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한 일들이 가능하다면 삶의 고민은 상당 부분 줄어들 것이다. 세상은 가능성으로 똘똘 뭉쳐있지만 실상 이룰 수 있는 것은 매우 적다. 이건 자조적 목소리도, 자책도 아니다. 그냥 마케팅적 현실을 덤덤히 응시한 결과다. 광고의 무한 긍정 카피를 따라도 우리 삶은 바뀌지 않는다. 애플 제품을 무진장 구매해도 우리의 생산성은 한계가 있고, 드림카를 소유해도 원하는 세상에 이르진 못한다. 팔로우 구매를 통해 계속해서 잔잔한 만족을 이어갈 순 있어도 결국 새 상품이 출시되면 또다시 만족 효용에 이상이 생긴다. 그렇다고 회의적이지도 않다. 모두 그런 현실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무수한 타자들과 여러 요인들의 복잡한 영향 곁에 말이다.
그럼 가능한 일들만 있다면 후회는 없을까? 후회는 대개 '한 일에 대한 후회'와 '하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로 나뉜다. 한 일에 대한 후회는 자기 합리화를 통해 언제든 해결되지만 하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는 평생 따라다닌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당장 무슨 일이든 일단 실행하고 도전하라고 한다. 한 일에 대해서는 충분히 인지적으로 처리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맞는 얘기다. 하지만 우리는 매번 다른 상황에 놓이고, 만족이라는 복잡한 프로세스도 거쳐야 한다. 즉 기회비용을 무시할 수 없다. 또 우리 기억은 올곧지 못하고 윤색과 각색을 일삼기에 가능한 일에 대한 후회 역시 깡그리 무시할 순 없다. 그럼 하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는 어떨까? 이것도 크게 신경 쓰이진 않는다. 이런 후회 역시 왜곡과 각색을 거쳐 합리화에 들어가고, 무수한 핑계에 눌려 금방 그 형태가 변하기 때문이다. 때에 따라선 큰 후회가 블랙홀처럼 다른 작은 후회들을 빨아들이는 후회 인수합병을 추진하기도 한다. 그래서 오히려 후회가 단순해지는 경험을 할 수도 있다. 결국 모든 후회는 각자에게 정당하다. 한 일도, 안 한 일도.
그래도 아쉽다. 누구나 아쉬움은 있다. 가족과 직업, 학교와 대인 관계, 애인과 여러 큼지막한 경제적 선택들. 대다수 이런 조건들과 연결된 후회를 하면서 '그랬어야 했는데, 그럴걸'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때에 따라 인지부조화와 정신승리도 요구된다. 누구나 아큐처럼 처절한 정신승리가 필요한 상황이 생기며, 누구나 포도 앞 여우처럼 선택의 최대 만족을 위한 인지적 환상을 가동한다. 후회의 상황과 나의 선택은 반복되지 않지만 나는 계속해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정치 선거도 마찬가지다. 한쪽에서는 정신승리가, 다른 쪽에서는 만족에 대한 환상이 필요할 수 있다. 원하는 결과를 얻어도 만족의 기한은 짧기에, 예상치 못한 상황 앞에서 인지부조화를 가동할 수 있다. 정신승리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정교한 논리를 갖다 대도 그것이 결코 현실을 바꾸진 못한다. 중요한 건 바뀐 상황에 대한 나의 태도와 다음 행동이다. 현실적 낙관주의자는 그래서 절망의 순간에 태어난다. 그리고 하나하나 놓은 자기 선택이 다른 선택들과 맞물려 다시 원하는 상황이 되길 희망한다. 안 돼도 뭐 어쩔 순 없지만 말이다. 그리고 원하는 상황이 현실이 돼도 이내 곧 덤덤해진다. 리셋 가능성 또한 충분히 알았기 때문이다. 결국 중요한 건 다시 '지금-여기-내가' 된다.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 앞에 새로운 선택만이 우리에게 주어진 권리이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다시 미래와 대면한다. 그래서 앞선 모든 후회보다 앞으로의 선택이 내 삶을 더 크게 좌우한다. 마치 오셀로 게임처럼 하나의 돌로 가운데 낀 모든 돌을 뒤집을 수도 있다. 곳곳에 나의 돌을 적극적으로 배치해 두기만 한다면 말이다. 그러니까 결국 원하는 뭔가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시도해야 남는 장사다. 장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