에 살았는데

그때는 문도 다 열어 놓고 살고 복도에 돗자리를 깔고 이웃집 또래 아이와 놀기도 하고 그랬다.


그날도 복도에서 놀다가 문득 언니가 없어서

언니를 찾으러 다녔던 것 같다.

동생이랑 집안도 찾아보고 다른 쪽 복도도 가보고

이리저리 분주하게 찾다가 문득 바깥쪽을 내다봤는데

언니가 친구들과 주차장을 걸어가고 있었다.


나랑 동생은 언니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어 저기 있다!!!!’ 소리를 질렀다.

언니가 친구들과 꺅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는 게 아닌가

우리는 또 놓칠 수 없다며 부리나케 언니와 친구들을 쫓아갔다.


지금 생각하면 나와 동생이 눈치가 없었던 것 같다.

언니가 친구들이랑만 놀고 싶을 때도 있었을 텐데,

언니 친구들도 우리랑 노는 걸 좋아한다고만 생각했다.


아마.. 좋았던 건 아니고 놀아준 것이었을 테지.

그만 놀아주고 자기들끼리 놀고 싶어서 도망갔을 텐데

우리는 또 그게 재미있다고 마치 숨바꼭질하듯이

언니들을 찾아다니고 쫓아다녔다.


언니는 그때 친구들을 아직도 종종 만나는데

나는 그 언니들을 보면 여전히 반갑다.


-


나랑 언니는 누가 봐도 자매라고 생각할 정도로 많이 닮았는데 심지어 목소리도 닮았다고 한다.


여전히 핸드폰이 없던 시절,

한 번은 집에 걸려 온 전화를 내가 받은 적이 있다.


- 여보세요?

- 뭐야, 너 왜 아직도 집에 있어!! 빨리 나와~~


받자마자 상대방이 대뜸 내게 화를 내는 게 아닌가.

순간 뭐지? 내가 잊은 약속이 있었나? 싶었다.

그런데 상대방 목소리가 조금 낯설었다.

내 친구는 아닌 것 같은데 누구지?


저.... 누구세요?

하고 물었다.

잠깐동안 정적이 흘렀다.

상대방이 잠시 고장 난 듯한 느낌으로 어버버거리더니


어머 너 ㅇㅇ아니구나?

하고 크게 웃었다. 나를 언니로 착각했던 모양이다.

나랑 언니 목소리가 그렇게 똑같은가? 하고 생각했다.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내가 아는 내 목소리와 남이 듣는 내 목소리가 다르다는 걸.

내 목소리가 언니 목소리와 상당히 유사하다는 걸.


나도 따라 웃었다. 그리고 언니는 집에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전화를 끊었다.


이후에도 그런 경험이 여러 번 있었으나

그 이후엔 당황하지 않았다.

이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저 누구입니다’하고 이야기하고 서로 한번 웃고 끊으면 되는 일이었다.


핸드폰이 생기고서는 서로의 전화를 받을 일이 없으니 이젠 그런 에피소드는 더 이상 생기지 않지만

덕분에 즐거운 추억이 하나 더 생겼던 것 같다.



우리 언니는 전형적인 첫째 딸이라

책임감이 강하고 든든한 딸인 것 같다.

물론, 괴짜 같은 면도 있고 이상하고 집요한 방식으로 우릴 괴롭히며 즐기기도 하지만,

나는 언니처럼 부모님이 의지하는 딸은 못 되는 것 같아서 한편으로는 언니가 존경스럽다.


그래서 언니가 없는 삶은 생각하기 어렵다.

언니가 내 언니로 있어줘서 항상 감사하게 생각한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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