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맥형 인간을 위하여

by 배준현

사람이나 짐승이나 확실히 난자리가 더 크게 느껴진다. 자주 가는 편의점의 친절한 사장님이 어느 날 자리에 없다거나 동네에서 가끔 만나던 고양이가 보이지 않으면 반가움이 주는 일상의 소소함이 사라진 기분이다. 많은 편의점이 전부 비슷한 외관으로 유사한 상품을 팔지만 내게 따스함을 주는 그 특별한 장소성은 거기에 있는 그 사람으로부터만 전해진다. 고양이도 마찬가지다. 길 가다 마주치면 꼬리를 들고 알은체로 내게 다가오는 '짝귀(얘는 귀 한쪽이 크게 잘려나갔다. 그래서 짝귀라 부른다. 중성화 표식인가 했지만 매번 임신해온다.)'를 통해 밖이라는 외부 공간의 심리적 온도가 한층 더 올라간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 가을, 알록달록 낙엽 쌓인 거리를 보는 것도 좋지만 뭐니 뭐니 해도 그 위에서 뒹굴고 볼일도 보는 냥 구경이 난 더 좋다.


쌓인 낙엽을 보고 있으면 이런 생각도 든다. '비 많이 오면 정말 낙엽 때문에 배수로가 막혀 물이 역류하나? 그래서 그동안 가을 되면 그렇게 낙엽을 치웠나?' 조금 부끄럽지만 난 현대적 기술 덕에 모든 일이 알아서 잘 굴러가는 줄로만 알았다. 그냥 미관상 치운다고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가지 않는 곳과 내가 보지 않는 곳에서 나의 안전과 편의에 연결돼 있는 사람이 제법 많다는 걸 느낀다. 그런 작업들 역시 든 자리보다는 난자리가 확실히 더 표 날 것이리라. 종점 부근 정차해 있는 열차 청소, 인근 건물 주변을 정돈하는 일들, 여러 안전을 책임지는 사람들 덕분에 내 주변 쾌적함은 오늘도 이어진다. 사회 곳곳을 닦고, 버리고, 치우고, 정돈하는 이 같은 정맥형 직무에 대한 나름의 고마움을 느낀다. 물론 그 자체로 그분들은 생업에 종사할 뿐이라고 누군가는 말하겠지만.


도로 위도 마찬가지다. 일정 비율의 운전자들이 언제나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를 연출해도, 누군가는 또 그마만큼의 정맥형 운행을 담당한다. 도로의 안전 조율을 위해 나름의 배려∙방어운전을 하는 것이다. 우리들 눈엔 잘 띄지 않지만 말이다. 경찰 역시 도로 위 안전을 위해, 나름의 신호 체계를 일정 시기마다 개편한다. 익숙한 드라이빙 환경에 숙달된 운전자들의 과속과 급주행 유혹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다. 그래서 운전자들의 반사적 반응과 인지적 확신에 가끔씩 혼란을 준다. 분노의 도로를 완벽히 통제할 순 없어도 누군가는 예방하고, 또 누군가는 안전을 고려하여 운행는 것이다. 나 역시 때에 따라 예방과 분노 양쪽 롤 모두를 행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가급적 로드 레이지의 원인은 되지 않으려 한다. 잘 되지는 않지만.


다시 든자리와 난자리를 생각하며 내가 경험하는 사회적 배려와 안전에 대해서 고민해 본다. 좀 더 오버하면, 먹는 것부터 입는 것 머물고 생활하는 곳까지,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내 삶이 좀 더 편리해지고 다듬어지고 있음을 깨닫는다. 모세혈관처럼 퍼져 있는 그 정맥형 인간들의 행위 덕택에, 나 역시 많은 이로움을 공유하 있다. 이 가을, 그땐 미처 알지 못했던 가치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그리움과 아쉬움을 표한다. 정맥형 인간을 위하여!


학교나 직장에서도 마찬가지, 권한과 권위가 부여된 자리에 정맥형 상사나 교사의 입지가 줄어들게 되면 개개인의 이기심과 몰상식이 더 크게 활개 친다. 점점 더 많은 짜증과 스트레스가 켜켜이 쌓여 모든 신뢰 관계에 균열을 가져온다. 그때부터 인간 혐오라는 가상의 인플루엔자가 떠돌게 는 것이다. 사회적 어른의 부재가 어느 때보다 크게 느껴진다.


그래도 따뜻했던 5월, 짝귀를 추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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