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입대가 두려운 건 따로 있었다. 힘든 훈련, 계급사회, 새로운 환경. 사실 모든 게 다 걱정이었지만 의외의 복병은 다른 데 있었다. 바로 노화. 늙어간다는 상상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부담이었다. 이미 복학생들을 통해 자신들의 미래를 확인한 남성들은 '군대 갔다 오면 이제 끝'이라는 비관적 전망을 그렸다. 안 그래도 힘든 연애인데, 제대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은 입대 전 모습까지도 갉아먹기에 충분했다. '군인 아저씨'라는 감사함의 관용어가 전혀 다른 의미의 무게감으로 다가온 것이다. 이십 대 초중반의 남성들에게 아저씨라는 표현은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다루기 버거운 호칭이다. 물론 군인 아저씨가 되면 재미있는 일도 있다. 전국 8도의 다양한 사람들이 한 곳에 모이기 때문이다. 우유의 놀라운 활용도 이때 처음 봤다. 마시지 않고 바르다니. 1년 위 선임은 노화가 심해졌다는 자체 판단을 통해 배식되는 우유를 피부에 양보했다. 모 화장품 회사의 광고 카피가 유행하기도 전이었다. 아마도 '우유피부, 우윳빛깔, 우유비누'처럼 우유와 연관된 단어에서 파생된 하얗고 뽀얀 이미지 때문에 우유를 피부에 양보한 것 같았다. 파묵칼레 석회를 온몸에 발랐다는 클레오파트라처럼, 선임은 우유로 세수도 하고 머리도 감았다. 흔히 말하는 '싸제' 사용이 자유롭지 않던 시절이라 우유에 대한 선임의 믿음은 강력했다. 심지어 나중에는 조금 변질된 우유를 바르기도 했다. 치즈 같은 발효식품도 이런 과정에서 발견되었으리라. 옆에서 볼 땐 효과가 미미했지만 플라시보 효과처럼 그는 만족했다. 우유에 대한 신실한 믿음으로 그는 노화의 공포를 물리쳤다.
보편적 관심은 적지만 자기들끼리 열과 성을 다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명 오타쿠 혹은 마니아들이다. 그들은 패션과 메이크업은 물론 다양한 영역에서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예전 일본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철도와 기차, 항공기에 대한 비정상적인(?) 관심을 보이는 등장 인물도 있었다. 어쨌든 군 사회도 이 같은 열정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아무도 관심 없지만 자신들끼리는 다림질, 모자각, 신발의 광 같은 것들에 대단한 집착을 보인다. 흔히 전투복이라고 하는 군복에 다림질 주름 개수를 통해 자기 멋을 강조하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같은 군인들끼리는 그런 세부적 표현을 알아보는 경우도 있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군인은 결국 군인일 뿐, 군복의 주름이나 모양, 핏 등은 자세히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사실 많은 군인들의 가장 확실한 목표는 '군인처럼 보이지 않기'다. 그래서 휴가를 앞둔 선임병이나 간부들은 일반인처럼 보일 수 있는 스타일에 집착한다. 옆, 뒷머리를 애매하게 기른다거나 어울리지 않은 화려한 스포츠 브랜드 의류를 자주 구입한다. 그리고는 후임들에게 묻는다. "군인 안 같지?" 내가 가는 미용실 사장님도 군인들은 군인처럼 보이는 스타일을 질색한다고 말했다. "중사, 상사, 딱 봐도 군인처럼 보이는데 최대한 군인으로 안 보이게 해야 만족들 하세요." 밖에서는 밀리터리 게임과 육군 티셔츠 일명 로카티가 유행하는데, 정작 많은 군인들은 군인임을 숨기기 위해 노력한다. 군인들의 은폐, 엄폐 정신은 사회에서도 유지된다.
스마트폰을 바꿀 때면 확인하는 게 있다. 바로 카메라 성능이다. 자주 사용하지도 않을 거면서 초기 구매 단계에서는 민감하게 카메라를 체크한다. 아마도 높은 가격의 합리적 근거를 찾기 위한 자기 설득 과정인 것 같다. 그리고 덤으로 셀카도 찍어본다. 하지만 내 모습을 담는 시기는 구매 후 며칠이 전부다. 그 후에는 우리 집 고양이 사진이 거의 90%를 차지한다. 나머지는 잡다한 사진들 뿐이다. 지금도 전화기에 내 모습은 거의 없다. 사진첩만 보면 전화기 주인을 알 수 없다. 사실 셀카, 셀피라고도 부르는 이 '내 모습 내가 찍기'의 행위는 내게 무척 익숙한 것이었다. 특히, 내가 급속도로 늙어갈지 모른다고 생각했던 시기에 왕성하게 셀카 활동을 했다. 매일은 아니었지만 주기적으로 얼굴사진을 찍음으로써 언제 변할지 모를 내 모습을 기록했다. 지금은 찾을 수도 없는 유치한 기록들이지만 당시에는 꽤나 진지했다. 나는 더 이상 신입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군대와 연결된 여러 상징 중 '노화, 아저씨, 늙어감' 같은 키워드도 입대를 주저케 하는 부담 가는 정서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건 그러한 상징을 대하는 각자의 마음가짐이었음을 이후 깨닫는다.
엘렌 랭어라는 미국 심리학자가 쓴 책 『늙는다는 착각』은 우리의 정신적 자세가 신체적 노화를 좌우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실제 70대 후반에서 80대 초반의 노인들을 일주일 간 수도원에서 20년 전으로 돌아간 것처럼 생활하게 했더니 노인들의 건강 상태는 물론 정신적 태도도 좋아졌다는 내용이다. 랭어 교수 팀은 실제 참가자들이 접했던 20년 전의 영화, 음악, 뉴스 같은 콘텐츠를 최근 것처럼 제공했고 상황 자체를 정말 20년 전으로 돌아간 것처럼 과거와 최대한 유사하게 주변을 세팅했다. 그러자 '난 이제 노인이야, 늙었어. 혼자는 못해' 같은 생각을 하던 노인들이 20년 전 자기 모습으로 돌아가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는' 능동적인 모습을 보여주었고 이는 결국 실제 신체 나이도 젊어지게 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물론 평소 고립감을 느끼던 노인들이 일주일간 수도원이라는 신성한 공간에서 공동생활을 했다는 점에서 또 연구팀과 함께 연구를 진행했다는 점에서 소속감과 자존의 회복을 경험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건 노화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일반적인 메시지를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자신의 의식과 인지를 통해 노화를 스스로 규명하고 바라보는 마음의 태도였다. 마음이 늙지 않는다면 몸도 천천히 나이들 수 있다.
전역 후 고작 스물두세 살의 나이에 늙어감을 걱정하며 셀카를 찍어대던 나도, 이미 정신적 아저씨가 되어 쓸데없이 진지하던 친구도, 군인 아저씨라는 사회적 호명의 무게감에서 비롯된 동질적 태도라 본다. 이런 모습을 보고 주변에서는 철들었다고 칭찬하기도 하지만 실상은 기성질서를 어설프게 내면화한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나를 비롯한 대부분은 언제 그랬냐는 듯 철없던 예전으로 금세 돌아왔지만 그렇지 않은 친구들도 여럿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계속해서 가불 하듯 미래 시점으로 현재를 회색칠 했다. '아니야, 이제 곧 4학년인데, 20대 후반인데, 서른인데, 어른인데' 그러면서 또 나중에는 '3년만 어렸어도, 5년만 어렸어도, 10년 전이라면'이라며 지나간 과거를 아쉬워했다. 어떤 태도가 이후의 삶에 중요하게 작용했는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사회의 관점을 일찍 내면화한 친구들은 여전히 현재의 가능성을 낮게 보며 예전의 아이러니를 반복한다. 미래의 관점이 지속적으로 오늘을 지배하는 것이다. 물론 '오늘이 바로 당신 생에 있어서 가장 젊은 날입니다.' 같은 자기 계발서의 클리셰를 선호하자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나의 신체보다는 조금 철없는 정신 상태가 전체 건강에는 훨씬 이로워 보인다. '늙는다는 착각'은 실제 늙어가는 것보다 더 심한 후유증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