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후반에서야 부모님과 함께 산다는 것.
막연했다.
그저 부모님과 더 많이 마주하는 것, 사실 그것 말고는 크게 고려하지 않았던 것 같다.
막상 부모님 집에 들어와 살기 시작하니 ‘신혼부부가 이런 느낌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가장 처음 부딪힌 것은 어이없게도 빨래였다.
나는 옷을 빨 때 흰 옷, 흰 옷이 아닌 옷, 양말, 속옷, 수건 이렇게 5가지로 분류를 해서 빨아왔다.
우리 엄마는.... 그냥 한꺼번에 세탁기에 넣고 돌린다.
(엄마 말대로 내가 유난인 것일 수도 있지만 어쩌겠는가)
그래서 내 방에 빨래 바구니를 따로 두고 내 옷은 내가 빨고 있지만, 엄마는 그게 답답하신 모양이다.
간혹 내가 퇴근하고 집에 오면 내 빨래 바구니가 비워져 있는 것을 보곤 한다.
나 혼자만의 빨래라서 양이 많지 않아 빨래의 텀이 조금 길어지는 것인데
엄마의 눈에는 그저 얼른 치워야 할 집안일인가 보다.
이건 어느 정도 타협을 보았다.
나도 어느 정도 내려놓았고, 엄마도 최대한 내 빨래는 손대지 않기로.
(그렇지만 거의 8개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내 빨래 바구니는 나 몰래 비워지곤 한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화장실이다.
나 혼자 살 때는 생각하지 않아도 되고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던, 좌변기 뚜껑 닫은 후 물 내리기다.
이 부분은 여전히 신경 쓰고 있는 부분이긴 하다.
가족이긴 하지만, 따로 살아온 날이 적지 않으니
앞으로 또 함께 살아가며 조금씩 맞추면 되지 않을까.
모든 날이 화목하기만 하고, 즐거울 순 없는 것이었다.
나는 엄마 아빠가 아니고, 엄마 아빠도 내가 아니니,
내가 살아온 세월은 부모님이 살아온 세상과 다르니,
(일례로, 엄마는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는데도 어린 시절에 수돗물이 나오지 않는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고 한다.
물을 배달(?)해주는 트럭이 오면 물을 받아다 집에 놓고 썼고, 빨래는 빨래터에 가서 빨래를 했다고.
어쩌면 아끼는 것이 당연한.
아빠는 지방에서 자랐는데 집에 우물이 있었다고 한다)
조금만 생각해 봐도, 우리는 같이 살고 있지만 모두가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랐다.
서로가 그 차이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각자의 취향은 그저 묵묵히 존중하며
가끔 생기는 불협화음 같은 불편함을 이겨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함께 살기로 하는 것.
함께 살고자 하는 것.
그게 가족인 게 아닐까.
그래서
나는 부모님과 함께 사는 것에 만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