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by AZ


생각해 보면

나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다.


나는 운이 좋아 사지가 멀쩡하고 건강하게 태어났으며,

운이 좋아 부모님과 형제들이 있었고,

운이 좋아 전쟁 없는 대한민국에 태어났다.


평범함의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밥 굶지 않고 크게 아프지도, 다치지도 않고, 가족 간에 큰 불화 없이 이만큼 자란 것이

운이 좋은 게 아니면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물론 어릴 땐 내가 운이 좋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뭔가 더 하고 싶고 더 갖고 싶었던 것 같다.


어느 날 침대에 누워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었다.

잠은 오지 않고 이상하게 정신이 또렷해지면서 청력이 좋아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밖은 비가 오고 있었고 비교적 고요했기에

빗소리와 가끔씩 위 층에서 들리는 소리만 들렸는데


순간 눈에 보이는 천장이

왜일까

감사하게 느껴졌다.


비를 막아주는 지붕이 있음에,

이걸 그냥 제공해 주는 부모님께,

내가 누울 수 있는 침대가 있다는 것에,

그리고 또렷한 정신으로 이 모든 걸 느낄 수 있음에

모든 게 감사하게 느껴졌다.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했지만,

사실 세상에 당연하게 주어지는 건 하나도 없기에.


14살이 되도록 건강하게 내 옆을 지켜주며

마음에 위안과 행복을 주는 고양이까지도.


나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감사한다.


언제든 잃을 수 있는 것들이기에

현재를 더 소중히 해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부모님이 나이가 들며 여기저기 아프고

가야 하는 장례식이 하나둘 생기면서 나도 마음의 준비를 해보기도 한다.


가장 상상하고 싶지 않고 마음의 준비가 안 되는 것은

부모님이 돌아가신다는 것, 고양이를 보내줘야 한다는 것. 현재로선, 이 두 가지다.

아마도 견디기 힘든 어마어마한 슬픔이겠지.


외삼촌이 거의 시한부 선고를 받으셨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고 약도 없다고 한다.

두 가지 큰 병이 함께 왔다.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는데.. 머리를 깨끗하게 정리하고 삐쩍 마른 모습을 보니 마음이 너무 아프다.


우리는 친척들끼리 왕래가 많고

특히 어릴 때 더 자주 만나고 놀러 다녀서

외삼촌하고의 추억도 많다.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

상상을 하려고만 해도 눈물이 난다.

외삼촌이 없는 외갓집이라는 게.

사촌오빠들 마음은 헤아려지지도 않는다.

감히 연락도 하지 못할 수준으로.

오지 않았으면.. 최대한 늦게 왔으면 한다.



최근 엄마가 수술을 받으셨다.

수술실 앞에는 수술 현황을 알리는 전광판이 있다.


’나이:6살, 수술 중, (시작)시간: 오전 8시‘

그때 시간이 오후 1시 반이 넘었다.

가장 어린 6살 아이부터 10대, 20대도 많았다.


그걸 보면서 내가 어떤 불평불만을 하며 살 수 있을까.


병원 카페에 커피를 사러 갔는데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이는 아기가 링거를 꽂은 상태로 유모차에 타고 있었다.


세상에 정말 당연한 건 아무것도 없다.


완벽하지않고 남들에게 크게 자랑할 거 없는 삶이라도

멀쩡히 숨 쉬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미래를 꿈꾼다는 것,

일 할 수 있다는 것,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는 것 모두.


이 삶이 무너지는 순간이 오더라도

다시 이 글을 읽으며

내가 잃은 것보다

그 순간에 당연하지 않은 것들을 떠올릴 수 있기를..


그래서 너무 오래 슬퍼하고 괴로워하지 않을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