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않은 고통
정상적인 세포는 손상되거나 불필요할 경우 프로그램된 세포사멸(apoptosis)을 통해 스스로 죽습니다. 그러나 암세포는 이를 회피하는 메커니즘을 발달시킵니다. 보통의 대장세포(대장 상피세포)는 약 4일에서 7일 정도 살아가죠. 이들의 생로병사는 무척 빠릅니다. 따라서 대장세포는 빠르게 재생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빠른 생로병사의 과정은 대장의 건강을 유지하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대장세포의 순환이 빠른 것은 그만큼 대장세포의 손상이 많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대장세포는 수많은 음식물들을 소화 흡수하느라 매일 죽음을 무릅쓰고 전쟁을 치릅니다. 예전에는 대장균들이 대장세포들을 도와 외부 독성물질로부터 세포들을 지켜주었지만 지금은 너무나 많은 식품첨가물, 방부제등으로 대장균들의 씨가 말라버렸습니다. 지금의 대장세포들은 온몸으로 적을 상대해야 합니다. 매일매일 새로운 세포들이 빈자리를 채우지만 아군의 병력 손실이 너무나도 큽니다. 이제는 특단의 조치로 부상당한 세포들도 투입되면서 끊임없이 세포분열을 해야 하는 상황으로 몰렸습니다. 생/사의 선순환 시스템은 이미 붕괴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은 염증을 만들고 만성 염증의 상태가 지속되면 암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암세포는 번아웃 상태로 가면서 세포사멸 시스템이 붕괴되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세포가 죽을 권리를 빼앗긴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정상적인 세포는 죽을 수 있는 세포인 반면에 암세포는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세포인 것입니다.
여기에서 질문이 있습니다. 그러면 죽는다는 것은 선한 것이고 죽지 않는다는 것은 악한 것인가요? 세포의 세계에서 볼 때 죽음은 선한 것이고 죽지 않는 것은 악한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죽음에 대한 철학적인 고찰을 다시 해봐야만 합니다. 인간은 영생을 바라고 있습니다. 신은 불멸의 존재라고 믿고 있죠. 하지만 신을 포함한 우주전체가 태어나고 죽을 지언데 어찌하여 일개 신이 불멸일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주가 사라져도 신은 존재할 수 있나요? 신이 스스로 모범을 보여 생사의 법칙을 지켜야 하지 않을까요? 나의 세포들이 신이라고 생각하는 나 역시도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세포의 삶에서는 죽어야만 삶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죽지 않는다는 것은 모두를 파멸에 밀어 넣는 행위입니다. 인간의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 개개인은 살고 죽는 것이 개인의 시작과 끝이고 이 우주에서 잠시 나투어 졌다가 소멸하는 것에 불과 하지만 인간이라는 종의 관점에서 보면 개개인이 죽고 사는 덕택에 인류가 소멸하지 않고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죽지 않는다는 것은 DNA가 지속적으로 손상되어 궁극에는 인류가 멸종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인간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우주에 적응하면서 오랫동안 잘 생존하기 위해서는 죽음이라는 과정을 통해 자연에 보다 잘 적응하는 새롭고 건강한 DNA를 후손에 물려주어 인간의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암세포의 "영생" 특성은 인간 생명과 죽음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불러일으킵니다. 암세포의 불멸성은 "생명"이라는 개념이 단순히 세포 수준에서의 지속적인 분열로 정의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킵니다. 사실 생명을 유지한다는 것은 세포분열을 지속할 수 있는가를 의미합니다. 보통의 세포는 세포분열의 한계가 있습니다. 즉 세포마다 분열할 수 있는 횟수의 한계가 있어서 인간의 수명이 유한한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암세포는 자신이 속한 생명체(인간이나 동물)의 생존을 위협하면서 "불멸"하려고 합니다. 이는 생명과 죽음의 상호작용과 모순된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텔로미어와 텔로머라제 활성화: 정상 세포는 텔로미어(telomere)가 짧아짐에 따라 분열이 멈추고 세포 노화(세포 자살, apoptosis)가 일어납니다. 그러나 암세포는 텔로머라제(telomerase)라는 효소를 활성화하여 텔로미어를 지속적으로 복구하며, 무한히 분열할 수 있습니다.
세포 자살 회피: 정상 세포는 DNA 손상이나 이상이 발생하면 스스로 죽는 메커니즘(세포 자살)을 가지고 있습니다. 암세포는 이러한 자살 신호를 차단하거나 무효화함으로써 계속 생존합니다.
성장 신호의 무제한 활성화: 암세포는 세포 분열과 증식을 조절하는 신호 경로를 지속적으로 활성화합니다. 이를 통해 세포 분열을 멈추게 하는 외부 신호를 무시하고 증식을 계속합니다.
영양분 공급 확보: 암세포는 혈관신생(angiogenesis)을 통해 주변 혈관을 새로 형성하여 자신에게 필요한 산소와 영양분을 지속적으로 공급받습니다.
면역 시스템 회피: 암세포는 면역 시스템의 감시를 회피하거나 억제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 파괴되지 않고 증식할 수 있습니다.
암세포는 이론적으로 영원히 증식할 수 있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실험실에서 사용되는 많은 암세포들이 있지만 가장 먼저 암세포로 추출하여 실험실에서 연구용으로 가장 오래 사용 중인 HeLa Cell 이 있습니다. 암의 불멸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HeLa Cell의 경우입니다. 헬라 세포(HeLa cells)는 1951년 자궁경부암 환자 헨리에타 랙스(Henrietta Lacks)의 암 조직에서 추출된 세포주로, 불멸성을 지닌 대표적인 암세포로 알려져 있습니다. 헬라 세포는 현재까지 70여 년간 실험실에서 지속적으로 배양되고 전 세계로 퍼져 암을 비롯한 생명과학 연구에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불멸의 암세포는 무한 증식이 가능하여 실험실이라는 특별한 환경 내에서 영생을 이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Henrietta Lacks | Her Impact and Our Outreach - YouTube
HeLa 세포는 얼마나 오래 키울 수 있나요?
이론적으로 영구적입니다. HeLa 세포는 텔로머레이스 효소가 활성화되어 있어 텔로미어가 짧아지지 않고, 세포가 노화(Senescence) 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적절한 배양 조건(영양분, 온도, CO₂ 농도 등)이 유지된다면 무제한적으로 분열할 수 있습니다. 잘 관리된 HeLa 세포주는 수십 년 이상 유지되며, 현재까지 전 세계 실험실에서 70년 이상 사용되고 있습니다.
HeLa 세포의 분열 속도는 매우 빠릅니다. 세포주를 적절히 관리하면 24~48시간 주기로 분열할 수 있습니다. HeLa 세포는 단 한 번의 Split에서 수백만 개의 세포로 증식이 가능합니다. 현재 HeLa 세포는 연구 목적으로 세계 곳곳으로 보내졌으며, 다양한 실험실에서 분열과 Split이 계속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일부 연구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에 존재하는 HeLa 세포의 총무게는 원래 헨리에타 랙스의 몸무게를 훨씬 초과했다고 추정됩니다.
현대인들은 아마도 인류 역사상 가장 위험한 인간들로 기록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왜냐하면 인류를 파멸로 몰아넣을 수 있는 암과 수명연장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으니까요.
인간은 어느 정도 수명연장에 성공하겠죠 하지만 그다음이 문제입니다. 인간은 더 많은 수명연장을 요구하고 그리고 또 더 많은 수명연장을 요구하게 될 것입니다. 인간의 탐욕을 제어하지 못하는 이상 인간의 수명연장은 양날의 칼이 될 것입니다.
만일 영원히 살아가는 것이 과학적으로 가능하다면, 자원을 독점하려는 세력이나 계층이 생기면서 사회적 불평등이 더욱 심화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죽지 않는 것이 특정 계층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 된다면, 이는 큰 사회적 갈등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죽음이 없는 삶은 처음에는 매력적일 수 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감정적이고 정신적인 피로가 쌓일 수 있습니다. 사랑, 상실, 갈등 등 감정의 복잡성이 계속 쌓이면서 감정적으로 소진될 수 있습니다. 또한,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반복되는 사건들에 대해 무감각해지거나, 일종의 정서적 냉담함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또한 수명이 연장되어 오래 살게 된다면,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과 사람들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유지할지에 대한 문제도 생길 수 있습니다. 수백 년을 살아가며 경험하는 것들이 너무 많아지면, 기억의 한계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진정한 영생은 죽음으로부터 얻어집니다. 만약 인간이 죽지 않는다면, 태어남도 발생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다음의 죽음에 대한 동-서양의 표현을 보고 동양과 서양의 죽음에 대한 생각이 어떻게 다른지 알아보겠습니다.
Death (죽음)
가장 일반적인 단어로, 생물학적 또는 존재론적 죽음을 의미합니다.
Demise (권리양도, 소멸)
주로 공식적이고 정중한 맥락에서 사용되며, 개인의 죽음을 표현할 때 쓰입니다.
Passing (가다)
죽음을 완곡하게 표현하는 단어로, 종종 종교적 맥락이나 애도의 자리에서 사용됩니다.
Expiration (만료되다)
생명이 끝남을 의미하며, 문학적 또는 의학적 맥락에서 사용되기도 합니다.
Eternal Rest (영원한 안식)
종교적 표현으로, 죽음을 '영원한 안식'으로 묘사하는 말입니다.
Departure (떠나다)
'떠남'이라는 비유적인 표현으로, 영혼이 세상을 떠난다는 의미로 쓰입니다.
Loss (상실)
남아 있는 사람들이 누군가의 죽음을 경험했다는 뜻으로 사용됩니다.
Mortality (죽음을 면치 못할 운명)
인간이 필연적으로 죽음을 맞이한다는 보편적인 개념을 나타냅니다.
Oblivion (망각)
철학적 또는 문학적으로 사용되며, 존재의 완전한 소멸을 암시합니다.
Grim Reaper (죽음의 신: 해골 모습에 긴 망토를 걸치고 큰 낫을 든 가상적 존재)
의인화된 죽음의 상징으로, 서양 신화와 문화에서 죽음을 대변하는 존재입니다.
다음에는 동양에서 죽음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사(死)
가장 기본적인 표현으로, 생명의 끝을 의미합니다.
사망(死亡)
공식적이고 객관적인 죽음의 표현으로, 주로 문서나 보고서에서 사용됩니다.
'자연인(自然人)이 생명(生命)을 잃음. 법률상(法律上) 자연인(自然人)이 인격(人格) 곧, 일반적(一般的) 권리(權利) 및 능력(能力)을 상실(喪失)하고 재산적(財產的) 권리(權利) 의무(義務)의 상속(相續)이 시작(始作)된다.' -네이버 한자사전
별세(別世)
세상을 떠난다는 뜻으로, 존경을 담은 완곡한 표현입니다.
영면(永眠)
'영원히 잠들다'라는 뜻으로, 죽음을 평화롭게 묘사하는 표현입니다.
타계(他界)
'다른 세계로 떠나다'라는 뜻으로, 죽음을 높여 표현할 때 사용됩니다.
‘인간계(人間界)를 떠나서 다른 세계(世界)로 간다' -네이버 한자사전
승천(昇天)
승천은 단순히 "하늘로 올라감"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종교, 철학, 문학에서 영혼의 초월, 죽음의 고귀함, 신성한 경지로의 도달을 표현하는 상징적이고 강렬한 개념으로 사용됩니다.
귀천(歸天)
'하늘로 돌아가다'라는 뜻으로, 종교적 또는 철학적 맥락에서 쓰입니다.
해탈(解脫)
불교에서 사용되는 용어로, 생사의 고통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짐을 뜻합니다.
입적(入寂)
불교에서 스님이 죽음을 맞이했을 때 사용하는 표현으로, '고요함에 들어간다'는 의미입니다.
소천(召天)
기독교적 표현으로, 하나님께 부름 받아 하늘로 간다는 뜻입니다.
멸도(滅度)
불교에서 열반에 들며 생사의 윤회를 끊는 것을 의미합니다.
낙화(落花)
문학적으로 죽음을 꽃잎이 지는 것으로 비유한 표현입니다.
떠나다
누군가가 이 세상을 떠났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일반적인 비유적 표현입니다.
가다
죽음을 직설적으로 표현하기보다는 완곡하게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눈을 감다
육체적 삶이 끝났다는 뜻을 담은 표현입니다.
숨을 거두다
생명의 마지막 순간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환생(還生)
불교와 유교에서는 죽음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생의 시작이라는 윤회의 개념을 담습니다.
천도(遷度)
불교에서 죽은 영혼이 새로운 세계로 옮겨가는 것을 뜻합니다.
대체적으로 죽음에 대한 표현은 동서양이 큰 차이가 없습니다. 다만 종교적으로 불교나 힌두교에서는 신자들의 죽음에 대한 공포를 벗어나게 해 주려는 목적으로 해탈, 환생, 윤회와 같은 개념을 도입했고 또한 기독교에서는 소천(召天)이라는 말과 같이 하늘의 부름을 받는다, 즉 천당이라는 개념을 사용합니다.
하지만 이글에서는 인류의 영생이라는 관점에서 죽음을 고찰하기를 원하므로 영어의 mortal-immortal의 관점으로 죽음의 의미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Mortal: 필멸의 (죽음을 피할 수 없는), 라틴어 mors 또는 mortis(죽음)에서 유래했으며, 죽음 또는 죽음과 관련된 상태를 표현합니다.
Immortal: 불멸의, 죽지 않는, 라틴어 immortalis에서 유래하며, "im-"(not, 부정)와 "mortalis"(죽음의, 필멸의)가 결합된 형태로 "죽지 않는"을 의미합니다.
인간 개개인은 끊임없이 삶과 죽음을 반복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삶과 죽음을 반복함으로써 인류는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는 인간만 그런 것이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들이 채택하고 있는 생존 전략입니다. 우리 몸속의 세포들이 끊임없이 태어나고 죽는 것을 반복함으로써 나의 생명이 유지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세계에서는 인간들이 끊임없이 태어나고 죽는 것을 반복해야 인간이라는 종을 유지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법칙은 단지 생명체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주의 모든 만물은 탄생과 소멸을 반복하며 우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가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별들도 수명이 있고 이들도 끊임없이 탄생하고 소멸합니다.
그러니까 죽음 없이는 탄생도 없고 탄생 없이는 죽음도 없는 것입니다. 우주 자체도 빅뱅으로 탄생했고 언젠가는 소멸될 것입니다.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탄생과 소멸을 반복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죽지 않고 오래 사는 것을 바랍니다. 중원을 통일한 진시황은 영생을 얻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죠, 특히 그 자신이 수많은 죽음의 원흉으로 죽음을 두려워한 진시황은 서복 등을 보내어 불로초를 찾게 하였고, 수은과 같은 금속들을 몸에 좋다고 믿어 과다 섭취하며 스스로 건강을 악화시켰습니다. 그가 자연에 순응하여 그의 천명에 따랐다면 15년 만에 그의 왕조를 단명시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또한 전대미문의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현대인들 또한 현대의 불로초를 찾기 위해 혈안입니다. 진시황의 부와 권력이 우스울 정도로 막강한 부와 권력을 누리는 전 세계의 부자들 입장에서는 현대의 불로초가 절실할 것입니다.
과연 현대인들 중에 자연의 순환에 맡겨 가족들 품에서 인간의 존엄을 지키며 자연스럽게 죽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현대의학의 발달로 인간은 인위적으로 생명을 연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삶의 질을 생각해 볼 때, 병원에서 온갖 튜브를 꽂고 대화도 하지 못하는 상태로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불교에서 죽음은 해탈로 가는 길이고, 또 기독교에서는 천당으로 간다고 하지 않나요? 그러면 죽음을 행복하게 받아들여야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죽음은 두렵고 피하고 싶은 공포로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병원에서 하루라도 더 살려고 연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죽음은 인간의 존엄은 사라진채 육체의 죽음만 판단하는 의사의 사망선고로 삶이 끝나고 말죠.
이러한 현대인들의 부응에 맞춰 구글과 같은 초 거대 기업들은 너도나도 바이오산업에 뛰어들고 있고 인간 수명 연장을 위해 엄청난 돈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도한 인간의 수명연장은 인간의 멸종을 가져올 만큼 위험한 일이라는 것도 알아야만 합니다. 인간의 수명연장은 엄청난 자본을 투자한다고 해서 되는 자본주의 논리로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히드라는 32개의 염색체를 가지고 유성생식과 무성생식을 모두 하며 영양상태와 환경이 좋을 때는 무성생식을 합니다. 무성생식의 방법은 출아법인데 어미의 몸에서 새끼가 자라나면서 떨어져 나오는 생식법으로 산호와 말미잘도 출아법 생식을 합니다.
무성생식법은 히드라의 원래 유전자를 변형하지 않고 계속해서 같은 유전자로 번식을 한다는 의미입니다. 먹이가 풍부하고 변하지 않는 일정한 환경인 경우 이 방법이 히드라의 개체수를 늘리는 데 최적이지만 환경이 변하는 경우 동일한 유전자로 지속하는 것은 멸종의 위험이 있습니다. 따라서 필요에 따라 유성생식이 필요합니다. 유성생식의 경우에는 더 뛰어나고 환경에 적응하는 유전자를 선택해서 생존확률을 높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무성생식을 할 여건이 되지 않으면 유성생식을 하는데 겨울이 다 되어서 유성생식으로 알을 낳으면 알 상태로 겨울을 납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전설상의 히드라는 목을 자르면 2개의 머리가 되는 반면 이 히드라는 몸을 자르면 2마리의 히드라가 됩니다. 그만큼 재생능력이 탁월합니다. 히드라의 몸길이는 대략 5~10mm 사이인데 재생가능한 최소 크기는 약 0.2mm로, 이 정도의 크기 만으로도 원래의 히드라 복제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사람으로 치면 손의 일부만 잘려나가도 잘려간 부위가 원래 사람의 모습과 똑같이 복제된다는 것이죠, 물론 손이 잘려나간 사람은 그 손을 복구하면서 말이죠.
그리고 히드라는 성체가 된 이후로 노화가 멈춥니다. 히드라는 5~10일 만에 성체가 되는데 성체가 된 이후 무려 4년간 생존한 케이스가 관찰되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노화가 멈춘다는 것은 세포 자체가 노화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히드라는 세포를 생산하는 줄기세포가 풍부하여 지속적으로 젊은 세포를 생산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늙지 않고 젊음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포분열을 계속하면 DNA복제에 오류가 생기기 마련인데, 히드라의 경우는 DNA 오류를 복구하는 능력이 탁월해서 오랜 시간 동안 노화되지 않고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이 오래 살려면 모든 장기의 줄기세포가 활성화되어서 손상된 장기를 복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DNA의 복제 오류를 복구하는 능력이 탁월해야 합니다.
DNA의 복구를 위해서는 정기적으로 명상, 요가 등을 하고 또는 Fasting과 휴식을 주어 DNA 오류를 찾아내고 복구하는 기간을 가져야만 합니다. 한국인들의 휴식은 휴식이 아닙니다. 한국인들은 휴가동안 여행을 가도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 까지 강행군을 합니다. 이것은 진정한 휴가가 아닙니다.
사람은 간은 그 크기의 반이 잘려나가도 복구될 수 있는 반면에 심장의 경우는 손상되면 전혀 복구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심장에 총알을 맞으면 살 확률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심장의 줄기세포를 활성화시키고 인위적으로 혈액순환을 시키면 스스로 알아서 심장을 복구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과거에는 의료기술이 이에 미치지 못했기에 상상의 일이었겠지만 지금은 시도해 볼 수도 있습니다. 또한 뇌에 있는 신경세포 역시 복구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뇌손상 역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신경세포를 복구하는 줄기세포가 활성화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는 알츠하이머 등과 같은 뇌질환도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현생 인류는 어느 정도 자연환경을 통제할 수 있고 그 어느 때 보다도 풍부한 식량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줄기세포를 활성화해서 어느 정도 적절히 인간의 수명을 연장하는 것도 인간의 생존전략에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너무 잦은 생/사의 사이클은 에너지를 너무 많이 낭비하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인간의 욕망을 제어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서 말이죠.
출아(出芽)는 모체의 일부에서 싹이 나와, 이것이 분리되어 새로운 개체가 되는 생식법을 말합니다. 출아법으로 생식하는 동물은 히드라, 산호 등의 강장동물, 해면동물, 태충류, 갯지렁이 등의 환형동물, 멍게류 등이 있습니다. 특히 산호·태충·우렁쉥이류 등은 출아에 의해 생겨난 새로운 개체가 모체에서 분리되지 않고 서로 이어져 군체를 이룹니다.
‘죽어야 산다 ‘ 이 말은 좀 아이러니하게 들리지 않나요? 어떻게 이럴 수 있나요? 죽음은 끝인데, 죽어야 산다 라니요? 역사를 보아도 왕조에는 수명이 있습니다. 한민족의 경우 여러 왕조들이 태어나고 죽음으로서 한민족의 역사가 유지되고 있습니다. 상고시대 조선의 경우에는 마지막왕 준왕이 스스로 구월산에 들어가 산신이 되어 조선의 수명을 마감하면서 부여를 낳게 하였습니다. 특히 근세조선 경우에는 고종이 스스로 이 씨 조선을 폐하고 대한제국을 탄생시키면서 역사를 이었습니다. 일제가 대한제국을 일시적으로 점거했지만 대한제국은 다시 살아나 대한민국으로 적통을 이었습니다. 그리고 통일은 반으로 갈라진 민족의 정통성을 다시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명분을 줍니다. 이제 남북한은 통일로서 대한제국의 정통성을 고스란히 이어받게 될 것입니다. 죽는다는 것은 죽는 것이 아닙니다. 죽음으로서 새로운 탄생을 가능하게 하는 것입니다.
나는 누구입니까? 사회적으로 나는 언제 어디서 태어났다는 시간과 공간을 부여받음으로써 나의 삶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죽음으로서 나에게 주어진 시간과 공간을 돌려줍니다. 생물학적으로도 난자가 정자와 합치되어서 나의 유일한 DNA 가 정해지면서 나의 삶이 시작되고 나의 DNA 가 손상되어 더 이상 제대로의 기능을 못하게 될 때 나의 삶을 반납하고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나의 몸신은 여러 암치료 과정에서 많은 효과를 보았습니다. 특히 CAR-T 면역세포 치료법으로 혈액에 있던 대다수 순환종양세포는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순환종양 세포였던 나는 아주 운이 좋게 살아남았고 나는 이제 무사히 간에 전이돼서 새로운 지역에 정착하였습니다. 당분간 나의 몸신은 암세포가 완전히 제거되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나는 조용히 때를 기다릴 것입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늘도 3분 명상을 통해서 몸과 마음의 힘을 얻으시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죽지 않는 고통
우리는 스스로 묻는다.
"죽음은 끝인가, 시작인가?"
그 답은 무(無)에 숨겨져 있다.
죽음이 없다면 시작도 없고.
시작이 없다면 죽음도 없다.
-성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